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5.12. 갈보리크리스천아카데미 채플설교
기억하라(벧후 1:12-15)
이승선
우리 다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오늘 함께 보실 말씀은 베드로후서 1장입니다. 베드로후서 1장 12-15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교독하시겠습니다.
12 그러므로 비록 너희가 이것들을 알고 현재의 진리에 굳게 서 있을지라도 너희가 항상 그것들을 기억하게 하는 일에 내가 게으르지 아니하리라.
13 참으로 내가 이 장막에 있는 동안에 너희가 기억하게 하여 너희를 일깨우는 것이 합당한 줄로 생각하노니
14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보여 주신 것 같이 내가 머잖아 반드시 나의 이 장막을 벗어야 할 줄 알기 때문이라.
15 또한 내가 떠나간 뒤에도 너희가 항상 이것들을 기억할 수 있도록 내가 애쓰리라.
오늘 저는 이 말씀을 가지고 “기억하라”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원합니다. 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 서론
오늘 말씀의 제목은 “기억하라”입니다. 기억하라는 말씀을 살펴보기 시작하면서, 기억과 관련해서 여러분에게 문제를 내보겠습니다. 기억이 나면 대답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혹시 우리학교의 이름을 기억하십니까? 네, 바로 “갈보리크리스천아카데미”입니다. 그렇다면 이 책이 무슨 책인지 기억하십니까? 네 좋습니다. 바로 “성경책”입니다. 그렇다면 이번 주 수요일 설교제목은 무엇이었을까요? 기억이 안 나십니까? 바로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입니다. 그렇다면 지난주일 오후설교의 제목은 무엇인지 기억하십니까? 네, 지난 주 오후에는 주의 만찬을 하고, 조별모임을 하였기 때문에 설교제목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일들을 경험합니다. 이러한 삶 속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기억하기도 하지만, 또한 많은 것을 잊어버리기도 합니다. 은혜는 물에 새기고, 원수는 돌에 새긴다는 말처럼, 고맙고 감사한 일은 금방 잊어버리고, 억울한 일만 기억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기쁘고 즐거운 추억을 기억하면서 서글픈 감정을 가지게 되기도 하고, 슬프고 힘들었던 추억을 기억하면서 지나고 보니 재미있는 기억이라고 웃기도 합니다. 때로는 같이 경험한 일이지만 어떤 친구는 생생하게 기억을 하고, 또 다른 친구는 완전히 잊어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베드로후서 말씀은 예수님의 수제자 중 하나였던 베드로 사도의 마지막 편지이고, 유언과도 같습니다. 14절 중간쯤에서 사도 베드로는 자신이 “머잖아 반드시 나의 이 장막을 벗어야 할 줄” 안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곧 그가 죽게 될 것임을 알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죽음을 앞두고 믿음의 성도들에게, 그리고 오늘 우리들에게 오늘 설교의 제목과 같이 권면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듣고 있는 설교의 제목을 기억하십니까? 무엇이죠? 네, 바로 “기억하라”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무엇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 함께 살펴보고, 주님 앞에 더 가까이 나아오기를 원합니다.
** 알아야 기억한다. -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
우리 함께 베드로후서 1장 12절 말씀을 다시 한 번 보시겠습니다.
그러므로 비록 너희가 이것들을 알고 현재의 진리에 굳게 서 있을지라도 너희가 항상 그것들을 기억하게 하는 일에 내가 게으르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을 생각해 보기에 앞서 한 가지 퀴즈를 더 내보겠습니다. 선생님이 어제 아침에 집에서 나오면서 승연이, 호윤이와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호윤이가 선생님에게 무엇이라고 인사를 하였는지 기억하십니까? 네, 너무나 당연하지만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그 때 그 자리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호윤이는 “행복하야대!”라고 인사를 하였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무엇인가를 기억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아는 것을 기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억은 모르는 것에 대한 예상이나, 상상이나, 추측이 아닙니다. 기억은 말 그대로 그 전에 알았던 것, 들었던 것을 다시 생각해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읽은 12절 말씀에서 사도 베드로는 “비록 너희가 이것들을 알고 현재의 진리에 굳게 서 있을지라도 너희가 항상 그것들을 기억하게 하는 일”을 하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알아야 기억할 수 있고, 현재의 진리에 굳게 서 있어야 기억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성경말씀은 우리에게 기억하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그것은 먼저 알아야 한다는 말씀이고, 현재의 진리에 굳게 서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사도 베드로가 말한 “이것들” 곧 “현재의 진리”는 무엇일까요?
우리 잠시 베드로후서 1장 1,2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하나님 곧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통해 우리와 더불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얻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2 하나님과 예수 우리 주를 아는 것을 통해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이 있기를 원하노라.
2절에서 사도 베드로는 하나님과 예수 우리 주를 아는 것을 통해서 성도들에게 은혜와 평강이 더욱 많이 있기를 원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처럼 하나님과 예수님을 아는 것을 통해서 우리는 은혜와 평강을 더욱 많이 누릴 수가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예수님을 몰라서 멸망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너무나 안타깝게도 많은 분들이 죄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줄 모르고, 삶과 죽음의 목적과 의미를 모릅니다.
1절 말씀처럼, 우리는 하나님 곧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통해 보배로운 믿음을 얻은 자들이 되었습니다. 바로 나 대신, 우리 대신 하나님이신 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셔서, 우리의 모든 죄 값을 지불하시고, 우리를 용서하셨으며 지옥에서 건져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복음을 들었고, 알게 되었으며, 보배로운 믿음을 가졌고, 은혜와 평강을 누릴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불교 대학 중 동국대라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이 동국대에서 학생회장을 한 어떤 남자분이 있었습니다. 그는 어릴 적부터 불교 집안에서 자라났고, 아주 열심히 불교를 추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수능시험을 아주 잘 봐서 더 좋은 대학에도 갈 수가 있었지만, 불교에 대한 충성심으로 동국대에 입학하였습니다. 그리고 동국대는 비록 불교 대학이었지만, 그 안에서도 기독교 동아리들이 있어서, 예수님을 전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는 학생회장이라는 그 직위를 이용하여, 기독교 학생들이 불교 학교인 동국대에서 전도를 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막아서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그는 내가 직접 성경을 읽어보고, 좀 알아본 뒤에 확실하게 기독교를 박살내주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의 사복음서를 읽고 복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불교를 통해서는 그 동안 어떻게 죄를 씻을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었는데, 성경을 읽고 나니 죄 없는 예수님께서 죄 많은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고 다시 부활하셔서, 나의 모든 죄를 다 씻으셨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예수님 나는 불교 집안의 아들이고 죄가 많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우리학교에서 예수님을 전하는 사람들을 방해하고 미워하였습니다. 이러한 나도 용서해줄 용의가 있으십니까?” 그때 그는 말할 수 없는 평강이 마음에 임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즉시 예수님을 증거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학생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과 예수님을 얼마나 아는가는 우리가 누리는 은혜와 평강의 그 크기와 깊이와 진함이 얼마인가를 결정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우리가 주님을 더 많이 아는 것을 통해 은혜와 평강을 더욱 많이 누릴 수 있기를 원합니다.
** 안다는 것, 기억한다는 것의 의미
이제 우리 함께 베드로후서 1장 3,4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3 우리를 부르사 영광과 덕에 이르게 하신 분을 아는 것을 통해 그분의 신성한 권능이 생명과 하나님의 성품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도다.
4 그것들로 말미암아 지극히 크고 보배로운 약속들이 우리에게 주어졌나니 이것은 너희가 이 약속들을 힘입어 정욕으로 인해 세상에 있게 된 썩을 것을 피하여 하나님의 본성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니라.
여기에서도 우리는 아는 것이라는 단어를 볼 수가 있습니다. 어디 있습니까? 네, 바로 3절 처음부터 “우리를 부르사 영광과 덕에 이르게 하신 분을 아는 것을 통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를 부르신 분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어떤 일을 시키시려고 부르신 것이 아니라, 영광과 덕에 이르게 하시려고 부르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3절에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신 분이십니다. 자신의 신성한 권능을 따라서, “divine power”, 즉 신성한 권능을 따라서, 생명과 하나님의 성품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받을 수가 있습니까? 네, 바로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 우리를 영광과 덕으로 부르신 하나님을 아는 것을 통해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한 4절에서는 하나님을 아는 것을 통하여, 우리에게 지극히 크고 보배로운 약속들을 주셨고, 이 약속들을 힘입어서 정욕으로 인하여 세상에 있게 된 썩을 것을 피하고, 하나님의 본성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하여 더 알게 될 때, 그분의 약속들이 얼마나 크고 보배로운 것인지 알 수 있고, 우리가 그 약속들에 대해 알게 될 때, 그 약속으로부터 힘을 얻어서 세상에 있게 된 수많은 유혹과 타락의 썩을 것들을 피할 수가 있고, 하나님의 본성에 참여하는 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것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여기에서 안다는 것은 단순히 어떤 지식을 알고 모르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여기에서 주님을 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우리는 곰이라는 동물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당장 우리들의 삶에 어떤 큰 영향이나 차이를 주지는 않습니다. 또 여기 앉아 있는 우리 학생들 중에는 동물에 관심이 많아서, 다른 친구들보다 더 많은 동물을 알고 있는 학생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당장 어떤 영향을 주지는 않습니다.
여러분 혹시 블랙 베어, 즉 검은 곰과 그리즐리 베어, 즉 불곰의 차이를 아십니까? 블랙 베어는 말 그대로 검은 곰인데, 몸집이 비교적 작은 곰입니다. 그런데 만약 숲속에서 이런 곰을 만나게 되면 어떻게 할까요? 곰을 만났을 때 대처요령을 찾아보면, 블랙 베어의 경우는 크게 소리를 지르면서, 몸을 크게 보이도록 두 팔을 크게 휘젓고, 대항하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곰이 돌아서서 가든지, 아니면 그 자리를 고수하려고 계속 이빨을 보이고, 달려들 듯 말 듯 움직임을 보이면, 대항하는 자세로 서서히 뒷걸음질로 거리를 벌리라고 합니다. 등을 보이고 도망가는 것은 안 됩니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더 몸집이 큰 그리즐리 베어, 즉 불곰을 만나게 되면 어떨까요? 최대한 작게 몸을 움츠리고, 눈을 마주치지 말고, 뒷걸음질로 서서히 자리를 피해야 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절대로 뛰면 안 됩니다. 그것은 불곰으로 하여금 추격하도록 자극하는 것이고, 곰이 사람보다 더 빠릅니다. 그리고 곰이 다가오면 두 손으로 뒷목을 감싸고, 배를 웅크린 자세로 누워서 죽은 척을 해야 하고, 곰이 떠나간 뒤에도 10-20분 정도 더 죽은 듯이 누워있다고 일어나라고 나와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곰이 나오는 지역을 여행할 때, 곰 스프레이라고, 곰이 싫어하는 매운 향이 나는 스프레이를 소지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가능하면 곰이 나오는 지역으로 아예 가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은 이런 지식을 아는 것이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있겠지만, 만약 정말 곰을 만나게 되었을 때, 이런 것을 알고 있다면 생명을 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베드로후서 말씀을 통해 주님을 아는 것에 대해 살펴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아는 것은 과연 우리의 실생활에 어떤 영향을 줄까요? 곰에 대해 아는 것이 곰을 만났을 때, 생명의 문제를 결정지을 수 있는 것처럼, 오늘 우리가 주님을 아는 것은 오늘날 우리들의 실생활뿐만 아니라, 영원한 주님의 왕국에서 영광과 덕에 이르는 그 정도까지도 결정지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학생 여러분, 우리가 이 땅을 살면서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4절 말씀에 나타는 것처럼, 정욕으로 인해 세상에 있게 된 썩을 것을 피할 수 있고, 하나님의 본성에 더 깊이, 더 진하게 참여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 주님을 아는 방법
이제 우리 함께 베드로후서 1장 5-8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5 이것과 더불어 열심을 다하여 너희의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7 경건에 형제의 친절을, 형제의 친절에 사랑을 더하라.
8 이것들이 너희 안에 있어 풍성하면 그것들이 너희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에서 빈약하거나 열매를 맺지 못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게 하려니와
여기에서 우리는 어떻게 주 예수 그리스도를 풍성히 알 수 있는가를 볼 수가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열심을 다하여 믿음의 길을 추구하고,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의 친절을, 그리고 형제의 친절에 사랑을 더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이 시간 자세히 살펴볼 수는 없지만, 우리가 이러한 길을 추구하고 가고자 할 때, 이것들이 우리 안에서 풍성하게 되면,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더 알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 열매를 맺는 자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처럼 열심을 다하여 믿음과 덕과 지식과 절제와 경건과 형제의 친절과 사랑을 더하고자할 때, 우리는 가장 먼저 나 자신에 대하여 알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계속해서 이러한 삶을 살고자 한다면, 우리는 또 한 가지를 알게 될 것인데, 그것은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생명으로 우리 안에서 사실 때에만 우리가 이렇게 살 수가 있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을 때 열매를 맺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우리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나뭇가지처럼, 예수님께 붙어있을 때에만이 열매를 맺을 수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이 말씀도 동일한 진리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적당히 거룩해 보이는 종교적인 삶이 아니라, 참된 믿음과 사랑의 길을 걷고자 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우리 자신이 얼마나 아무것도 아닌 사람인지 알게 될 것이고, 오직 주님만이 우리의 모든 것이 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며, 이를 통하여 열매를 얻게 될 것입니다.
** 정리 - 기억하라!
이제 우리 함께 처음에 읽었던 베드로후서 1장 12-15절 말씀을 다시 한 번 번갈아서 읽어보겠습니다.
12 그러므로 비록 너희가 이것들을 알고 현재의 진리에 굳게 서 있을지라도 너희가 항상 그것들을 기억하게 하는 일에 내가 게으르지 아니하리라.
13 참으로 내가 이 장막에 있는 동안에 너희가 기억하게 하여 너희를 일깨우는 것이 합당한 줄로 생각하노니
14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보여 주신 것 같이 내가 머잖아 반드시 나의 이 장막을 벗어야 할 줄 알기 때문이라.
15 또한 내가 떠나간 뒤에도 너희가 항상 이것들을 기억할 수 있도록 내가 애쓰리라.
사도 베드로는 자신이 떠나간 이후에 자기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자기 자신이 떠나간 이후에라도 항상 진리의 말씀을 기억할 수 있도록, 이미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말하고, 또 다시 말하여 계속해서 기억나게 하고,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학생 여러분, 오늘 우리는 “기억하라”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기억나게 하는 사역은 바로 사도 베드로의 사역이었습니다. 이처럼 오늘 우리학교의 선생님들의 가르침과 섬김도 여러분에게 진리의 말씀을 늘 기억나게 하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는 아직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훈련하는 사역이고, 두 번째는 이미 여러분이 들으면서 자라나고 있는 그 진리의 말씀을 결코 잊어버리지 않고 떠나지 않도록 반복하여 단련해서 기억나게 하는 사역인 것입니다.
기억하게 한다는 것은 13절 말씀에 나온 표현대로 일깨우는 것입니다. 일깨우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이었지만, 가볍게 여기고 있었거나 어느새 잊어버리고 있었던 중요한 것을 다시 중요한 순서로 가져다 놓을 수 있도록 기억나게 해주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날마다 성경을 읽고, 날마다 기도를 하고, 날마다 형제자매들과 믿음의 교제를 하는 이유는 이러한 기억, 이러한 일깨움이 우리에게 항상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자라나서 우리학교를 떠나 다른 시간, 다른 환경 가운데 있을 때에라도, 이 진리의 말씀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늘 기억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한 선생님 자신도 결코 이러한 믿음의 길을 잊지 않고, 늘 기억하며 살아가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주님 앞에 서는 그 날까지, 항상 이것들을 기억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기도하고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