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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 Nehemi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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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 Nehemi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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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30.일 갈보리침례교회 주일오후예배말씀

마음속에 넣어 주사 행하게 하신 일(느 2:12)

이승선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느헤미야 2장 말씀입니다. 느헤미야 2장 12절 말씀입니다.
내가 나와 함께한 몇 사람과 함께 밤에 일어나고 내 하나님께서 내 마음속에 넣어 주사 예루살렘에서 행하게 하신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아니하니라. 내가 탄 짐승 외에는 다른 짐승이 내게 없었더라.
저는 오늘 “마음속에 넣어 주사 행하게 하신 일”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기 원합니다. 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고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 서론
오늘 말씀의 제목은 “마음속에 넣어 주사 행하게 하신 일”입니다. 오늘 우리가 믿고 따르는 하나님께서는 무한한 힘과 권능을 가진 분이시며, 강력하게 일하시고 활동하는 분이십니다. 
사람으로 오신 참 하나님이신 주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 계실 때, 이 마을 저 마을을 끊임없이 다니시면서 만군의 주의 열심으로 활동하셨고, “내 아버지께서 지금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5:17). 
또한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권능이 있으며, 결코 헛되이 돌아오지 아니하고, 반드시 하나님의 뜻과 기쁨을 이루신다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히 4:12, 사 55:11). 

우리는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과연 어떻게 일하시고 활동하시는가를 볼 수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오늘의 본문인 느헤미야기 말씀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어떠한 도움이 없이 홀로 모든 일을 다 하실 수 있는 전능자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성경 속에 나타난 하나님, 역사 속에 살아계시는 하나님께서는 홀로 일하시기 보다는, 사람과 함께 일하신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우리 함께 먼저 성경말씀 2구절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골로새서 1장 29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이 일을 위해 나도 내 속에서 강력하게 일하시는 그분의 활동에 따라 싸우며 수고하노라.
여기에서 우리는 사도 바울이 어떻게 주님을 따르며 수고하였는지를 볼 수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내 속에서 강력하게 일하시는 하나님의 활동이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이처럼 우리 하나님께서는 강력하게 일하시고 활동하시는 분이십니다. 바로 구원을 받고, 거듭난 영을 가진 믿는 자들 속에서, 바로 내 속에서 강력하게 일하시고 활동하시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주님의 활동을 따라 싸우며 수고한다고 말하였던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내 안에서 일하시는 강력한 주님의 활동에 따라 싸우며 수고하기를 원합니다. 

다음으로 우리 함께 빌립보서 2장 13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너희 안에서 일하사 자기가 참으로 기뻐하는 것을 원하게도 하시고 행하게도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라.
우리 하나님은 강력하게 일하시고 활동하는 분이신데, 바로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일하셔서 자신이 참으로 기뻐하는 것을 우리도 원하게 하시고, 또한 행하게도 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말씀처럼 우리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안에서 이렇게 강력한 권능으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만군의 주의 열심으로 일하시는 분이시고, 아들 하나님이신 주 예수님께서 또한 끊임없이 움직이는 분이시며, 또한 성령 하나님께서 강력한 권능으로 활동하시는 분이십니다. 이렇게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강력하게 살아 역사하고 계십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살아있고 권능이 있는 자신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 안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매일의 삶 속에서 이러한 하나님의 생생한 역사와 인도하심을 따르며, 주님과 동행하기를 원합니다. 

오늘 우리는 느헤미야기 2장 말씀을 통해서, 느헤미야가 어떻게 하나님께서 자신의 마음속에 넣어 주사 행하게 하신 일에 임하였는지 그 모습을 살펴볼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느헤미야와 같이, 그리고 바울과 같이, 그렇게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의 일들을 행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이 시간을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주관하여 주시고,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서 살아있고 권능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말씀하시며, 강력한 권능으로 활동하시기를 원하고, 우리 또한 주님의 말씀에 응답하며 따르기를 원합니다. 


** 개인적 준비 시간
이제 우리 다시 느헤미야 말씀으로 돌아오시겠습니다. 먼저 처음에 읽었던 느헤미야기 2장 12절 말씀을 다시 한 번 보시겠습니다. 
내가 나와 함께한 몇 사람과 함께 밤에 일어나고 내 하나님께서 내 마음속에 넣어 주사 예루살렘에서 행하게 하신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아니하니라. 내가 탄 짐승 외에는 다른 짐승이 내게 없었더라.
살아계신 하나님께서는 먼저 느헤미야의 마음속에 예루살렘 성벽에 대한 원함과 갈망을 넣어 주셨습니다. 그 원함은 바로 원하게도 하시고, 행하게도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였고 또한 부르심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하고 물으시는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였고 순종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느헤미야가 어떻게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속에 넣어 주사 행하게 하신 일을 시작하였는가를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읽은 12절 말씀에서 우리는 특별히 내 하나님께서 내 마음속에 넣어 주사 예루살렘에서 행하게 하신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아니하였다는 표현을 볼 수가 있습니다. 

물론 느헤미야가 주님께서 주신 원함과 부담에 대해서 평생 동안 이 모든 일을 비밀로 간직하였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원함과 부담과 부르심이 지극히 개인적인 것으로써 시작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과 나의 개인적인 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도 “내 하나님께서 내 마음속에” 주신 일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혹은 안하든지, 어떻게 선택하고 어떻게 결정하든지 그것은 나와 하나님 사이의 일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어떤 다른 사람도, 그 어떤 사제나 성직자도 끼어들어올 수 없습니다. 나와 하나님 사이에 들어올 수 있는 중재자가 있다면, 그분은 참 하나님이시며, 또한 참 사람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 한 분 외에는 없습니다. 

우리가 서로 주님을 따를 수 있도록, 위로하고 격려하고 권면할 수는 있지만, 그 어떤 선택이나 결정을 대신 내려주거나 강제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일을 어떻게 결정하고 진행하든지 오직 믿음으로 하는 법을 배우기 원합니다. 믿음으로 한다는 것은 다른 어떤 사람의 주도권 아래 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 때문에 무엇인가를 결정하게 된다면, 고난이 올 때, 사람을 원망하게 될 것이고, 실족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만을 바라보고 오직 믿음으로 걷고 있다면, 고난이 올지라도,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내 하나님께서 내 마음속에 넣어 주신” 일에 대해서, 주님과 개인적인 충분한 시간을 가졌던 것처럼, 우리 각자도 나의 창조자, 나의 구원자, 나의 주님께서, 나를 인도하시고 나에게 주시는 말씀에 대해서 귀를 기울이고 응답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 함께 갈라디아서 1장 16,17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6 자신의 아들을 내 안에 계시하사 내가 그분을 이교도들 가운데 선포하는 것을 기뻐하실 때에 내가 즉시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였고
17 예루살렘으로 나보다 먼저 사도가 된 자들에게로 올라가지도 아니하였으며 오직 아라비아로 들어갔다가 다시 다마스쿠스로 돌아갔노라.
여기에서 우리는 사도 바울의 간증을 볼 수가 있습니다. 바울은 자기 안에 주님의 계시를 받게 되었는데, 그것은 특별히 그를 이교도들 가운데, 즉 이방인들 가운데로 보내셔서 복음을 선포하는 것을 기뻐하신다는 주님의 뜻이었고, 부르심이었습니다. 이 때 사도 바울은 다른 사람들과 의논하거나, 자기보다 먼저 사도가 되었던 사람들을 찾아가지 아니하였고, 개인적으로 주님과 시간을 보냈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그가 교만했기 때문이 아니라, 가장 먼저 하나님과 개인적인 교제가 무엇보다 먼저 필요하였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바울은 다시 예루살렘을 찾아와서 여러 형제들과 만나 의논하였고, 결국에는 안디옥 교회에서 성도들로부터 사도로 세움을 받고 보냄을 받은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여러 자녀들, 학생들이 앉아 있습니다. 어떤 자녀들은 개인적인 믿음으로 여기에 앉아 있을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부모님 때문에 앉아 있을 것입니다. 부모님이 교회를 오시니까 같이 오고, 부모님이 하나님을 믿으시니까 같이 자연스럽게 믿음의 생활을 따라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간 우리가 믿음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기 원합니다. 부모님도 기억하시기를 원하고, 또 자녀들도 기억하기를 원합니다. 부모님이 하나님과 자녀 사이를 중재해 줄 수가 없습니다. 자녀는 부모님을 의존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지극히 개인적인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와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 자녀들은 부모님의 결정과 인도하심에 순종해야 합니다. 나와 하나님 사이에 그 어떤 사람도 있을 수 없다는 말은 부모님의 뜻을 거역해도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내 마음대로 결정해 놓고,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주신 것이라고 억지로 주장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모님을 거역하도록 인도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 자녀들이 개인적인 믿음으로 주님을 따르는 삶을 배우고 훈련하는 가운데, 부모님을 공경하고 순종하는 길, 바로 복을 받고, 장수하며, 잘 되는 길로 걸어가기를 원합니다. 

이제 우리 다시 느헤미야기 2장 말씀으로 돌아오시겠습니다. 느헤미야기 2장 13-16절 말씀도 보시겠습니다. 
13 밤에 내가 골짜기 문으로 곧 용 우물 앞에서 나가 거름 배출구에 이르는 동안에 예루살렘 성벽들을 보았는데 그것들이 무너졌고 그것들의 문들은 불타서 소멸되었더라.
14 그때에 내가 앞으로 나아가 샘 문과 왕의 연못에 이르렀으나 거기에는 내가 탄 짐승이 지나갈 곳이 없었으므로
15 이에 내가 그 밤에 시내를 따라 올라가 성벽을 살펴보고 그 뒤에 돌이켜서 골짜기 문으로 들어와 이처럼 돌아왔으나
16 치리자들은 내가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하였는지 알지 못하였고 나도 그것을 유대인들에게나 제사장들에게나 고귀한 자들에게나 치리자들에게나 그 일을 한 나머지 사람들에게 아직 고하지 아니하니라.
느헤미야는 자기와 함께한 몇몇 사람들과 밤에 일어나 예루살렘 성벽 곳곳을 돌아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일이 무엇인가를 보다 더 분명히 확인하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주님께 잠잠히 묻고 응답을 받는 개인적인 시간을 가졌던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16절에서 “아직”이라는 단어를 볼 수가 있습니다. 결국 느헤미야는 모든 일들을 치리자들에게, 유대인들에게, 제사장들에게, 고귀한 자들에게 고하고 의논할 계획이었지만, 아직은 나머지 사람들에게 고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나의 개인적인 관계가 가장 먼저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도 무엇보다 먼저 개인적으로 하나님과 만나고 교제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기를 원합니다. 


** 형제들과 함께
이제 우리 함께 느헤미야기 2장 17,18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7 그 뒤에 내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당하는 고난을 너희가 보는도다. 예루살렘이 피폐하고 그것의 성문들이 불탔으니, 오라, 우리가 예루살렘 성벽을 건축하여 다시는 수치거리가 되지 말자, 하고
18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내 위에 선하게 임한 하나님의 손과 또 왕이 내게 하신 말씀을 고하였더니 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일어나 건축하자, 하고 이처럼 그들이 자기 손을 강하게 하여 이 선한 일을 하려 하니라.
우리는 먼저 하나님과 나의 개인적인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의 길이 결코 혼자 걸어가는 독단의 길이 아니라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홀로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전능자 하나님께서는 사람과 함께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 역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가지신 이름 중 하나는 바로 “임마누엘”이라는 것인데, 그것은 바로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사람들과 함께 하기를 기뻐하십니다. 마찬가지로 주님과 동행하는 사람도 역시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기를 기뻐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먼저 “내 하나님께서 내 마음속에 넣어 주사 예루살렘에서 행하게 하신 일”에 대하여 아무에게도 아직 말하지 않았었고, 먼저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졌습니다. 
그러나 그 뒤에 그는 이스라엘 형제들과 모든 일을 의논하고 함께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지금 읽은 17절 말씀에서 느헤미야가 처음 입을 열어 말한 내용은 바로 “우리가 당하는 고난”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느헤미야는 “오라, 우리가 예루살렘 성벽을 건축하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8절 말씀에서 느헤미야는 자신을 인도하신 하나님의 선한 손에 대하여 간증하였고, 아닥사스다 왕의 칙령에 대하여 말하였습니다. 이처럼 그는 형제들을 격려했고, 함께 이 일을 하자고 불렀던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형제들을 비난하거나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성벽이 무너진 채로 있는데 도대체 뭐하고 있느냐고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다만 형제들의 용기를 불러 일으켜 주었습니다. 

사실 17절 말씀의 내용을 보면, 그것은 모두가 다 아는 바였고, 모두가 다 원하는 바였습니다. 우리가 당하는 고난을 너희가 본다고 말하였는데, 여기 느헤미야 앞에 모인 형제들이 바로 고난을 당하는 당사자들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이 피폐하고 성벽이 불탄 것도 다 아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리고 성벽을 다시 건축해야 한다는 사실도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모르거나 반대하고자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때 예루살렘에 거하던 이스라엘 형제들에게는 다시 일어설 용기도, 힘도 없었습니다. 원수들이 너무나 강했고, 방해가 극심했기 때문에, 그들은 지쳤고, 예루살렘 성벽을 다시 건축해야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18절 말씀의 마지막 부분에서 우리는 “이처럼 그들이 자기 손을 강하게 하여 이 선한 일을 하려 하니라.”라는 말씀을 볼 수가 있습니다. 또 그 앞에서는 그들이 스스로 말하기를 “우리가 일어나 건축하자.”라고 말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되었습니까? 바로 느헤미야가 자신 위에 선하게 임한 하나님의 손과 왕이 자신에게 하신 말씀을 고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바로 느헤미야의 간증과 믿음의 고백을 통하여 형제들이 다시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었고,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었기 때문에, 강하게 되었으며, 용기를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전히 원수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었고, 상황적으로는 변한 것이 없었지만, 그들은 손을 강하게 하였고, 일어나 건축하자고 말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느헤미야의 모습은 우리가 어떻게 형제자매들을 일으킬 수 있는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라도 영적 전쟁에 패하고 쓰러질 수가 있습니다. 믿음의 성벽이 무너질 수도 있고, 원수의 불화살에 불탈 수도 있습니다. 고난을 당하고 수치를 당하나 다시 일어설 용기도, 힘도 없을 때가 있습니다. 다시 일어서야 하는 것을 알지만, 다시 믿음의 성벽을 건축하고 세워야 하는 것도 알지만, 그렇게 하지 못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이 때 형제들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은 바로 느헤미야와 같은 믿음의 간증과 고백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손이 얼마나 선하고 놀라운지,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길이 어떠한지를 들을 때, 우리는 다시금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고, 주님을 바라봄을 통하여 믿음의 용기를 회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형제자매들이, 서로가 참으로 필요합니다. 때로는 나의 작은 감사가 불평 속에 있던 형제자매에게 새로운 빛을 줄 수가 있고, 때로는 나의 실패와 넘어짐, 그리고 돌이킴에 대한 간증이 낙담 속에 있던 형제자매에게 신선한 위로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때로는 한 지체를 통한 주님의 부르심에 모두가 일어나 건축하자고 응답할 수도 있고, 때로는 한 지체를 통한 믿음의 고백에 모두가 강하게 되어 선한 일을 하고자 하는 용기와 원함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가 느헤미야가 되어 내 위에 선하게 임한 하나님의 손을 간증할 때도 있고, 또 때로는 느헤미야의 간증을 듣고 다시 용기를 내는 형제자매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거하던 형제들에게는 이러한 느헤미야가 필요했고, 또한 하나님께서 마음속에 넣어 주사 행하게 하신 일을 가졌던 느헤미야에게는 예루살렘의 형제들이 필요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들을 교회로 모아주셨습니다. 서로를 사랑하고 섬기는 가운데, 서로를 격려하고 또 권면하는 가운데, 주님을 따를 수 있도록 너무나 귀하고 소중한 교회를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이렇게 귀한 형제자매들을 주신 주님께 참으로 감사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통해 일하기를 원하십니다. 교회 안에서는 지체들 한 명 한 명을 통해 일하시고, 또한 세상을 향해서는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영광을 나타내 보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통해 이 땅에 복음이 선포되기를 원하시고, 또한 진리의 말씀이 선포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이렇게 주님의 뜻을 이루는 귀하고 복된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일어나 건축하자고 외쳤던 느헤미야와 형제들처럼, 우리도 그렇게 주님의 뜻을 위해 강하게 일어나서 용기를 낼 수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 교회가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이며, 진리를 선포하는 놀라운 사명을 신실하게 감당할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 영적 전쟁
이제 우리 함께 느헤미야기 2장 19,20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9 그러나 호론 사람 산발랏과 암몬 족속인 종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이 그 말을 듣고는 우리를 조롱하여 비웃고 업신여기며 이르되, 너희가 행하는 이 일이 도대체 무엇이냐? 너희가 왕을 배반하고자 하느냐? 하기에
20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대답하며 그들에게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 그분께서 우리를 형통하게 하시리니 그러므로 그분의 종인 우리가 일어나 건축하려니와 오직 너희는 예루살렘에서 아무 몫도 없고 권리도 없고 기념물도 없다, 하였느니라.
여기에서 우리는 원수들의 조롱과 비방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형제들이 일어나서 예루살렘 성벽을 건축하고자 할 때, 많은 원수들이 찾아와서 조롱하고 비웃고 업신여기며 낙담시키는 말을 하였습니다. “너희 지금 뭐하니? 왕을 배반하려고 하네?” 

이처럼 우리가 우리 마음속에 넣어 주사 행하게 하신 주님의 일을 행하고자 할 때, 조롱과 비웃음과 방해가 있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잘못했기 때문에 오는 이상한 일이 아니라, 당연히 오는 일입니다. 수련회를 오고자 할 때, 믿음으로 전진하고자 할 때, 어떠한 일을 새롭게 섬기고자 할 때, 크고 작은 어려움과 방해들이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주님의 일을 한다는 것은 곧 영적 전쟁을 치른다는 것입니다. 울부짖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두루 찾아다니는 마귀는 우리가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탄은 우리의 생각 속에서, 또는 다른 사람들의 말을 통하여, 또는 어떠한 어려운 환경과 상황을 통하여, 우리를 좌절시키고 낙담시키려고 시도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마귀의 속임수와 거짓말을 대적하고, 오직 진리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만을 붙들기 원합니다. 

또한 20절 말씀에 나타난 느헤미야처럼, 믿음으로 원수들을 대적하기 원합니다. 
“하늘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형통하게 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그분의 종인 우리는 일어나 건축할 것이다. 너희는 아무 몫도 권리도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복종하라.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희에게서 도망하리라.
바로 이 야고보서 4장 7절 말씀처럼, 우리가 하나님께 복종하고 마귀를 대적한다면, 그가 우리에게서 도망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께 복종하는 가운데 마귀를 대적하기 원하고, 또한 승리하기를 원합니다. 


** 정리
오늘 우리는 “마음속에 넣어 주사 행하게 하신 일”이라는 제목으로 느헤미야기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특별히 오늘 우리는 세 가지 관계에 대하여 주목해 보았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과 느헤미야의 개인적인 관계였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결정하든지 그것은 사람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내 하나님께서 내 마음속에 넣어 주사 행하게 하신 일에 내가 개인적인 믿음으로 응답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느헤미야와 형제들의 관계였습니다. 느헤미야가 개인적인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자기의 마음속에 주신 일을 행하고자 하였을지라도, 그는 결코 독단의 길로 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형제자매들과 함께 하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셨던 선한 손과 인도하심에 대하여 간증하였고, 형제자매들과 함께 이 일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느헤미야는 믿음의 간증과 고백을 통하여 낙담하고 물러나 있던 형제자매들에게 새로운 용기와 힘을 주었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원수와의 관계였습니다. 믿음의 길에 방해와 시련은 언제나 오는 것이며, 우리는 언제나 조롱과 비웃음을 당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과 맞붙어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사람들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세력들과 싸우는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믿음의 말로 원수들을 대적하였던 것처럼,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가운데 믿음의 말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귀를 대적하며 승리하기를 원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 속에서 강력하게 일하시며 활동하고 계십니다. 자신이 참으로 기뻐하는 것을 원하게도 하시고 행하게도 하시는 것입니다. 
이 시간 우리가 내 안에 사시고, 말씀하시며, 인도하시는 주님과 동행하기를 원합니다. 
또한 우리에게 주신 귀한 형제자매들과 함께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용기를 주고받는 가운데 날마다 새롭고 힘차게 주님을 따르며 섬기기를 원합니다. 
그 어떠한 원수 마귀의 조롱과 비방과 공격이 있을지라도, 믿음으로 대적하며 승리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 마음속에서 강력하게 활동하시며 역사하시는 주님의 생명이 더 충만케 되기를 원합니다. 성령 안에서 걸으며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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