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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신학 Systematic The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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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신학 Systematic The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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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로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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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신학 | Systematic Theology>
<구원론/Soteriology> 하나님의 의


1. 복음의 시작
※ 롬 1:17-18 - 복음에 계시된 2가지 → (1) 하나님의 (의)   (2) 하나님의 (진노)
  * 계시(revelation/reveal)란 무엇인가? - “열어서 보여준다.”
 - 사람들은 “죄/심판/지옥”과 같은 단어를 싫어하고, “사랑/평화(love & peace)”와 같은 단어만 좋아함
 - 그러나 복음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죄/심판/지옥”으로부터 시작됨
 -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나요? → 나쁜 소식(bad news)을 인정하고 받아들인 사람


2. “의”와 “진노”의 관계
systematic38.jpg


※ 사람에게도 “의”와 “진노”가 있다. 사람은 자기 기준에서 “의”를 판단하고 “분노”한다.
※ 하나님께서도 “의”와 “진노”를 가지고 계시다. 사람보다 훨씬 더 높은 기준으로! (사 55:8-9)
  - 마음으로 간음(마 5:27-28), 마음으로 살인(요일 3:15)
→ 사람이 “자기 기준”에서는 의로울 수 있으나, “하나님의 기준”에서는 “분노”를 일으키기에 마땅하다.


3.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
(1) 진리대로(롬 2:2)
(2) 회개하도록 오래 참으시며 기회를 주심(롬 2:4)
(3) 진노의 날,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이 나타나는 그날까지 진노가 누적됨(롬 2:5)
(4) 행위대로(롬 2:6-10) - 심판의 1차적 기준, 행위 (결과 : 아무도 합격할 수 없음)
(5) 율법과 양심에 따라(롬 2:12-15)
(6) 종교가 소용이 없음(롬 2:17-23)
(7) 결론1 : 율법의 행위로는 아무도 하나님의 기준에서 의롭게 될 수가 없음(롬 3:20)
(8) 결론2 : 사람은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됨(롬 3:28)


4.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
※ 롬 3:22-26 -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의 2중적 의미
                (1) 죄에 대하여 진노하며 심판하는 하나님의 기준
                (2) 죄인을 용서하고 의롭다 칭하는 것에 있어서 정당하고 의로우심
   † 십자가의 복음은 “심판”과 “용서”의 두 가지 면에서 완전하게 “하나님의 의”를 타나내고 있음




2013.11.24 갈보리침례교회 주일오전성경공부

<조직신학 | Systematic Theology>

<구원론/Soteriology> 하나님의 의


이승선

Opening
안녕하세요? 오늘도 계속해서 <조직신학>, <구원론>에 대하여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의>라는 주제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뒤쪽에 요약 프린트를 챙겨주시고요. 잠시 기도하고 시작하겠습니다. 



1. 복음의 시작

우리는 지난 시간까지 인간의 죄와 타락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오늘은 “하나님의 의”라는 주제로, 인간의 죄와 타락에 의한 결과가 어떤 것인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우리 함께 로마서 1장 17-18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믿음에서 믿음까지 계시되어 있나니 이것은 기록된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 안에서 진리를 붙잡아 두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아니한 것과 불의를 대적하여 하늘로부터 계시되었나니
여기에서 우리는 복음 안게 계시된 2가지를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17절에서 하나님의 의가 계시되었다고 말하고 있고, 두 번째로는 18절에서 하나님의 진노가 계시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프린트의 괄호에 들어갈 말은 각각 “의”와 “진노”가 되겠습니다. 성경은 복음 안에 하나님의 의와 하나님의 진노가 계시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계시”라는 말의 의미는 프린트에 나와 있는 그대로, 열어서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연극을 보게 되면, 한 장면이 끝나면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기 전에 커튼으로 막을 내렸다가, 다시 막이 오르면서 새로운 장면이 나타나는데, 바로 그러한 모습이 바로 “계시”라는 단어를 정확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복음은 그렇게 막이 오르고, 휘장이 열리는 것처럼, 가려져 있던 하나님의 의와 진노를 열어서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죄”나 “심판”이나 “지옥”과 같은 단어를 싫어합니다. 그리고 “사랑”과 “평화”라는 단어만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요즘 교회들은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또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입니다.”라고 좋은 말들만 많이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나타난 복음은 주로 “회개하라.”는 선포로부터 시작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복음 안에 하나님의 의와 진노가 계시되어 있다는, 나쁜 소식으로부터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성경의 <구원론>에 대하여 공부하고 있는데, 과연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먼저 이러한 나쁜 소식, bad news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의사도 아픈 사람이 와야 진찰도 하고 고쳐줄 수가 있는 것이지, 자신이 건강하다고 끝까지 주장하는 사람은 아마 진료를 볼 수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먼저 의와 진노에 대하여 계시하여 주시는데, 이것은 우리를 진정한 구원으로 인도하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2. 의와 진노의 관계

그렇다면 우리 함께 2번 박스로 넘어가셔서 의와 진노의 관계를 살펴보시겠습니다. 2번 박스에 보시면 세상을 시끌벅적하게 하였던 2가지 사건이 담겨있습니다. 
첫 번째는 조두순 사건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조두순 씨는 이미 많은 범죄를 저질렀던 전과 14범이었고, 조두순 사건이라고 불리는 사건은 바로 9살밖에 되지 않은 여자 아이를 성폭행한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 성폭행이 아니라, 정말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의 신체적, 정신적 폭력으로 장애를 입힌 끔찍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에 대한 판결을 보게 되면, 조두순 씨가 당시에 술에 취한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정확한 사리 분별이 불가능했다는 이유로 겨우 징역 12년만 선고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망쳐놓았고, 한 가정의 즐거움을 절망과 슬픔으로 만들어 놓은 이러한 끔찍한 범죄에 대해 법원은 고작 징역 12년이라는 선고를 내린 것입니다. 이러한 법원 판결에 대해 수많은 국민들이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프린트의 그림에 보시는 대로 조두순 사건을 다시 판결하라는 인터넷 서명 운동이 생겨나기도 했고, 직접 법원 앞에서 푯말을 들고, 사형을 주장하면서 시위를 하는 국민들도 생겨났습니다. 구약성경의 율법에서 성적인 범죄에 대해 사형을 언도하는 것과 같이, 수많은 국민들이 사형에 처하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프린트에 보시는 두 번째 사건은 라투아니아라는 국가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이제 겨우 말을 배운 자신의 어린 딸이 다른 어른들에 의해 성적인 장난감처럼 취급을 받은 것을 알게 된 한 아버지는 법원에 고소하였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여자 아이의 증언에 대해서, 나이가 너무 어리고, 정확한 상황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고발된 피고인들에 대해서 무죄를 선언하였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이 직접 아이와 인터뷰한 것을 동영상으로 촬영해서 인터넷 유투브에 올리고, 사람들에게 알리면서 처벌을 요구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이 아버지는 직접 총을 들고, 무죄를 선언한 판사와 자신의 딸에게 악을 행한 자들을 죽이고 잠적하였습니다. “정의를 실행하지 못하는 국가와 법원은 더 이상 필요가 없다. 딸을 범죄로부터 지켜주지 못하는 아버지가 되지 않겠다.”라고 자신의 페이스북 홈페이지에 올리고는, 총을 들었고, 그 이후로는 사라졌다고 합니다. 이러한 소식이 우리나라에도 알려졌는데, 프린트에 보시는 것처럼 거의 모든 사람들의 반응은, 그 아버지를 지지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 사건에서 우리는 “의”와 “진노”라는 두 가지 주제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조두순 사건에 대해서 들을 때 분노합니다. 그리고 법원이 12년 징역형을 내린 것에 대해 더욱 분노합니다. 또한 라투아니아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 그 딸아이에게 악을 행한 사람들과 무죄를 선언한 판사에 대해서 분노합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직접 총을 들고 그러한 자들을 처단하였다고 하였을 때, 조심스럽지만 잘했다고 평가를 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왜 이러한 감정을 가지게 되는 것일까요? 

사람들도 하나님만큼은 아니다 할지라도, 각각 “의”에 대한 기준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러한 “의”에 달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나, 상황들을 볼 때 진노하고 분노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인자를 볼 때 분노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들의 의의 기준에서 볼 때 살인은 결코 용납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살인을 한 번도 한 적이 없기 때문에, 살인이란 죄에 대해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고, 크게 분노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폭행이라는 죄를 저질러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러한 범죄자를 볼 때 더 이상 살려두지 말아야 한다는 분노감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의”, “정의”, “공의”에 대한 기준과 판단이, 분노를 일으키고, 심판을 요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함께 이사야 55장 8-9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8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다르니라. 주가 말하노라.
9 하늘들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사람에게 사람대로의 의가 있고, 정의가 있어서, 사람이 보기에 너무나 흉악한 죄에 대하여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고, 용납할 수가 없고, 분노를 하게 된다면, 하나님은 어떠하실까요? 성경은 하나님의 길과 하나님의 생각이, 사람의 길이나 사람의 생각보다 높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가 사람보다 높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인을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살인에 대하여 분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자주 거짓말을 하거나, 탐욕을 품는 것처럼, 하신 적이 한 번도 없으시기 때문에, 우리의 거짓말에 대하여, 우리의 탐욕에 대하여 분노하십니다. 우리가 마치 아동 성 범죄자를 보면서 이를 갈고 죽여 버려야 한다고, 분노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매일 반복하는 그러한 죄악들에 대하여 더욱더 맹렬하게 진노하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높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의롭다 하더라도, 자기 기준에서는 의로울 수 있겠지만, 하나님의 정의의 기준에서 볼 때,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키기에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에서 가장 먼저 계시하고 있는 “하나님의 의”와 “하나님의 진노”인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

이제 우리 함께 3번 박스로 넘어가셔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에 대하여 보시겠습니다. 우리 함께 로마서 2장 2절을 보시겠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들을 행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것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먼저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에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바로 진리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세상의 법정에서 이루어지는 판결은,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처럼, 사실과 다르게 판결되어질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명확한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증인이 없거나, 물증이 없어서 정확한 판결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에서는 그러한 일이 없습니다. 모든 것을 보시는 하나님, 모든 것의 목격자와 증인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친히 심판을 하시고, 또한 어떠한 개인적인 선호도나 감정과 상관없이 오직 진리대로 심판을 하시기 때문에, 가장 정확한 심판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또한 로마서 2장 4절 말씀도 보시겠습니다. 
혹은 하나님의 선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함을 알지 못한 채 네가 그분의 선하심과 관대하심과 오래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은 우리가 죄를 지을 때 즉각적으로 임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거짓말을 한다고 해서 즉시로 우리의 혀가 마비된다든지, 우리가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않는 곳으로 걸어간다고, 즉각적으로 우리의 다리가 부러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십니다. 선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인도하셔서 회개하도록 이끄십니다. 하나님은 선하시고 관대하시고 오래 참으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정의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에, 의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에, 절대로 죄를 그냥 지나치실 수 없고, 반드시 심판하시고 진노하셔야만 하지만, 즉각적으로 진노하시고, 즉각적으로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라, 선하심과 관대하심 가운데서 회개하도록 인도하시며 기다려주신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5절도 보시겠습니다. 
다만 네가 네 강퍅함과 뉘우치지 아니하는 마음에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닥칠 진노를 네게 쌓아 올리는도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가 사람에게 어떤 방식으로 임하는지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죄를 지을 때마다 처벌하시는 것이 아니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이 나타나는 한 날을 정해 놓으셨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진노는 그 사람 위에 쌓아 올려지고 누적되어지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만약 하나님이 계시다면 왜 사악한 사람들이 번영하도록 내버려 두시는가에 대해서 따져 묻기도 합니다. 왜 하나님께서 저런 사악한 사람들을 심판하시지 않느냐고 하면서 하나님이 없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정확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하고 뉘우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계시며, 하나님의 모든 진노에 대해서는 쌓아 올리시다가, 마지막 진노의 날,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의 날에 한 번에 쏟아 부으시겠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함께 로마서 2장 6-10절을 보시겠습니다. 
6 그분께서 각 사람에게 그의 행위대로 갚으시되
7 참고 꾸준히 잘 행함으로 영광과 존귀와 죽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으로 갚으시고
8 논쟁하기 좋아하며 진리에 순종하지 아니하고 불의에 순종하는 자들에게는 격노와 진노로 갚으시리라.
9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혼 위에 환난과 곤고가 닥치리니 먼저는 유대인의 혼 위에요 또한 이방인의 혼 위에며
10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 영광과 존귀와 화평이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이방인에게로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 사람을 심판하시는 1차 기준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6절에 나타난 것처럼, “행위대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그의 행위대로 갚으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7절과 10절에 나타난 것처럼 참고 꾸준히 선을 잘 행하는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화평과 영원한 생명으로 갚으시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8저로가 9절에서는 악을 행하고 불순종하는 자들에게는 격노와 진노로 갚으시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심판하시는 1차 기준은 바로 사람의 행위대로 갚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사람에게는 너무나도 치명적이고 절망적인 문제를 만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사람은 이러한 하나님의 기준에 의해서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함께 로마서 2장 12-15절을 보시겠습니다. 
12 율법 밖에서 죄를 지은 자들은 또한 율법 밖에서 멸망하고 율법 안에서 죄를 지은 자들은 율법으로 심판을 받으리니
13 (이는 율법을 듣는 자들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지 아니하고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들이 의롭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
14 율법을 소유하지 않은 이방인들이 본성을 통해 율법 안에 들어 있는 것들을 행할 때에 이런 사람들은 율법을 소유하지 않아도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15 이런 사람들은 또한 자기 양심이 증언하며 자기 생각들이 서로 고소하고 변명하는 가운데 자기 마음속에 기록된 율법의 행위를 보이느니라.)
12절에 보시면 율법 밖에서 죄를 지은 자들이나, 율법 안에서 죄를 지은 자들이나 모두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율법에 의해서 심판을 받지만, 15절 말씀처럼, 율법을 가지지 못한 이방인들은 바로 양심에 의해서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진노와 하나님의 심판은 어떻게 임하게 되는가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진리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은 즉각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진노의 날 한꺼번에 쏟아지게 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는 율법을 가진 자는 율법대로, 또 율법이 없는 자는 양심대로 심판하실 것입니다. 

이제 우리 함께 로마서 2장 17-23절을 보시겠습니다. 
17 보라, 네가 유대인이라 불리며 율법 안에 안주하고 하나님을 자랑하며
18 율법에서 가르침을 받아 그분의 뜻을 알고 훨씬 더 뛰어난 것들을 입증하며
19 또 너 스스로 눈먼 자들의 안내자요, 어둠 속에 있는 자들의 빛이요,
20 율법에 있는 지식의 틀과 진리의 틀을 갖춘 자로서 어리석은 자들의 스승이요, 아기들의 교사라고 확신하는도다.
21 그런즉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사람이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고 선포하는 네가 도둑질하느냐?
22 사람이 간음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들을 몹시 싫어하는 네가 신전 물건을 몰래 취하느냐?
23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어김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여기서 우리는 유대인들이 가진 유대교, 바로 그들의 종교가 아무 소용이 없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유대교 안에 있던 자들은, 자기들이 율법을 가졌고, 하나님을 알며, 진리를 가진 자라고 생각하였지만, 그것이 그들을 의롭게 만들어 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설명은 오늘날 모든 종교에 다 해당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어떤 종교를 가졌든지, 무엇을 가르쳤든지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어떤 종교나 가르침을 가졌든지 그것이 그 사람을 의롭게 만들어 줄 수 없습니다. 오히려 세상 모든 종교인들은 자기들이 주장하고 가르치는 바를 스스로 어기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악을 행하지 말고 선을 행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모든 세상의 종교인들은 결국 선을 행하려고 노력한다할지라도 악을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종교는 사람의 구원에 있어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 함께 프린트의 (7)번 항목에 나타난 첫 번째 결론을 보시겠습니다. 로마서 3장 20절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는 어떤 육체도 그분의 눈앞에서 의롭게 될 수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알게 되느니라.
우리가 다음 시간에 율법과 행위에 대해서 더 자세히 살펴볼 것이지만, 복음의 첫 번째 결론은 바로 어떤 육체도, 아무도 하나님의 기준에서는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구원이 필요한 이유는 바로 사람에게 가능성이 전혀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제 우리 또한 (8)번 항목의 두 번째 결론, 최종 결론을 보시겠습니다. 로마서 3장 28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결론을 내리노니 사람은 율법의 행위와 상관없이 믿음으로 의롭게 되느니라.
네, 성경은 복음의 최종 결론을 내려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람이 율법의 행위와 상관없이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에 사람을 심판하시는 기준, 1차 기준이 바로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믿음대로 판단하신다는 2차 기준이 제시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1차 기준, 행위대로 판단하셨을 때, 아무도 의롭게 될 자가 없었기 때문에, 새로운 2차 기준으로 제시하여 주셔서,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셨다는 것입니다. 


4.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

이제 우리 함께 4번 박스를 통해서,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에 대하여 조금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복음 안에 하나님의 의가 계시되었다고 하였는데, 그것을 살펴보면 우리는 2가지 의미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바로 정의를 집행하시는 하나님의 공의와 의의 기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의미로 2가지가 더 있겠는데, 오늘은 한 가지만 더 살펴보겠습니다. 우리 함께 로마서 3장 25-26절을 보시겠습니다. 
25 그분을 하나님께서 그분의 피를 믿는 믿음을 통한 화해 헌물로 제시하셨으니 이것은 하나님께서 참으심을 통해 과거의 죄들을 사면하심으로써 자신의 의를 밝히 드러내려 하심이요,
26 내가 말하거니와 이때에 자신의 의를 밝히 드러내사 자신이 의롭게 되며 또 예수님을 믿는 자를 의롭게 만드는 이가 되려 하심이라.
26절에서 우리는 하나님 자신의 의롭게 되시고, 또 믿는 자를 의롭게 만드는 이가 되려 하신다는 말씀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만약 법정에서 어떤 판사가 어떤 죄인을 사랑한다고 해서 분명히 죄가 있음에도 무죄선언을 한다면 그 판사는 정의롭지 못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해서 단순히 우리를 의롭다고 칭하신다면, 하나님은 의로운 재판장이라고 하실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의롭게 하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우리를 의롭다고 선언하심에 있어서, 하나님 자신도 정의로우신 분, 의로우신 분이 되시고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화해 헌물로 피흘려 죽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정의로운 심판자로서, 정당한 죄의 값을 받아내셨고, 우리는 예수님께서 지불하신 완전한 죄의 값을 힘입어서, 무죄 선언을 받을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 안에는 하나님의 의가 완전히 계시되어 있는데, 그것은 첫 번째로 죄에 대한 진노와 심판을 의미하고, 두 번째는 그 죄에 대한 진노와 심판이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 떨어지고, 예수님의 죽으심을 통하여 완전히 만족되었으므로, 우리를 의롭다고 선언하시는데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불의하고 부정한 재판관이 아니라, 여전히 의로우신 분이심을 계시하여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오늘 우리는 간략하게 복음 안에 계시된 하나님의 의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율법의 행위와 은혜>라는 주제로 복음에 대하여 계속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기도하고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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