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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915_[조직신학]그리스도론-재림1(교사용).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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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신학 | Systematic Theology>
<그리스도론/Christology> 재림1 (다시 오심, second coming)
![20130915_prophecy.jpg](http://robinbox.net/files/attach/images/298/603/014/56ab6102c1583f2ca18e61c4df1899a2.jpg)
※ 벧전 1:10-12 - 대언자들이 알고자 했던 “고난”과 “영광” → 예수님의 오심(두 번 오심)
※ 사 61:1-2 - 한 구절 안에서 동시에 기록된 초림과 재림(눅 4:16-21)
※ 두 번의 나타나심(딛 2:11-14, 히 9:26-28)
(1) 예수님 자신의 증거 - 마 16:27, 25:31-32, 요 14:2-3, 계 22:12,20
(2) 바울 - 빌 3:20-21, 딛 2:13, 히 9:28
(3) 야고보 - 약 5:7
(4) 요한 - 요일 2:28, 계 1:7
(5) 베드로 - 벧후 1:16
(6) 유다(에녹) - 유 1:14-15
(7) 다니엘 - 단 7:13, 2:44,45(돌 - 사 8:14, 롬 9:33, 마 21:42, 행 4:11, 벧전 2:4,7,8, 고전 10:4)
(8) 이사야 - 사 13:4-10 (주의 날 - 겔 30:3, 욜 1:15, 2:1, 2:31, 암 5:18-20, 옵 1:15, 습 1:7,14, 14:1)
(9) 두 증인 - 행 1:10,11 (*눅 24:4,5, 마 17:1-5, 계 11:3-12, 모세 - 부활한 성도의 모형 / 엘리야 - 죽지 않고 변화될 성도의 모형)
(10) 주의 만찬 - 고전 11:26(신부인 교회에게 주신 약혼반지 - 뒤로는 십자가, 앞으로는 재림)
영적 해석(풍유적)
1. 오순절에 이미 영적으로 재림하셨다.
2. 구원 받는 것이 영적 재림이다.
3. 기독교의 확산이 재림이다.
4. “내가 재림 예수다.”
5. 후천년주의 - “천년”이라는 “어떠한 기간 동안” 사람의 힘으로 왕국을 세우면 주님이 재림하실 것이다(마 24:14).
6. 무천년주의 - 물리적 천년왕국은 없다.
문자적 해석 - 전천년주의(Pre-millenium)
때가 이르면,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이 땅에 “천년왕국”을 세우실 것이다(사 57:21, 사 9:6-7, 계 20:4,6).
그러므로 너희는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어느 때에 올는지 저물 때일지, 한밤중일지, 닭 울 때일지, 아침녘일지 너희가 알지 못하느니라(막 13:35).
삶의 모습
※ 무엇을 믿는가?(갈 1:4, 딛 2:12, 약 4:4롬 12:2, 요일 2:15, )
- 이 세상을 발전/변화시키자!(연합)
- 멸망할 세상에서 영혼들을 건져내자!(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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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15 갈보리침례교회 주일오전성경공부
<조직신학 | Systematic Theology>
<그리스도론/Christology>
재림1 (다시 오심, second coming)
이승선
Opening
안녕하세요? 오늘도 계속해서 <그리스도론>에 대해서 성경공부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 살펴보는 첫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뒤쪽에 요약 프린트를 챙겨주시고요. 기도하고 시작하겠습니다.
1.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우리는 지금까지 그리스도론에 대하여 살펴보면서, 예수님께서 성경의 주인공이 되신다는 사실로부터 시작해서, 예수님의 죽으심, 부활, 그리고 승천까지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오늘부터는 예수님의 재림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성경의 주인공이 예수님이니만큼, 성경은 예수님에 대하여 아주 많은 말씀들을 기록하고 있고, 또한 예수님께서 오시는 것에 대하여 아주 많이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께서 오시는 것에 대한 말씀들을 찾아보면, 그것이 초림과 재림, 처음 오심과 다시 오심으로 구분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구약의 대언자들이 예수님의 오심에 대하여 기록할 때, 프린트의 그림에 보시는 것처럼, 초림과 재림을 겹쳐서 보았고, 그것들을 겹쳐서 기록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구약의 대언자들에게는 초림과 재림 사이에 있을 교회 시대가 감추어졌기 때문에, 그들은 초림과 재림의 사건을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인 것처럼 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먼저 베드로전서 1장 말씀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10-12절입니다.
10 이 혼의 구원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에 대하여 대언한 대언자들이 부지런히 조사하고 탐구하되
11 자기들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께서 그리스도의 고난과 그 뒤에 있을 영광을 미리 증언해 주실 때에 그 영께서 무엇을 혹은 어느 때를 표적으로 보여 주셨는지 탐구하였느니라.
12 그들이 자기들을 위해 그것들을 수행하지 아니하고 우리를 위해 수행하였음이 그들에게 계시되었는데 그것들은 곧 복음을 선포한 자들이 하늘에서 보내신 성령님과 더불어 이제 너희에게 전한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갈망하는 것이니라.
대언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고, 성경 말씀을 기록하였지만, 그 모든 것을 다 이해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세나, 다윗이나, 다니엘이나, 그들은 모두 주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서 대언하고 기록한 대언자들이었지만, 그들 자신조차도 어떤 부분에서는 그 내용을 정확히 몰랐다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의 고난과 영광에 대하여 보여주실 때에, 그것이 무엇을 혹은 어느 때를 보여주셨는지 부지런히 조사하고 탐구하였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요셉의 이야기나 모세의 이야기에서, 그들이 처음에는 이스라엘 형제들로부터 거절되었다가, 두 번째 나타나게 되었을 때, 받아들여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들도 모두 예수님께서 두 번째 오시는 것과 그 때에 유대인들이 메시야를 받아들이게 될 것임을 미리 보여주는 예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번에는 우리 함께 이사야 61장 1-2절을 보시겠습니다.
1 주 하나님의 영께서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주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온유한 자들에게 좋은 소식을 선포하게 하셨기 때문이라. 그분께서 나를 보내신 것은 마음이 상한 자들을 싸매고 포로 된 자들에게 자유를, 결박된 자들에게 감옥에서 놓임을 선포하게 하려 함이요,
2 또 주의 받아 주시는 해와 // 우리 하나님의 원수 갚으시는 날을 포고하고 애곡하는 모든 자를 위로하게 하려 함이며
우리가 지금 읽은 이사야서 61장 1,2절 말씀에서는 예수님과 초림과 재림을 바로 연결하여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특히 2절에서는 한 문장 안에서 초림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재림으로 넘어가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 함께 이 말씀을 손가락으로 끼시고,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인용하신 누가복음으로 가보시겠습니다. 누가복음 4장 16-21절 말씀입니다.
16 그분께서 자기가 자라난 나사렛에 가사 늘 하시던 대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읽으려고 서시니
17 섬기는 자가 대언자 이사야의 책을 그분께 넘겨드리거늘 그분께서 그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라. 일렀으되,
18 주의 영께서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그분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게 하셨기 때문이라. 그분께서 나를 보내신 것은 마음이 상한 자들을 고치며 포로 된 자들에게 구출을, 눈먼 자들에게 다시 보게 함을 선포하고 상처 입은 자들을 자유하게 하며
19 주의 받아 주시는 해를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20 그분께서 책을 덮어 섬기는 자에게 다시 주시고 앉으시매 회당에 있던 자들의 눈이 다 그분에게 고정되거늘
21 그분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시되, 이 성경 기록이 이 날 너희 귀에 성취되었느니라, 하시니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이사야 61장을 읽으셨는데, 2절 중간까지 읽으시다가, 책을 덮으시고, 유대인들에게 “이 성경 기록이 이 날 너희 귀에 성취되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다시 이사야 61장으로 돌아와 보시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2절의 앞부분 까지만 뚝 잘라서, “주의 받아 주시는 해”까지만 읽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2절의 뒷부분에 기록된 “우리 하나님의 원수 갚으시는 날”이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이것은 예수님께서 원수 갚으시고, 심판하시는 재림의 날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구약의 대언자들은 고난과 영광의 산봉우리를 겹쳐서 보게 되었고, 그 사이에 있는 교회에 대해서는 볼 수가 없었기 때문에, 무엇이 감추어져 있는지, 그 신비의 영광이 무엇인지를 알고자 하여 부지런히 탐구하고 조사하였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함께 디도서 2장 11-14절을 보시겠습니다.
11 구원을 가져다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
12 우리를 가르치시되 경건치 아니한 것과 세상에 속한 정욕들을 우리가 거부하고 이 현 세상에서 맑은 정신을 가지고 의롭게 하나님의 뜻대로 살며
13 저 복된 소망과 위대하신 하나님 곧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느니라.
14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으로부터 친히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정결하게 하사 선한 행위에 열심을 내는 백성 곧 자신을 위한 특별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는 11절 마지막에서 “나타나”라는 단어를 볼 수가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구원을 가져다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전달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또한 13절에서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나타나심”이라는 말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성경은 예수님께서 나타나심에 대하여 두 번으로 구분하여서, 즉 초림과 재림으로 구분하여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처음 오신 목적은 11절에 나온 것처럼, 우리를 구원하시는 은혜를 전달해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12절에 나온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가르치셔서, 우리가 경건치 아니하고, 또 세상에 속한 정욕들을 거부하고, 이 현 세상에서 맑은 정신을 가지고 의롭게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하시려고 그리고 13절에 기록된 것처럼, 주 예수님의 영광스런 다시 오심을 기다리게 하시려고, 그리고 14절에 나온 것처럼, 우리를 선한 행위에 열심을 내는 주님의 특별한 백성이 되게 하시려고 오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구원을 가져다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은 성도들이요,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면, 그 목적대로 세상의 정욕들을 거부하고, 주님의 다시 오심을 사모하며, 선한 일에 열심을 내는 주님의 특별한 백성으로서 이 땅을 살아가기 원합니다. 바로 오늘이 그렇게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 또한 히브리서 9장 말씀도 보시겠습니다. 26-28절입니다.
26 그랬더라면 그분께서 반드시 창세 이래로 자주 고난을 당하셨어야 할 것이라. 그러나 이제 세상 끝에 그분께서 단 한 번 나타나사 자신을 희생물로 드려 죄를 제거하셨느니라.
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뒤에는 심판이 있나니
28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도 많은 사람의 죄들을 담당하시려고 단 한 번 드려지셨으며 또 자신을 기다리는 자들에게 죄와 상관없이 두 번째 나타나사 구원에 이르게 하시리라.
우리는 26절에서 “이제 세상 끝에 그분께서 단 한 번 나타나사”라는 말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28절에서는 “자신을 기다리는 자들에게 죄와 상관없이 두 번째 나타나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경은 너무나 명확하게 예수님의 두 번 오심에 대하여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처음 오심, 초림 때에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들로 인해 자신을 희생물로 내어주셔서, 우리들을 죄에서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아시 오심 재림 때에는 죄 문제와 상관없이 오셔서, 우리들을 본향의 집으로 이끄시고, 또 이 세상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처음 오실 때에는 종의 형체를 입으셨으나, 다시 오실 때에는 왕으로, 통치자로 오실 것입니다. 처음 오실 때에는 어린양으로 오셨지만, 다시 오실 때에는 유다 지파의 사자로 오실 것입니다.
여기 28절 말씀에서 다시 오실 때 구원에 이르게 하신다는 말씀은, 우리가 받은 구원이 불확실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구원은 이제 정말 우리를 세상의 모든 유혹과 죄와 육신의 권세로부터 완전히 구해내시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우리 함께 고린도후서 1장 10절을 보시겠습니다.
그분께서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건지고 계시며 또 여전히 건지시리니 우리는 그분을 신뢰하노라.
우리가 받은 구원은 이 말씀과 같이 3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과거, 현재, 미래입니다. 우리는 이미 2천년전 과거에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모든 죄 값을 지불하신 예수님을 믿습니다. 또한 우리는 오늘도 여전히 우리를 붙드시고, 죄와 마귀와 세상과 육신의 공격으로부터 구원하시는 주님의 역사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님이 다시 오셔서 우리의 몸을 변화시키시고, 이제 정말 이 세상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셔서, 영원한 본향, 하늘의 집으로 이끌어 가실 것을 믿습니다. 그 날을 사모하면서, 오늘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를 원합니다.
2. 재림의 증거
이제 우리 함께 2번 박스 재림의 증거 부분을 보시겠습니다. 우리는 성경 곳곳에서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기록한 말씀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가 구약성경을 보게 되면, 예수님의 초림보다 재림에 대한 예언이 더 많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또한 신약성경도 역시나 재림에 대하여 많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프린트에 보시는 대로 크게 10개의 항목으로 재림에 대한 증거들을 분류하였습니다.
먼저는 예수님께서 친히 자신의 재림에 대하여 많이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사람의 아들이 큰 권능과 영광을 가지고, 구름들 가운데 올 것이라고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아버지의 집에서 처소들을 예비하면서 다시 오시겠다고 말씀하시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잘 아시는 말씀과 같이 계시록에서는 반드시 내가 속히 오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재림에 대한 진리는 바로 예수님께서 친히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바울도 역시 자신의 서신서들마다 자주 주님의 다시 오심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천한 몸을 그분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이 변화시켜 주실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눈 깜짝할 순간에 우리가 다 변화될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나팔소리와 함께 친히 오실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야고보도 주의 오심이 가깝다고 증거하였습니다.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서 성경을 기록했던 사도 요한도 주님의 다시 오심에 대하여 기록하였습니다. 우리 함께 요한일서 2장 28절을 보시겠습니다.
어린 자녀들아, 이제 그분 안에 거하라. 이것은 그분께서 나타나실 때에 우리가 확신을 가지게 하려 함이요, 또 그분께서 오실 때에 우리가 그분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요한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재림에 대하여 쓰면서, 우리가 그분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도록 준비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정말 주님께서 지금이라도 다시 오실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러한 믿음 가운데 하루하루 매순간을 살아간다면, 우리의 삶을 정말 많이 가벼워지고,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상태처럼 그렇게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베드로 역시도 변화산에서 예수님의 영광을 목격한 자로서, 주님이 다시 오신다고 증거하고 있고, 유다 역시도 에녹의 선포를 인용하면서, 주님께서 다시 오셔서 모든 경건치 아니한 자들을 심판하실 것이라고 엄중하게 경고하였습니다.
또한 구약성경의 많은 대언자들이 예수님의 재림을 예언하였습니다. 특별히 우리는 구약성경에서 주의 날이라는 표현을 볼 수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주님이 다시 오시는 때를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사람의 손으로 다듬지 아니한 한 돌이 하늘에서 날아서 세상 왕국들을 산산조각 내는 것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은 바로 적그리스도와 이 세상 왕국들을 아마겟돈 전쟁으로 심판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미리 보여주는 것입니다. 다윗의 조약돌이 골리앗의 머리를 때린 것이나, 한 여인이 던진 맷돌이 아비멜렉의 두개골을 깨뜨린 것이나, 헤벨의 아내 야엘이 말뚝과 쇠망치로 가나안의 군대대장 시스라의 관자놀이를 친 것은 모두 사탄, 즉 적그리스도의 머리를 부수시는 여자의 씨 예수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별히 시스라는 바락과 드보라에게 패배하였는데, 바로 므깃도 골짜기, 아마겟돈 전쟁에서 패하고 그렇게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성경의 수많은 사건들이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예고편처럼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에스겔, 예레미야, 요엘, 아모스, 오바댜, 스바냐, 말라기 등등 누구 할 것 없이 구약의 대언자들은 거의 모두가 주의 날에 대하여, 예수님의 다시 오심에 대하여, 그 날이 얼마나 공포스럽고 두려운 날이 될 것인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신약성경에서 계속해서 등장하는 두 남자, 두 증인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변화상에서 나타났었고,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온 여인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하여 말해주었고, 또 올리브 산에서 하늘을 바라보고 서있던 제자들 곁에 있었던 두 남자들도 역시나 예수님의 재림에 대하여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계시록에서 다시 이 땅에 나타나 3년 반 동안 예수님의 재림에 대하여 외치면서,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선포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성경에 계속해서 나타나는 두 남자는, 예수님과 함께 변화 산에 있었을 때에만, 모세와 엘리야라고 이름이 공개되었고, 나머지 경우들에서는 그냥 두 남자라고만 되어 있습니다. 정확히 이 두 남자가 계속해서 모세와 엘리야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것과 예수님의 영광에 대하여 계속해서 증거하는 것을 볼 때, 충분히 모세와 엘리야라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모세는 죽음을 통과하여 부활한 성도를 상징하고, 엘리야는 죽지 않고 불 병거를 타고 하늘에 올라갔기 때문에, 변화될 성도의 모형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주의 만찬 예식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 함께 고린도전서 11장 26절을 보시겠습니다.
이는 너희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분께서 오실 때까지 보이기 때문이니라.
주의 만찬은 바로 신랑이 신부에게 준 약혼반지와도 같습니다. 약혼반지는 신부로 하여금 신랑을 기억할 수 있게 해주고, 또 결혼하게 될 날을 바라보게 해줄 것입니다. 그처럼, 주의 만찬은 뒤로는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못 박히시고 피 흘리신 주님을 보여주고, 앞으로는 다시 오셔서 우리를 데려가실 신랑이신 주님을 기억하게 하는 것입니다. 뒤로는 초림이요, 앞으로는 재림을 바라보게 하는 것입니다.
3. 재림에 대한 주장들
이제 3번 박스, 재림에 대한 주장들에 대해서 살펴보시겠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너무나 많은 성경구절에서 증거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이단도 재림 자체가 없다고 주장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이단들은 예수님의 재림을 이상하게 해석하고 사용한다는 데에 문제가 심각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여러 가지 주장들을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하자면, 영적 해석, 즉 풍유적으로 해석하는 것과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으로 나눌 수가 있겠습니다. 먼저 영적으로 해석하는 부류들에 대해서 보시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이미 오순절에 영적으로 재림하셨다고 주장하는데, 오순절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신 때가 아니라, 성령님께서 제자들에게 임하신 때입니다. 그리고 사도들은 오순절 훨씬 이후에 예수님께서 오실 것이라고 미래적으로 기록하였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오순절에 재림하신 것이 아닙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구원 받는 것이 영적 재림이라고 주장합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기독교의 확산이 바로 재림이라고 주장을 하기도 합니다. 구원을 받으면 예수님께서 영으로 우리 안에 들어오시기 때문에, 그것이 바로 재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재림에 대하여 말씀하실 때, 큰 권능과 영광을 가지고 구름 가운데 오시겠다고 하였습니다. 나팔소리와 함께 오시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구원을 받을 때 어떤 그런 형상들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더욱 지나쳐서, 자기가 바로 재림 예수라고 주장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기가 바로 영으로 재림한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한국 사람이 아니셨고, 유대인이셨습니다. 그분은 재림하실 때, 예루살렘의 시온산으로 오시겠다고 하였습니다.
5번과 6번 항목에 나오고 있는 후천년주의와 무천년주의는 오늘날 일반적인 기독교 안에 팽배한 사상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후천년주의라는 것은 성경에 기록된 천년이라는 기간을 영적으로 해석하는 것에서 시작한 것입니다. 종교개혁 이후에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르네상스와 함께 음악과 문학이 발전하고, 또 영어 킹제임스성경이 번역되면서, 이 세상에 복음이 전해지고, 선교사들이 일어나면서, 사람들을 후천년주의 사상에 더욱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왕국의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해질 때 끝이 올 것이기 때문에, 이 땅에 이렇게 영적인 하나님의 왕국이 편만하게 퍼지게 되면, 주 예수님께서 오실 것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천년이라는 일정한 기간 동안 사람들이 이 땅을 하나님의 왕국과 같이 유지하게 되면 예수님이 오신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칼빈이나 루터와 같은 사람들은 제네바에 자신의 도시를 세우고 정말 하나님의 왕국이 세워진 것처럼, 권력으로 수많은 침례성도들을 자신의 믿음과 다르다는 이유로 고문하고 죽였습니다. 후천년주의 사상이 무르익어 갈 때 쯤, 세계 1차 대전과 2차 대전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천년이 채워지지 못한 것에 당황하여서, 천년이라는 기간을 영적으로 해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땅에 천국이 이루어지고 있고, 곧 예수님께서 오실 것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은 혼란에 빠지기 시작했고,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결국 무천년주의자가 되었습니다. 천년왕국 그런 것은 실제로 없고, 다 우리 안에 있는 영적인 왕국이라고 해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믿는 것은 바로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믿는 전천년주의 신앙입니다. 전천년주의라는 것은 예수님의 다시 오심이 언제냐, 바로 천년왕국의 전에 오셔서, 예수님께서 직접 천년왕국을 세우신다, 라고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천년입니다. 예수님 없이 이 땅에 천국을 세우려는 사람들은 영혼 구원의 복음을 전하지 않고 사회 복음을 전합니다. 밥을 퍼주고, 병을 고쳐주고, 불우이웃을 도우면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냥 그런 일들을 목적으로 삼는 사람들이 바로 후천년주의 사상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정치에 관여하고, 명예와 권력을 가지고자 하는 사람들이 바로 후천년주의자들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에 대하여 과연 무엇을 믿느냐에 따라서 삶의 모습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믿음은 삶을 바꿔버립니다. 우리가 만약 이 건물 안에 있다가 화재 경보를 듣게 된다면, 그리고 그 경보를 사실로 믿게 되면, 우리는 성급히 밖으로 대비하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은 반드시 행동의 변화를 일으킵니다. 우리가 만약 예수님께서 정말 속히 오시고, 우리의 모든 삶에 대하여 계산하실 것이라고 믿는다면, 정말 믿는다면, 우리의 하루하루의 삶은 완전히 달라질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문자적으로 믿지 않고, 영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은 결국 이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과 같은 모습을 가지게 됩니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서, 기독교 문화가 세상에 더 편만하게 퍼져야지 예수님이 오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재림을 사모하는 사람들이 세상과 더욱 분리되어야 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목적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멸망하는 세상으로부터 영혼들을 건져내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정치과 문화와 경제를 살려서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은 우리의 방향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가 맡은 바 모든 일을 최선을 다해 수행하지만, 우리는 모든 보물을 하늘에 쌓아올리며, 불타버릴 이 세상에 애착을 두지 않고, 오직 하늘을 향해 전진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우리 함께 마지막으로 요한일서 3장 2-3절을 보시겠습니다.
2 사랑하는 자들아,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들이니라.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되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분과 같게 될 줄 아노니 이는 우리가 그분을 지금 계시는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라.
3 그분 안에서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분께서 순결하신 것 같이 자기를 순결하게 하느니라.
우리가 주님과 같이 변화되어 하늘로 올라갈 이 소망을 가진 자로서, 우리의 삶이 순결하고 정결하고 거룩하여 지기를 원합니다. 다음 시간에도 계속해서 재림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