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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랴 Zechari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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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랴 Zechari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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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3.금. 갈보리크리스천아카데미 채플설교

오직 내 영으로 되느니라(슥 4:6,7)


이승선

우리 다함께 일어나서 하나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오늘 함께 살펴볼 하나님의 말씀은 스가랴 4장 6,7절입니다. 
6 그때에 그가 내게 응답하며 말하여 이르되, 주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이르시되, 힘으로 되지 아니하고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며 오직 내 영으로 되느니라.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7 오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스룹바벨 앞에서 네가 평야가 되리라. 그가 그것의 머릿돌을 내놓을 때에 큰 외침으로 부르짖기를, 은혜, 은혜가 그 돌에 있을지어다, 하리라, 하셨느니라.
오늘 말씀의 제목은 “오직 내 영으로 되느니라”입니다. 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서론
오늘의 본문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대언자 스가랴를 통해 스룹바벨에게 주시는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볼 수가 있습니다. 사람의 힘으로나 능력으로 될 수 없는 일이 오직 주님의 영으로 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또한 큰 산이 평야가 되는 놀라운 일이 오직 은혜로 된다고 말씀해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먼저 이 본문의 말씀이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 나타난 것인지 잠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함께 잠시 스가랴서 바로 앞에 있는 학개 1장 14,15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4 주께서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의 영과 요세덱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영과 백성의 모든 남은 자들의 영을 움직이시매 그들이 와서 만군의 주 곧 자기들의 하나님의 집에서 일을 하였는데
15 그때는 다리오 왕의 제이년 유월 이십사일이었더라.
네, 여기서 우리는 스룹바벨이라는 사람이 유다 총독이라는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대제사장 여호수아라고 하는 이름을 볼 수가 있습니다. 아주 당연한 말이지만, 여기에 등장하고 있는 여호수아는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여리고성을 함락하였던 그 여호수아가 아닙니다. 지금 이 시대는 자신의 실수로 다니엘을 사자 굴에 던져 넣었다가 너무나 애타게 그를 찾았던 메대 페르시아의 다리오 왕의 시대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영과 백성의 모든 남은 자들의 영을 움직이셔서, 하나님의 집을 위한 일을 시작하게 하셨습니다. 

과거 역사를 보면, 북 왕국 이스라엘은 아시리아에 의해서 멸망을 당하였고, 남 왕국 유다는 바빌론에 의해 멸망을 당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율법대로 살지 않고, 우상들을 섬기며, 자기들 마음대로 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 이스라엘을 완전히 버리지 않으셨고, 이후에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을 통해, 예루살렘 성을 재건할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의 성벽을 재건하고, 또 성전을 다시 건축하는 일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우선 사마리아 사람들은 다른 이방 민족들과 혼혈된 백성들이었기 때문에, 성전을 건축하는 일에서 거절당하였는데, 그러자 그들은 오히려 이스라엘의 대적이 되어 성전을 재건하는 일을 방해하였습니다. 또 주변에 거하던 다른 이방 민족들도 역시 예루살렘 성이 재건되는 일을 방해하였습니다. 그래서 왕에게 서신을 보내어, 유대인들이 반역을 하려고 한다고 모함을 하기도 하고, 그로 인해서 예루살렘 도성의 복구 작업이 중단되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또한 유다 백성들도 처음에는 힘을 내서 예루살렘을 재건하려고 하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힘을 잃고 말았습니다. 심지어 예루살렘 성을 다시 세우는 일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생각하기까지 하였던 것입니다. 

안에서나 밖에서나 여러 가지 모양으로 하나님의 도시, 하나님의 집을 다시 세우는 일은 너무나 힘이 들었고,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오늘의 말씀이 주어지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 함께 다시 한 번 스가랴 4장 6,7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6 그때에 그가 내게 응답하며 말하여 이르되, 주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이르시되, 힘으로 되지 아니하고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며 오직 내 영으로 되느니라.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7 오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스룹바벨 앞에서 네가 평야가 되리라. 그가 그것의 머릿돌을 내놓을 때에 큰 외침으로 부르짖기를, 은혜, 은혜가 그 돌에 있을지어다, 하리라, 하셨느니라.


방해는 당연한 것이다
예루살렘의 성벽과 또 하나님의 집인 성전을 재건하는 일은 너무나 분명한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일은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밖에서는 대적들이 끊임없이 방해를 하였고, 또 안에서는 함께하는 백성들이 의욕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이 일은 스룹바벨 개인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육신의 뜻도 아니었고, 죄를 짓는 일도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일이며, 분명한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방해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들의 삶 속에서도 우리는 자주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맞이하게 됩니다. 때로는 내가 하는 일이 잘못되어서, 하나님께서 막으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또 때로는 우리가 하는 일이 아무런 문제가 없고, 오히려 분명한 하나님의 뜻인데도 불구하고 방해를 받고, 어려움을 겪는 일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떤 이상한 일이 아니라, 성경 말씀을 통해 볼 때,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라는 것을 우리가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를 원합니다.

스룹바벨 앞에는 큰 산이 놓여있었습니다. 큰 산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도저히 무너뜨릴 수 없는 거대한 문제를 의미합니다. 모세 앞에는 도저히 지나갈 수 없는 홍해 바다가 있었고, 여호수아 앞에는 난공불락의 여리고성이 있었으며, 다윗에게는 거인 골리앗이 있었습니다. 그것들은 모두 해결하기 불가능한 문제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오직 내 영으로 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육신이 아니라 영으로 된다
하나님께서는 스가랴 4장 6절 말씀에서, 힘으로 되지 아니하고, 능력으로 되지 아니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방법, 육신의 지혜와 힘과 능력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주님 자신의 영으로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함께 로마서 8장 5-8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5 육신을 따르는 자들은 육신의 일들을 생각하거니와 성령을 따르는 자들은 성령의 일들을 생각하나니
6 육신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사망이요 영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 육신적인 생각은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참으로 그리할 수도 없으므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8 그런즉 이와 같이 육신 안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느니라.
오늘 우리가 존재하고 살아가는 이유와 목적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어떤 모습을 하고 살아가든지, 또 미래에 어떤 꿈을 꾸며 길을 가든지, 결국 우리의 존재의 이유는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학생 여러분이, 오늘 성실하게 공부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오늘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며, 내가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때, 그분을 기쁘시게 할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내가 공부를 해서 미래에 잘되는 것은 그 다음 문제입니다. 오늘 내가 나에게 주어진 모든 일들, 그것이 청소이든, 책상을 나르는 일이든, 모든 일들에 성실하게 임하는 이유는 그것이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해서 포인트를 받고, 칭찬을 받고, 인정을 받고, 사랑을 받는 일은 그 다음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는 다,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우리가 분명히 인식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허락하신 모든 일들 속에서 우리가 최선을 다하여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며, 우리는 바로 그 목적을 위하여 오늘 숨을 쉬며 살아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육신 안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육신의 방법과 능력으로 한다면,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습니다. 

5절 말씀처럼, 육신을 따르는 자들은 육신의 일들을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겉으로는 열심히 공부하고, 성실하게 살아가고, 또 순종하고, 주님의 일들을 하는 것같이 보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육신을 따르게 된다면, 결국 육신의 일들을 생각하게 될 뿐입니다.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기보다, 자기 자신의 유익만을 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자기의 유익을 얻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손해를 당하게 되고, 더욱 큰 어려움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6절 말씀처럼 육신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사망이요, 영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생명과 평안입니다. 우리가 육신 안에서 생각한다면, 그것이 얼마나 영적인 주제이든, 옳은 일이든, 착하고 선한 일이든, 바른 일이든, 결국 사망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님 안에서 생각하는 것은 생명과 평안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7절 말씀처럼, 육신적인 생각은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고, 오히려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8절 말씀처럼, 육신 안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스가랴 대언자를 통하여 스룹바벨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오늘 설교의 제목과 같이 “오직 내 영으로 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성령님을 통하여서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으며, 오늘 우리들의 삶 속에 있는 모든 일들 속에서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은혜가 있을지어다
이제 우리 다시 스가랴 4장으로 돌아와서 7절 말씀을 다시 한 번 보시겠습니다. 
오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스룹바벨 앞에서 네가 평야가 되리라. 그가 그것의 머릿돌을 내놓을 때에 큰 외침으로 부르짖기를, 은혜, 은혜가 그 돌에 있을지어다, 하리라, 하셨느니라.
이 말씀은 매우 속 시원하고 통쾌한 외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큰 산을 향하여서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오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스룹바벨 앞에서 네가 평야가 되리라.”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영을 통하여, 오늘 우리들의 삶 속에 있는 큰 산을 평야처럼 납작하게 무너뜨리시고 낮추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스룹바벨이 마침내 성전의 머릿돌을 놓을 때 큰 외침을 은혜가 있을지어다, 라고 외칠 것임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머릿돌이란 이 당시에 건물을 지을 때 가장 처음에 건물의 기초로 삼는 돌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스룹바벨은 하나님께서 평야로 만들어주신 큰 산 앞에서, 성전의 머릿돌을 내놓으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오늘 우리들의 삶 속에 필요한 것은 바로 은혜입니다. 은혜란 자격이 없는 자에게 베풀어지는 호의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 이유는 우리가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자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나름대로 착하고 선하기 때문에 은혜를 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아무것도 받을 자격이 없는 자이기 때문에,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인가 자격이 있어서 받는다면 그것은 거래의 대가이며, 품삯이지 은혜가 아닙니다. 

우리가 오늘 주님을 따라가는데 있어서 필요 없는 것, 방해가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큰 산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의 육신이며, 육신의 방법, 육신의 힘, 육신의 능력입니다. 육신으로는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데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먼저는 하나님의 영, 즉 성령 충만이며, 또한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스룹바벨은 하나님의 영으로, 또 은혜로 말미암아 결국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였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오늘 우리들의 삶을 주님의 영으로, 또 은혜로 세워나가길 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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