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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와 화평(빌 1:1-2)/로빈 - 빌립보서 강해설교

2022.06.08.수 갈보리침례교회 수요기도회 설교 / 이승선(40세)

제목 : 은혜와 화평
본문 : 빌립보서 1장 1-2절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빌립보서 1장 1-2절 말씀입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빌립보에 있는 모든 성도들 곧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성도들과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화평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오늘 이 시간 함께 나눌 하나님의 말씀의 제목은 “은혜와 화평”입니다. “은혜와 화평” 잠시 기도하고 시작하겠습니다.


** 서론
오늘 말씀의 제목은 “은혜와 화평”입니다. 오늘날 메마른 광야와 같은 땅을 지나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 있다면, 바로 은혜와 화평입니다. 은혜가 없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은혜가 없다면 주님과의 화평도 누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은혜가 있고, 화평이 있다면, 우리는 다시 힘을 내어 오늘을 살아갈 수 있고,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참으로 오늘 이 시간에도 주님으로부터 우리에게 은혜와 화평이 풍성히 넘치게 있기를 원합니다.

오늘은 빌립보서 말씀을 살펴보는 두 번째 시간입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는 빌립보서 말씀을 기록한 사도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힌 상태에 있었다는 사실을 살펴보았고, 사도행전 말씀을 통해서 빌립보 교회가 어떻게 세워지게 되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가장 먼저 자주색 옷감 장수였던 루디아 자매의 집안이 구원을 받았고, 다음으로 빌립보 거리에 있던 사람들과 감옥에 있던 사람들이 복음을 들었으며, 감옥의 간수와 그 집안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억울하게 매를 맞고, 감옥에도 갇히며, 많은 제한을 받는 상황 속에서도 물러서거나 포기하지 않았고, 더욱 넘치게 주님을 섬기고 성도들을 섬겼습니다.

이제 오늘은 빌립보서 말씀을 직접적으로 살펴보시면서, 오늘 우리가 믿고 따르는 진리가 무엇인지, 우리가 어떻게 주님을 따르며 섬길 것인지 함께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주님께서 이 시간을 주관하시고 붙들어 주시기 원합니다.


** 예수 그리스도의 종
먼저 우리 함께 빌립보서 1장 1절 말씀을 다시 한번 읽어보시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빌립보에 있는 모든 성도들 곧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성도들과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사도 바울은 디모데와 함께 빌립보서 말씀을 기록하기 시작하면서, 자기 자신과 디모데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사실 바울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호칭 외에, 조금 더 자랑스럽고 멋진 호칭들도 있었습니다.

이방인들을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라든지, 셋째 하늘에 올라갔던 자라든지, 놀라운 신약의 신비를 계시받은 자라든지, 많은 교회들을 개척한 사람이라든지, 많은 사역자들을 길러낸 사람이라든지 하는 영광스럽고 자랑스러운 호칭들이 더 많았을 것입니다.

아니면 정통 히브리 사람, 베냐민 지파 사람이라든지, 태어난 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은 자라든지, 바리새인 출신의 정통 유대인이라든지, 태어날 때부터 로마 시민이었다는 자랑거리들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과 디모데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어떠한 헌신과 어떠한 자세로 주님을 섬기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마음에는 종의 형체를 입으시고, 무명한 자로 이 땅에 오신 주 예수님의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주님을 섬기면서 무엇인가 대단한 일을 하는 대단한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았고, 다만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여겼습니다.

우리 함께 누가복음 17장 7-10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7 그러나 너희 가운데 누가 밭을 갈거나 가축을 먹이는 종이 있으면 그가 밭에서 올 때에 즉시 그에게 이르기를, 와서 앉아 음식을 먹으라, 하겠느냐?
8 도리어 그에게 이르기를, 내가 저녁을 먹도록 준비하고 또 띠를 띠고 내가 먹고 마실 때까지 나를 섬기다가 너는 그 뒤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아니하겠느냐?
9 그 종이 명령받은 일들을 했다고 해서 그가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나는 아니라고 생각하노라.
10 그런즉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그 모든 일들을 한 뒤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니이다. 마땅히 해야 할 우리 의무인 그것을 우리가 하였나이다, 하라, 하시니라.
아멘. 주 예수님께서는 종의 마음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시에 주인을 섬기는 노예가 낮에 밭을 갈고 가축을 먹였다고 해서, 많이 수고했다고 해서, 누가 즉시로 음식을 대접받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오히려 주인이 먼저 음식을 다 먹을 때까지 여전히 음식을 준비하고, 섬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일을 다 하고 나서도, 명령받은 일들을 다 수행하고 나서도 감사 인사를 받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종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의무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기분 좋게 우리 자신이 주님의 종이라고 말하면서도, 때로는 대접받는 종, 감사 인사를 받는 종, 사람들이 알아주는 종이 되고자 할 때가 있습니다. 주님의 종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을 섬긴 것 뿐인데, 그 일로 인해서 사람들에게 감사 인사를 받고, 칭찬을 받고, 높아지고자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종의 마음이 그러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스스로 무익한 종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의무를 하였을 뿐이라고, 그렇게 말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종의 길, 십자가의 길을 우리 주 예수님께서 먼저 걸어가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에게 주님을 따라오라고 부르고 계십니다.

참으로 놀랍고 놀라운 사실은 우리가 이 땅에서는 이렇게 주 예수님을 따라 종의 길, 십자가의 길을 가지만, 그 뒤에 주 예수님께서 왕들의 왕으로 다시 오실 때, 주님과 함께 영광에 참여하며, 함께 왕으로서 통치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미 우리가 은혜로 얻은 구원의 감격만 가지고도 주님을 넘치게 섬길 수 있고, 모든 것을 다 드려 섬긴다 할지라도, 그 은혜를 다 갚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을 오직 은혜로 주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부족하고 보잘 것 없는 섬김과 고난에 대하여서도,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한 영광으로 갚아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도 사도 바울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서의 길을 기쁨과 감사 가운데 걸어가기를 원합니다.


** 교회의 구성
이제 우리 다시 빌립보서 1장 말씀으로 돌아와 보시겠습니다. 빌립보서 1장 1절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에 있는 모든 성도들에게 편지하면서, 그들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성도들과 감독들과 집사들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말씀은 신약시대의 지역교회 안에 존재하는 두 가지 직분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신약시대에 모든 믿는 자들이 제사장이며, 모든 구원받은 성도들이 동등한 형제자매이므로, 교회 안에서 니골라당과 같은 계급주의를 만들어서는 안되고, 교회 안에서 어떠한 계급자나 직분자가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다만 모든 형제자매들에게 쓴다고 하였어야 할텐데, 어찌하여,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한다고 하였을까요? 이 부분을 잠시 살펴보시겠습니다.

먼저 우리는 신약시대에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이 주님 앞에 동등한 자격을 가진 형제자매들임을 믿습니다. 또한 모든 성도가 주님 앞에 직접 나아갈 수 있는 제사장들이라는 사실을 믿습니다. 직분을 가진 누군가가 보통의 성도들을 위해 중보를 하거나, 축복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믿는 자들이 동등한 자격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임을 믿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동시에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교회 안의 직분들에 대해서도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마치 가정 안에서 아버지도 구원받은 성도이고, 아들도 구원받은 성도이며, 모두가 주님 앞에 동등한 형제이고 제사장이라고 해서, 아버지의 권위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듯이, 교회 안에서도 모든 성도들이 동등한 형제자매들이지만, 주님께서 세우신 직분과 역할과 질서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책임 형제나, 대표 형제와 같은 호칭이 아니라, 빌립보서 말씀에 기록된 그대로, 감독들과 집사들이라는 호칭으로 불리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계시록 말씀에 기록된 것처럼 주님께서 미워하신다고 하신 니골라당과 같은 성직자 제도와 교회 안에서의 계급주의를 반대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정 안에서의 권위와 질서를 계급주의라고 하지 않는 것처럼, 교회 안에 주님께서 세우신 직분과 질서 또한 말씀에 기록된 그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여러 교파들이 여러 가지 교리로 인해서 나뉘고, 또 여러 가지 직분들과 교회를 운영하는 방식으로 인해서 나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로마 카톨릭은 사도 베드로의 사도권을 계승했다고 주장하는 교황이 그리스도의 대리자이며,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성당의 머리라고 주장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천주교는 교황으로부터 추기경, 대주교, 주교, 그리고 신부까지 계급이 내려오고, 이러한 성직자들이 일반 신도들의 믿음을 주도하고 지배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또한 감리교회는 주로 당회장이라고 불리는 감독이 교회의 길을 결정하고 치리하기 때문에, 감독이 치리한다 하여 그 이름이 감리교입니다.
또한 장로교회는 목사와 별개로 장로들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주로 교회의 길을 결정하고 치리하기 때문에 장로교라고 불립니다.

우리 독립침례교회는 그 어떤 국가 정부 세력이나, 다른 큰 교회들에 의해 움직여지지 않고, 독립적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독립이라는 말이 들어갔고, 자치적으로 성도들의 총회를 통해, 회중의 투표를 통해, 교회의 길을 주님께 묻고 결정하고 있습니다.

이 시간 잠시 성경에 나타난 여러 직분들에 대해서 간략하게 성경 구절 몇 부분을 찾아보시겠습니다. 먼저 사도행전 1장 21-26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21 그러므로 요한의 침례로부터 시작하여 주 예수님께서 우리를 떠나 들려 올라가신 바로 그날까지 우리 가운데서 드나드시던 모든 때에
22 우리와 함께 다니던 이 사람들 중에서 우리가 반드시 하나를 임명하여 우리와 함께 그분의 부활을 증언할 증인이 되게 해야 하리라, 하매
23 그들이 둘을 지명하니 곧 바사바라고도 하고 별명은 유스도라 하는 요셉과 맛디아더라.
24 그들이 기도하며 이르되,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주께서 이 두 사람 중에 누구를 택하셨는지 보여 주사
25 그가 이 사역과 사도직을 맡게 하옵소서. 유다는 자기 자신의 처소로 가려고 범법함으로 그 직분에서 떨어져 나갔나이다, 하고
26 제비를 뽑으니 제비가 맛디아 위에 떨어져서 그가 열한 사도와 함께 계수되니라.
아멘. 여기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배반한 가룟 유다를 대신할 새로운 사도를 세우는 장면을 볼 수가 있습니다. 사도의 자격 요건은 먼저 21절 말씀에 기록된 것처럼, 요한의 침례로부터 시작하여 주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날까지 함께 다니던 사람이라고 제시되었고, 이 당시에도 이러한 자격 요건에 딱 맞는 후보가 단 2명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로마 교황이나, 그 어떤 사람이 사도 직분을 가질 수가 있을까요? 우리는 성경 말씀을 통해서, 오늘날 사도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시대에는 더 이상 요한의 침례로부터 주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까지 함께 다니며 그 모든 일들을 목격한 증인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도 야고보가 헤롯 왕에게 목 베임을 당하였을 때, 또 다시 그 뒤를 계승할 다음 사도를 선출하지 않은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처럼 사도의 직분은 신약성경의 완성과 함께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다만 오늘날 우리는 “사도”라는 말의 의미가 “보냄을 받았다”, “파송을 받았다”라는 것이었음을 감안해서, 오늘날에는 “선교사”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호칭은 성경에서 언급된 적이 없지만, 보냄을 받고, 파송을 받아서 나가는 복음의 사역자들을 부르는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함께 사도행전 20장 17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 그가 밀레도에서 에베소로 사람을 보내어 교회의 장로들을 부르니
이 말씀에서 우리는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부른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장로들을 불렀다는 이 표현을 기억하시면서 우리 함께 28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 그러므로 너희 자신과 온 양 떼에게 주의를 기울이라. 성령님께서 너희를 그들의 감독자들로 삼으사 하나님의 교회 곧 그분께서 자신의 피로 사신 교회를 먹이게 하셨느니라.
아멘. 여기에서 우리는 장로와 감독과 목사의 직분이 동시에 등장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분명히 사도 바울은 에베소의 장로들을 불렀는데, 그들을 향해서 감독자로 삼으셨다고 말씀하고 있고, 온 양 떼에게 주의를 기울이며, 교회를 먹여야 한다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구약시대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던 사람들은 백성의 장로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장로라는 호칭은 유대인들에게 인도자를 의미하였습니다.
또한 당시 이방인들에게는 총독들이 있었고, 감독들이 있었습니다. 그리스 사람들과 로마 사람들에게 감독이라는 호칭은 그들을 관리하고 인도하는 책임자를 의미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모두에게 책임자와 인도자를 의미하는 장로와 감독이라는 호칭을 함께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주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내 양들을 먹이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장로와 감독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바로 목자처럼, 성도들을 말씀으로 먹이는 것이며, 사나운 이리들로부터 양 떼를 지키는 것임을 성경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여기에서 니골라당이나 종교 계급주의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주님께서 교회 안에서 부르시고 세우시고, 선물로 주신 사역자들의 역할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 세우신 말씀 사역자를 가리켜서, 목양자, 목회자, 목사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함께 사도행전 6장 1-4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 그 당시에 제자들의 수가 크게 늘어났는데 그리스말 하는 사람들이 자기들의 과부들이 날마다 주는 배급에서 빠지므로 히브리 사람들에게 불평을 터뜨리매
2 그때에 열두 사도가 제자들의 무리를 자기들 앞으로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버려두고 상을 섬기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니
3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는 너희 가운데서 정직하다는 평판이 있고 성령님과 지혜가 충만한 일곱 사람을 골라내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4 오직 우리는 계속해서 기도와 말씀 사역에 전념하리라, 하매
여기에서 우리는 초대 예루살렘 교회 안에 세워진 일곱 명의 사람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들은 히브리 사람들에게만이 아니라, 그리스말 하는 이방인 성도들에게도 구제 사역이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정직하게, 성령 충만하게 상을 섬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렇게 뽑힌 7명의 사람들 중에는, 5절 말씀에 나타난 것처럼, 믿음과 성령님이 충만한 스데반과 빌립이 있었습니다. 스데반은 복음을 설교하다가 순교하였고, 빌립은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복음을 전했던 복음 전파자였습니다. 이처럼 예루살렘 교회에는 성령 충만한 집사님들이 세워졌고, 성도들의 필요를 공급하며 섬기는 일을 하였습니다.

교회 안에서 모두가 주님의 종이고, 제사장이고, 동등한 형제자매인 것은 맞지만, 이렇게 어떠한 역할에 집중할 수 있도록 세워진 직분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성경 안에서 이렇게 세워진 직분들인, 감독들과 집사들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또한 오늘날 우리는 성경에는 그 호칭이 없지만, 교회 안에서의 필요에 따라 세워진 다른 많은 호칭들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하였던 선교사도 그러한 호칭 중 하나이고, 우리는 찬양대장이나, 주일학교 선생님, 중고등부 선생님, 청년부장, 선교부장, 시설관리부장, 재정부장, 새신자부장 등과 같은, 각종 섬김과 필요에 따라 여러 호칭들을 만들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호칭들을 사용하는 것은 교회 안에서의 모든 섬김이 품위 있고 질서 있게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이 자리를 통해서, 교회 안에서 여러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넘치게 주님을 섬기고 계시고, 형제자매들을 섬기고 계시는 모든 형제자매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힘차게 주님을 찬양할 수 있도록 악기 연주로 신실하게 봉사하는 우리 오케스트라 형제자매님들에게 감사합니다. 또 언제나 말씀을 듣기에 앞서 특송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더 활짝 열게 해주시는 갈보리 찬양대, 그리고 오후예배 때 자주 특송을 하는 특별히 우리 어린 학생들에게도 감사합니다.

이 시간 모든 섬김을 다 일일이 언급할 수 없겠지만, 보이지 않는 골방에서, 언제나 교회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우리 부친님들, 모친님들, 형제자매님들 모두 감사합니다. 참으로 이러한 넘치는 섬김들로 인해서, 우리가 지금까지 주님을 잘 따라올 수가 있었습니다. 앞으로 계속해서 이러한 풍성한 섬김들과 함께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힘차게 전진하기를 원합니다.


** 은혜와 화평
이제 우리 다시 빌립보서 1장 말씀으로 돌아오셔서, 빌립보서 1장 2절 말씀을 다시 한번 읽어보시겠습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화평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에게 편지하면서, 그들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로부터, 그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화평이 있기를 원한다고 축복하며 인사하였습니다.

이 말씀과 같이 오늘 우리 성도들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바로 주님의 은혜이며, 화평입니다. 우리가 은혜를 입지 못했다면, 우리는 하나님과 화평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심판자 앞에 선 죄인으로서, 멸망의 시간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구원자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리셨고, 피를 흘리셨으며, 3일 만에 부활하셨고, 나의 모든 죄의 값을 단번에 영원히 완전하게 지불하시고, 구원을 다 이루셨습니다. 오직 은혜로 우리는 구원을 받았고, 하나님을 감히 나의 아버지라고 부를 수가 있게 되었으며, 주님과 화평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는 화평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누릴 수 있게 되었고, 교회 안에서 형제자매들과 화평하게 되었으며, 세상을 향하여 화평의 복음의 신발을 신고, 하나님과 화해하라고 외치는 그리스도의 대사들이 되었습니다.

이 편지를 기록하기 시작한 사도 바울, 로마의 감옥에 갇혀서, 자신의 떠날 날을 기다리며, 여전히 신실하게 주님을 섬기고 있던 사도 바울에게 은혜와 화평이 필요하였고, 이 편지를 받아서 읽으며 함께 복음을 위하여 싸우고 있는 빌립보 성도들에게 은혜와 화평이 필요하였습니다.

또한 오늘 이 말씀을 함께 살펴보고 있는 우리에게도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은혜와 화평이 필요합니다. 화평은 어떤 많은 일들을 잘 처리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 아무 문제가 없기 때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가 넘치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님의 화평이 오늘 우리에게 가득하기를 원합니다.


** 정리
오늘 우리는 “은혜와 화평”이라는 제목으로 빌립보서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참으로 귀한 교회를 주셨고, 교회 안에 귀한 형제자매들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주님의 몸 안에서 주님을 넘치게 만날 수 있고, 누릴 수 있으며, 넘치게 섬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메마른 광야와 같은 땅을 걸으며, 지치고 낙담하고, 고난 중에 있을 때가 참 많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초월하고 뛰어넘는 주님의 은혜와 화평을 통하여, 그 모든 것을 견뎌내고, 넉넉히 이겨내며, 하늘 본향을 향해, 오늘도 한 걸음, 힘차게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기도하고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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