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18일 금요일 <갈보리크리스천아카데미 채플 설교>
그 이름
이다헌
오늘 다 같이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도행전 3장입니다. 사도행전 3장 6절 말씀을 가지고 오늘 하나님의 은혜를 함께 나누길 원합니다. 사도행전 3장 6절 말씀, 다 찾으셨다면 저와 여러분이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6. 이에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저는 오늘 “그 이름” 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살펴보길 원합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그 이름”입니다. 잠시 말씀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 서론
비록 정도와 크기의 차이는 다르더라도 사람에게는 누구나 “고난” 이 있습니다. “고난” 은 다른 말로 “어려움” 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나에게 슬픔과 아픔이 닥쳐오고, 무언가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을 때, 그것은 “고난”입니다. 한 달 전, 주님의 축복으로 말미암아 저의 조카가 태어났습니다. 저도 저의 가족과 함께 병원에 있었는데, 아기가 얼마나 조그만지 저의 주먹보다도 얼굴이 작았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흐르자 문득 저는 한 가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대체 왜 아기는 그렇게 쉬도 때도 없이 우는 걸까요? 처음에는 어리기도 하고, 이제 막 태어났으니 그저 아무런 이유 없이 운다고도 생각했었지만 어머니께도 여쭤보고, 인터넷에도 검색해보니 그게 아니었단 걸 깨달았습니다.
때로는 배가 고파서 울기도 하고, 때로는 배가 아파서 울기도 합니다. 때로는 졸려서 울기도 하고, 때로는 몸이 아파서 울기도 합니다. 쉽게 말해서, 항상 무언가 필요해서 울고 힘들어서 운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 아기에게조차 비록 사소하지만 이런 작은 “고난” 들과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물며 이제 막 자라가는 우리에게는 어떻고, 이미 다 자라서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다른 분들은 어떻겠습니까! 나, 그리고 나의 친구, 나의 선생님, 나의 부모님, 이 중에서 아무나 떠올려 보십시오. 혹시 단 한번이라도 힘들어 보이지 않았던, 단 한번이라도 어려워 보이지 않았던, 그러한 사람이 있었던가요?
아마 없었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모든 사람에게는 다 고난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잠깐 디모데후서 2장 3절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디모데후서 2장 3절 말씀입니다. 디모데후서 2장 3절 말씀, 다 찾으셨다면 저와 여러분이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2. 그러므로 너는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서 고난을 견디어 내라.
사도 바울은 지금 우리가 겪는 고난에 대해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그 고난으로부터 도망가거나, 거절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그 고난을 견디어 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난은 내가 거부한다고 해서, 또는 도망간다고 해서, 나에게로부터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뜻과 목적 가운데 모든 사람에게는 언제나 고난과 시험이 주어지게 되어있습니다.
그렇지만 주님은 우리가 고난을 “견딜 수 있게”, “감당할 수 있게” 는 하셨습니다. 우리 다 함께 고린도전서 10장 13절 말씀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3절 말씀입니다. 다 찾으셨다면 여러분께서 읽어주시겠습니다. 시작.
13.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있는 시험 외에는 너희가 어떤 시험도 당하지 아니하였나니 너희가 감당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시험 당하는 것을 너희에게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또한 그 시험과 함께 피할 길을 내사 너희가 능히 그것을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걷지 못하는 어떤 사람”의 이야기를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고난을 견딜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감당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 고난이 해결될 때 우리와 우리 주변에 어떠한 변화가 일어나는지 살펴볼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이 시간 친히 우리 각자에게 말씀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 방법 I <요청>
먼저 우리 다함께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서 사도행전 3장 1절부터 3절까지의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사도행전 3장 1절부터 3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사도행전 3장 1절부터 3절까지의 말씀, 저와 여러분이 번갈아 가며 읽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먼저 읽겠습니다.
1. 이제 아홉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함께 성전으로 올라갈 때에
2. 사람들이 자기 어머니 태에서부터 걷지 못하는 어떤 사람을 메고 왔는데 이 사람은 성전에 들어가는 자들에게 구제물을 요청하게 하려고 그들이 날마다 아름다운 문이라 하는 성전 문에 두는 자더라.
3.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하는 것을 보고 구제물을 요청하거늘
사도 베드로와 사도 요한은 기도 시간에 맞춰 함께 성전으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성경에는 그 시각이 아홉시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스라엘과 한국은 6시간 정도가 차이가 난다고 합니다. 한국 시간으로는 약 오후 3시쯤 되는 것입니다. 그때 성전 문에는 태어날 때부터 걷지 못하던 사람이 들것에 실려 누워 있었습니다. 당시의 성전 문은 2절 말씀에도 기록되어 있지만 은과 금으로 장식되어 있는 매우 아름다운 문이었습니다.
그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구걸하다니 조금은 더럽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당시의 유대인은 남에 눈에 의식되는 걸 좋아했기 때문에, 그곳에서 구걸하던 모든 사람에게 호의적으로 대해주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호의적으로 대해주었다는 것은, 쉽게 말해 돈 몇 푼 던져줬다는 것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걷지 못하던 사람은 그 좋은 자리에서 언제나 그렇듯 하루하루 먹고 살기 위해 구걸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3절 말씀에 보면, 태어날 때부터 걷지 못하던 사람이 구걸하던 곳에 때마침 베드로와 요한이 지나가데 되었고, 베드로와 요한은 때마침 걷지 못하던 사람의 눈에 띄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언제나 그렇듯 그들에게 구걸했습니다. 구제물을 달라고 요청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사도행전 3장 4절 말씀에서, 그 걷지 못하던 사람뿐만 아니라, 베드로와 요한에게도 그 걷지 못하던 사람이 눈에 띄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매일 성전 앞에서 보았던 사람이었지만 서로를 무관심하게 스쳐지나갔을지도 모릅니다. 또는 시간이 맞지 않아서 단 한번이라도 서로를 본 적이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사도행전 3장에서는 걷지 못하던 사람은 먼저 베드로와 요한에게 요청했고, 베드로와 요한은 그를 바라보았습니다.
여러분, 이 앉은뱅이의 모습은, 이 걷지 못하는 사람의 모습은, 꼭 우리의 모습과 같습니다. 우리는 무언가 고난이 다가왔을 때, 닫힌 문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좌절하고 낙심하게 됩니다. 일어서 있다가도 넘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쉽게 일어서지 못합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저 가만히 넘어져 울고 있는 절망감이 아니라, 그저 가만히 앉아 있는 무기력함이 아니라, 먼저 일어나 주님께 요청할 수 있는 단 한 걸음의 용기뿐입니다.
우리 다함께 빌립보서 4장 6절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빌립보서 4장 6절 말씀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빌립보서 4장 6절 말씀, 시작.
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서 기도와 간구로 너희가 요청할 것을 감사와 더불어 하나님께 알리라.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늦은 밤, 우리 집에 도둑이 들어왔습니다. 집에는 우리 밖에 없고, 우리 손에는 휴대폰이 쥐어져 있습니다. 거실에서는 무언가 도둑이 훔치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고, 우리는 지금 방 안에 갇혀 있습니다. 그런 상황일 때,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당연히 먼저 휴대폰으로 경찰서에 신고할 것입니다. 도움을 요청할 것입니다.
위험한 일이 생겼을 때, 먼저 “도움”을 요청하지 않으면 그 누가 도와주겠습니까? 연락하지도 않았는데, 먼저 경찰에 우리 집으로 와서 도와주진 않습니다. 물론 주님은 먼저 다가와 주시는 분이지만, 만약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주님께서 해주시기만 기다린다면, 주님도 우리가 요청할 때까지 기다리실 것입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지금 6절 말씀에서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그것이 힘든 일이라도, 아무리 그것이 지치고 힘든 일이라도, 우리는 염려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요청을 들어주시는 주님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먼저 주님께 기도하고 요청하면, 그분께서 들어주십니다. 지금 이 시간, 주님께 나의 모든 고난과 어려움에 대해서 알리고, 해결해 달라고 요청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원합니다.
** 변화 I <개인>
그렇다면, 과연 주님께 요청했다면, 주님은 어떻게 응답하실까요? 이제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서 우리 다 함께 사도행전 3장 4절과 5절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사도행전 3장 4절과 5절 말씀, 제가 읽겠습니다.
4. 베드로가 요한과 함께 그를 눈여겨보며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매
5.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받으려고 기대하며 그들에게 주의를 기울이거늘
앉은뱅이의 눈에 베드로와 요한이 띄었고, 그가 그들에게 요청하자, 베드로와 요한의 눈에도 앉은뱅이가 띄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앉은뱅이가 요청한 것 이상으로 그에게 응답하였습니다. 함께 찾아보지는 않겠지만, 사도행전 4장 22절에 의하면 성전 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은 자그마치 40년 동안이나 걷지 못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그 어떠한 희망도 없음을 알았고, 베드로와 요한에게 다른 무엇도 아닌 그저 하루하루 먹고 살 수 있는 “구제물”, 즉 돈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6절 말씀에 보면, 베드로는 앉은뱅이의 요청에 그 어떠한 구제물도 주지 않았고 돈도 주지 않았습니다. 비록 걷지는 못해도 열심히 살다보면 언젠가는 행복해 질 것이라는 희망 어린 조언조차 건네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베드로는 무엇을 주었습니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주었습니다.
우리 다 함께 사도행전 3장 6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3장 6절 말씀입니다. 시작.
6. 이에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베드로는 부자가 아니었습니다. 대단한 직장에서 일하고 있지도 않았고, 아마 앉은뱅이보다 조금 더 살만한 형편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였고, 종이였으며,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걷지 못하던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줄 수 있었습니다. 그러자 이제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됩니까?
7절 말씀과 8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7. 그의 오른손을 잡아 그를 일으키매 곧 그의 발과 발목뼈가 힘을 얻고
8. 그가 껑충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기도 하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니라.
정말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40년 동안 걷지 못하던 사람이, 매일 매일 성전 앞에서 구걸하던 사람이, 걷기도 하며 서기도 하고 뛰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주님의 이름의 힘이고, 주님의 힘입니다. 은과 금은 우리로 하여금 고난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지 못합니다. 세상은 우리로 하여금 고난으로부터 해방되게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이름은 우리로 하여금 자유롭게 하고, 넘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서게 하며, 그분의 이름을 찬양하게 합니다. 한번 앉은뱅이의 마음을 떠올려 보십시오. 얼마나 기쁘고, 얼마나 감사하며, 얼마나 찬양이 절로 나오겠습니까!
8절 말씀에 보면, 그는 그들과 함께, 즉 베드로와 요한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기도 하면서 걷기도 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마 어깨동무를 하며 눈물을 흘리지 않았을까요? 베드로와 요한은 그 옆에서 함께 미소를 짓고 있지는 않았을까요?
주님은 감겨 있던 눈은 뜨게 만들어 주시고, 닫혀 있던 입에서는 찬양이 나오게 하시며, 넘어져 있던 다리에는 힘을 주어 다시 일어서게 하십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주님께 요청할 때, 이 모든 아픔과, 슬픔과, 고난과, 역경과, 어려움을 주님께 알리고 그분께 맡길 때 일어나는 놀라운 역사입니다.
우리 다 함께 시편 55장 22절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시편 55장 22절 말씀입니다. 다 찾으셨으면, 저와 여러분이 함께 한 목소리로 크게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22. 네 짐을 주께 맡기라. 그러면 그분께서 너를 붙드시고 의로운 자가 흔들리는 것을 결코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아멘. 주님은 우리의 짐이 버거워서, 또는 힘들어서 외면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이미 우리의 죄의 짐을 짊어지고 십자가에 매달리셨고, 이제는 우리가 자신에게 매달리기를 원하십니다. 지금 이 시간, 우리의 모든 고난과 어려움을 주님께 의탁 드리고, 맡겨드리는, 그러한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 변화 II <주위>
이제 마지막으로, 우리의 고난이 해결될 때 나타나는 또 다른 변화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우리 다 함께 사도행전 3장 9절과 10절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사도행전 3장 9절과 10절 말씀입니다. 여러분께서 읽어주시겠습니다. 시작.
9. 온 백성이 그가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보고
10. 또 그가 성전의 아름다운 문에 앉아 구제물을 바라던 사람인 줄 알고는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놀라며 경이롭게 여기니라.
앉은뱅이가 일어나자, 태어날 때부터 걷지 못하던 사람이 걷게 되자, 그 주위에 있던 모든 사람이 놀라게 되었습니다. 성경에는 정확히 명시되어 있습니다. 한글로는 “온 백성”, 영어로는 “all people", “모든 백성“ 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단지 놀라고 경이롭게 여긴 것뿐만이 아니라 3장 11절 말씀에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있던 곳으로까지 달려갔습니다.
아마 그들은 베드로와 요한에게 쉴 새 없이 많은 질문을 했을 것입니다. 당신들은 누구인지, 대체 어떻게 한 것인지,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앉은뱅이였던 사람에게도 침을 튀겨 가며 물어봤을 것입니다. 지금 기분이 어떤지, 일어날 때 어떠했는지.
이제 그때부터 베드로는 사도행전 3장 13절부터 26절에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온 백성을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기 시작합니다. 유대인이 죽인 예수님이 과거 대언자들이 증거하고 모세가 증거한 메시야를 죽인 일이고, 비록 그리하였을지라도,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그 모든 죄가 사라진다며, 베드로는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합니다.
이제 우리 바로 그 밑에 있는 4장 4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4절 말씀,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4.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말씀을 들은 사람들 중의 많은 이가 믿었고 남자의 수가 오천쯤 되니라.
베드로와 요한이 아직 복음을 선포하고 있을 때에 제사장, 성전의 대장, 사두개인과 같은 여러 사람들이 와서 그들을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더 이상 복음을 선포하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절 말씀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그 말씀을 들은 사람들 중의 많은 이가 믿었고, 남자의 수만 5천 명쯤 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주님께서는 단지 우리의 고난만 해결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주위에 있던 다른 사람들, 우리의 지인들에게까지 기적을 행하십니다. 우리가 기대하는 것 이상의 이상으로, 우리가 요청하는 것 이상의 이상으로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다 함께 에베소서 3장 20절과 21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에베소서 3장 20절과 21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20. 이제 우리 안에서 일하는 권능에 따라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 이상으로 심히 넘치도록 능히 행하실 분에게
21. 곧 그분에게 영광이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교회 안에서 모든 시대에 걸쳐 끝없는 세상까지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아멘.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 이상으로 심히 넘치도록 능히 행하시는 주님께 찬양 드리고, 그분을 경배하길 원합니다. 우리의 계획과 주님의 계획은 하늘과 땅의 차이입니다. 날마다 나의 관점이 아닌 주님의 관점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믿음의 길을 걷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원합니다.
** 정리
오늘 우리는 “그 이름” 이라는 제목으로 걷지 못하는 어떤 사람의 이야기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걷지 못하는 사람이었지만, 베드로와 요한에게 요청함으로 말미암아 주님의 기적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주위에 있던 사람들 또한 주님의 놀라우신 계획 앞에 “구원” 이란 기적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한 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결국 이 모든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 의 이름으로 인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앉은뱅이와 같이 우리의 삶 속에 있는 여러 가지 고난들로 인해 넘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쉽게 일어서지 못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럴 때마다, 삶이 괴롭기 힘들 때마다, 때로는 “돈”에 의지하기도 하고, 때로는 “술” 에 의지하기도 하며,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좌절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주 예수 그리스도” 라는 이름이 주어졌습니다. 우리는 그 이름을 알고, 또 그 이름의 능력을 알며, 그 이름을 부를 수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친구입니다. 우리와 멀리 계시지 않고, 우리와 동 떨어져 계시지 않습니다.
여러분, 친구란 함께 걷고, 함께 살아가며, 함께 웃는, 그런 관계입니다. 때로는 나의 고민과 어려움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위로받을 수 있는 그런 아름다운 관계입니다. 주님은 자신의 보혈을 통해 우리의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 라는 이름을 적으셨습니다. 우리는 그 이름을 분명히 알고, 그분께 요청할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간, 우리가 먼저 주님께 요청하길 원합니다. 내가 겪고 있는 고통과 아픔과 슬픔을 주님께 솔직하게 말씀드리고 터놓게 되길 원합니다. 그것이 첫 번째 단계이고, 그 나머지는 주님께서 계단처럼 하나씩 이어주실 것입니다. 나의 짐들을 주님께서 짊어져 주실 것이고, 또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그 가벼워지는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되길 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