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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 Nehemi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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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 Nehemi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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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23.일 갈보리침례교회 주일오후예배말씀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느 2:4)

이승선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느헤미야 2장 말씀입니다. 느헤미야 2장 4절 말씀입니다.
이에 왕이 내게 이르되,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기에 내가 하늘의 하나님께 기도하고
저는 오늘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기 원합니다. 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고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 서론
오늘 말씀의 제목은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입니다. 오늘 우리가 믿고 따르는 하나님은 전능자 하나님이십니다. “전능자”라는 말은 모든 것이 가능하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전능자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물으시는 장면을 자주 볼 수가 있는데, 그 중에서 “할 수 있겠느냐?”, “가능하겠느냐?”라는 질문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물론 표현상으로는 다음과 같은 질문도 있기는 합니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자기 키에 일 큐빗을 더할 수 있겠느냐?”
바로 이 마태복음 6장 27절처럼, 우리는 염려함으로 키를 크게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학생들 중에 키가 크고 싶은 학생들이 많이 있는데, 안타깝지만 염려를 한다고 해서, 키를 크게 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정말 할 수가 있겠느냐고 가능성 여부를 물으신 것이 아니라, 불가능하다고,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질문으로 표현하신 것입니다. 

모든 것이 가능하신 전능자 하나님께는 사람에게 가능성의 여부를 묻는 질문을 하지 않으십니다. 다만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원함을 물으시는 것입니다. “네가 낫기를 원하느냐?”, “내가 너희를 위해 무엇을 해 주기 원하느냐?”, “네가 원하느냐?”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다만 원함을 물으시는 이유는, 모든 권능과 가능성이 오직 하나님께 속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치 자녀와 함께 시장에 간 부모님이 “너는 무엇을 살 수 있니?”라고 묻지 않고, “무엇을 먹고 싶니?”, “뭐 갖고 싶은 거 있니?”라고 묻는 것처럼, 모든 것이 가능하신, 전능자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라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그것을 채우리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시 81:10). 하나님을 향해 위대한 일을 계획하고,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을 시도하라고 말했던 윌리암 캐리의 말처럼, 우리도 하나님 앞에 입을 크게 열고, 우리의 크고 원대한 갈망과 원함을 말씀드리기 원합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 느헤미야기 2장 4절에서도 우리는 느헤미야를 향한 아닥사스다 왕의 질문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아닥사스다 왕의 질문이기도 하였지만, 왕을 통한 하나님의 질문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도 “네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가능성이 아니라,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라고 원함을 물으십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응답하기를 원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이 시간을 주관하여 주시고, 기록된 성경말씀을 통하여, 또 우리 안에 살아계시는 성령님을 통하여, 우리 각자에게 말씀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 슬픈 소식
이제 우리 함께 느헤미야기 1장 1-3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들이라. 제이십년 기슬르 월에 내가 수산 궁에 있었을 때에
2 내 형제들 중의 하나인 하나니가 유다에서 온 몇 사람과 함께 왔기에 내가 도피한 유대인들 곧 포로로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과 예루살렘에 관하여 그들에게 물은즉
3 그들이 내게 이르되, 포로로 사로잡힘을 면하고 거기에 남아 있는 남은 자들이 그 지방에서 큰 고통과 치욕을 당하며 또한 예루살렘 성벽은 무너지고 성벽의 문들은 불탔나이다, 하니라.
느헤미야 말씀은 슬픈 소식으로부터 시작되고 있습니다. 때는 아닥사스다 왕의 제20년이었는데, 에스라가 예루살렘에 도착한 것이 아닥사스다 왕의 제7년이었으므로, 그로부터 약13년이 지난 시점이었습니다. 에스라를 통하여 율법의 말씀이 새롭게 가르쳐지고, 이스라엘 백성들 안에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예루살렘 성벽은 아직도 재건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2절 말씀처럼 느헤미야는 하나니라는 형제를 통해 예루살렘의 소식에 대해 들었습니다. 그리고 3절 말씀처럼, 예루살렘의 남은 자들이 그곳에서 큰 고통과 치욕을 당하며, 성벽은 무너지고 성벽의 문들이 불탔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성벽이 아직도 건축되지 못하였다는 소식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오히려 주변의 원수들로 인하여 성벽 건축이 방해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더 적극적인 방식으로 공격을 받아서 파괴되고 불탔다는 슬픈 소식이었습니다. 

이제 우리 함께 이러한 슬픈 소식에 대한 느헤미야의 반응을 보시겠습니다. 느헤미야기 1장 4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내가 이 말들을 듣고는 앉아서 울고 며칠 동안 애곡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고 기도하여
느헤미야는 이 말을 듣고는 앉아서 울었습니다. 며칠 동안 애곡하였고 하늘의 하나님 앞에서 금식하고 기도하였습니다. 이러한 느헤미야의 반응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느헤미야는 수산 궁에 거하고 있었고, 왕의 잔을 맡은 자로서, 개인적으로는 아주 평안하고 만족할 만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의 소식은 비록 슬프긴 하지만, 그의 생활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헤미야의 마음은 하나님께 있었고, 하나님의 일들에 있었으며,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있었고,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의 소식을 들을 때, 단지 안타까워한 것이 아니라, 울고 며칠 동안 애곡하며 금식하고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서울 한복판에서 게이축제가 열리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성소수자를 존중하자고 하면서 다수자를 무시하고, 그들의 표현의 자유는 존중하면서 진리와 믿음을 표현하는 자유는 억압하려는 비정상적이고 뒤틀어진 시대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만희 씨를 교주로 믿는 신천지에서 수많은 가정들과 인생들을 파괴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고, 장길자 할머니를 어머니 하나님이라고 믿는 안상홍 증인회에서 많은 사람들을 미혹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 가까이 일산에서는 몰몬교의 큰 예배당이 세워졌고, 미관광장에서는 언제나 여호와의 증인들이 서 있으며, 길거리마다 도를 아시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꿈이 없고 자살을 하며, 가정들이 파괴되고, 교회들은 무너져가고 있습니다. 

참으로 애통하고 비극적인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데, 우리는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면서도, 먹고살기에 바쁘고, 개인적인 일들과 즐거움을 추구하면서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 가족이 몰몬교에 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내 가족이 자살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어쩌면 나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일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다지 슬프지 않고 애통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저 멀리 예루살렘의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그 일을 자기 일로 여겼습니다. 그는 울었고, 며칠 동안 애곡했고, 금식하며 기도하였습니다. 이것은 그의 마음속에 개인적인 안락함과 평안한 생활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과 사역과 영광을 원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에게도 이러한 마음이 있기를 원합니다. 잠시 나 자신과 나의 가족과 나의 생활만을 바라보던 눈을 들어서, 추수의 밭을 바라보고, 이 땅의 영혼들과 주님의 부담과 주님의 필요를 바라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 느헤미야의 기도
이제 우리 함께 느헤미야의 기도의 내용을 간단하게 살펴보시겠습니다. 우리 함께 느헤미야기 1장 5-7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5 이르되, 간청하건대 오 주 하늘의 하나님 곧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의 명령들을 지키는 자들을 위해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6 이제 주께서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주의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내가 이제 주의 종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 앞에서 밤낮으로 기도하오며 이스라엘 자손의 죄들을 자백하오니 우리가 주께 그 죄들을 지었나이다. 나와 내 아버지 집이 죄를 지었나이다.
7 우리가 주를 매우 악하게 대하였으며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명령과 법규와 판단의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느헤미야는 주 하늘의 하나님을 불렀습니다. 주 하늘의 하나님은 언약을 지키시는 분이시고, 긍휼을 베푸시는 분이시고, 또한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십니다. 
6절과 7절 말씀에서 느헤미야는 죄들을 자백하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가”라고 부르고 있으며, “나와 내 아버지 집”이 죄를 지었다고 부르고 있습니다. 에스라가 그랬던 것처럼, 다니엘이 그랬던 것처럼 이스라엘의 죄를 자기의 죄로 여기고 자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신 것처럼, 느헤미야도 역시 이스라엘의 죄를 나의 죄로 짊어지며 자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또한 이러한 주님의 마음을 가지기 원합니다. 

이제 우리 함께 느헤미야기 1장 8,9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8 간청하건대 전에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말씀을 기억하시옵소서. 이르시기를, 만일 너희가 죄를 지으면 내가 너희를 민족들 가운데로 널리 흩으리라.
9 그러나 만일 너희가 내게로 돌아와 내 명령들을 지키고 행하면 너희 중에서 하늘 맨 끝 지역에까지 쫓겨난 자들이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그들을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내가 택한 곳으로, 거기로 데려오리라, 하셨나이다.
느헤미야의 기도는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붙들고 주장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셨던 언약의 말씀을 근거로, 그 약속의 말씀 안에서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너희 중에서 하늘 맨 끝 지역에까지 쫓겨난 자들이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그들을 데려오리라 하셨다는 약속의 말씀을 붙들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약속의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 함께 마태복음 28장 19,20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가르치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침례를 주며
20 무엇이든지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보라, 내가 세상의 끝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느니라, 하시니라. 아멘.
주님께서는 우리가 복음을 들고 나아갈 때, 세상의 끝까지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가서 모든 민족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며,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담대히 복음을 선포하고, 진리를 선포하기를 원합니다. 

또 한 구절 더 보시겠습니다. 빌립보서 4장 13절 말씀입니다. 
나를 강하게 하시는 그리스도를 통해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성경은 나를 강하게 하시는 그리스도를 통해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래 나는 약하지만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강합니다. 본래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오늘 이러한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친히 경험하기를 원합니다. 

이제 우리 다시 느헤미야기 말씀으로 돌아오시겠습니다. 느헤미야기 1장 10,11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0 이제 이들은 주께서 주의 크신 권능과 강한 손으로 구속하신 주의 종이요, 주의 백성이니이다.
11 오 주여, 간청하건대 이제 귀를 기울이사 주의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기 원하는 주의 종들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원하건대 이 날 주의 종을 형통하게 하사 이 사람의 눈앞에서 주의 종에게 긍휼을 베푸시옵소서, 하였나니 나는 왕의 잔을 드는 자였느니라.
10절에서 느헤미야는 이스라엘 백성이 주의 종이며, 주의 백성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크신 권능과 강한 손으로 구원하신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1절에서는 긍휼을 베풀어 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느헤미야의 기도에는 죄의 자백이 있었고, 하나님의 백성들과 하나 되는 주님의 마음이 있었으며, 약속의 말씀을 붙드는 믿음이 있었고, 오직 주의 백성을 위해 긍휼을 구하는 기도였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은 기도로 시작되고 기도로 이루어집니다. 누가 기도하는가 하면, 기도를 해야 되기 때문에 의무적으로 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 하나님의 백성들을 사랑하는 사람, 하나님의 일들을 원하고 갈망하는 사람, 울며 애통하는 사람이 저절로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렇게 기도하는 사람을 통하여 자신의 일들을 이루시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 왕의 질문과 느헤미야의 응답
이제 우리 함께 느헤미야기 2장 1-3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 아닥사스다 왕의 제이십년 니산 월에 왕 앞에 포도즙이 있었고 내가 그 포도즙을 들어 왕에게 드리니라. 그런데 내가 전에는 왕 앞에서 슬퍼한 적이 없었으므로
2 왕이 내게 이르되, 네가 병들지 아니하였거늘 어찌하여 네 얼굴에 슬픈 기색이 있느냐? 이것은 다름이 아니라 마음의 슬픔이로다, 하므로 그때에 내가 매우 심히 두려워하며
3 왕에게 아뢰되, 왕께서는 영원토록 사시옵소서. 그 도시 곧 내 조상들의 돌무덤이 있는 곳이 피폐하고 그 도시의 문들이 불타 없어졌사오니 어찌하여 내 얼굴에 슬픈 기색이 없사오리이까? 하매
느헤미야는 왕의 잔을 맡은 자로서, 왕 앞에서 포도즙을 들어 드리고 있었습니다. 느헤미야가 어찌나 슬퍼했던지 그 슬픔을 왕 앞에서 가릴 수가 없었고, 표정으로 여실히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아닥사스다 왕은 어찌하여 얼굴에 슬픈 기색이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언제나 왕의 기분을 살피며, 왕 앞에서 기쁨을 드려야 하는 잔 맡은 자가 감히 왕 앞에서 슬픈 기색을 표출한다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단번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심히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거기다 왕이 느헤미야의 기분을 모른 척, 무시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는데, 이렇게 질문까지 하였다는 것은, 대답에 따라 자칫하면 죽을 수도 있다는 의미였습니다. 

2절의 마지막 말씀처럼, 느헤미야는 매우 심히 두려운 마음이 들었지만, 자신이 슬픈 이유를 조심스럽게 설명하였습니다. 내 조상들의 돌무덤이 있는 곳이 피폐하고, 도시의 문들이 불타서 어쩔 수 없이 슬픈 기색이 있었다고 해명하였던 것입니다. 

느헤미야의 슬픈 이유가 왕의 마음에 들지 않았더라면, 그는 당장 처형을 당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선한 손으로 말미암아, 아닥사스다 왕은 느헤미야의 그 슬픔에 대해 동감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 함께 4절 말씀을 함께 읽어보시겠습니다. 
이에 왕이 내게 이르되,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기에 내가 하늘의 하나님께 기도하고
아닥사스다 왕은 “그래, 그럴 수도 있겠네. 그렇지만 앞으로도 계속 슬픈 얼굴이면 죽는다.”라고 말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왕은 여기에서 파격적인 제안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그래, 그렇게 슬픈 상황이라면, 이제 너는 무엇을 어떻게 하기를 원하느냐?”

우리가 만약 이 땅에 진리를 몰라 헤매고, 멸망을 향해 달려가는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을 위해 슬퍼하고 애통하고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 물으실 것입니다.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이제 우리 함께 5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왕에게 아뢰되, 왕께서 만일 기뻐하시고 왕의 종이 왕의 눈앞에서 호의를 입었사오면 왕께서 나를 유다로, 내 조상들의 돌무덤이 있는 도시로 보내사 내가 그 도시를 건축하게 하옵소서, 하였는데
느헤미야의 응답은 무엇이었습니까? “나를 보내소서.”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까?”라고 물으셨을 때, 대언자 이사야가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하였던 것처럼, 느헤미야는 여기에서 “나를 보내소서.”라고 응답하였던 것입니다.

“니가? 내 앞에서 포도즙이나 따르던 놈이 거기 가서 뭐하려고? 니가 건축을 알아, 정치를 알아? 니가 가면 뭐 달라질 것 같아? 무슨 자격으로 갈 건데?” 
느헤미야 앞에 예상되는 수많은 질문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은 자격이나 가능성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 앞에서 진짜 원하는 사람,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무너지고, 완전히 드려진 사람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기도의 사람 이 엠 바운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은 더 좋은 방법을 찾지만, 하나님께서는 더 좋은 사람을 찾으신다.”
“The Church is looking for better methods; God is looking for better men.” 
(https://www.goodreads.com/author/quotes/942850.E_M_Bounds)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느헤미야와 같은 사람을 찾으십니다. 하나님의 일로 인해 애통할 수 있는 사람, 슬픈 소식에 절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사람,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었을 때, 기꺼이 나를 보내주시라고, 가고자 하는 사람을 찾으시는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간다는 것은 안락하고 평안한 삶을 포기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기꺼이 가고자 하였습니다. 자기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자기만이 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다만 자신이 직접 드려져서 예루살렘 성벽을 세우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 안에 청년들이 있고, 또 청소년들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 안에 이러한 꿈과 비젼을 가진 주님의 일꾼들이 많이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저는 경제적인 여유를 원합니다. 저는 안정된 직장을 원합니다. 저는 취미활동을 즐길 수 있는 삶을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 각자에게 물으시고, 특별히 자라나는 청소년, 청년들에게 묻고 계십니다.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오늘 우리 교회 안에서 느헤미야와 같이, 이사야와 같이 “나를 보내소서.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사용하소서.”하고 드릴 수 있는 귀한 주님의 사람들이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저도 이 시간 주님 앞에 응답하기를 원합니다. 능력도 없고, 자격도 없고, 자신도 없고, 아무것도 없지만, 전능자 하나님께서 나의 능력이 되시고, 나의 강함이 되시고, 나의 지혜가 되시고, 나의 모든 것이 되신다면, 기꺼이 저 자신을 주님께 온전히 드리기를 원합니다. 긍휼의 하나님께서 저를 받아주시고 사용해 주시기 원합니다. 


** 왕의 응답
이제 우리 함께 마지막으로 느헤미야기 2장 6-8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6 (그때에 왕비도 왕의 곁에 앉았더라.) 왕이 내게 이르되, 네 여행이 얼마나 걸리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돌아오려느냐? 하고 이처럼 왕이 나를 보내기를 기뻐하기에 내가 그에게 기한을 정해 주고
7 또 왕에게 아뢰되, 왕께서 만일 기뻐하시거든 강 건너의 총독들에게 내리는 편지를 내게 주사 그들이 나를 데려다가 마침내 내가 유다에까지 이르게 하시고
8 또 왕의 삼림을 지키는 자 아삽에게 편지를 내사 그 집에 속한 궁궐의 문들과 그 도시의 성벽과 내가 들어갈 집을 짓기 위한 들보들을 만들도록 그가 내게 재목을 주게 하옵소서, 하매 내 위에 임한 내 하나님의 선한 손에 따라 왕이 내게 허락하니라.
느헤미야의 헌신과 드림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아멘!”이었습니다. 아닥사스다 왕은 “니가 무슨?”하면서 거절한 것이 아니라, 느헤미야를 보내기를 기뻐하였습니다. 

6절 말씀에서 우리는 괄호 안에 살짝 설명된 부분을 볼 수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그때에 왕비도 왕의 곁에 앉았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왕비는 히브리말로 “하-쉐갈”인데, 바로 “위대한 신부” 즉 왕의 아내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왕비는 바로 에스더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왕비가 느헤미야를 지지하기 위해 함께 있었던 것이고, 왕비가 왕의 곁에 앉은 그 자체로 왕의 결정에 영향을 주었던 것입니다. 아닥사스다 왕, 즉 아하수에로 왕은 느헤미야를 보내기를 매우 기뻐하였습니다. 

느헤미야는 왕의 편지와 성벽 건축에 필요한 재료를 요청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선한 손으로 그를 인도하셔서, 왕의 허락을 받도록 인도해 주셨습니다. 


** 정리
오늘 우리는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라는 제목으로 느헤미야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왕을 통해 느헤미야에게 물으셨고, 오늘 우리에게도 묻고 계십니다.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이 부족한 나의 나무토막 같은 인생에, 주여! 불을 붙여 주소서. 제가 주를 위해 타오르기 원합니다. 나의 삶을 주께서 소멸시키십시오. 이 몸은 주의 것입니다. 나는 오래 사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주님과 같이 완전하고 풍성한 삶을 원합니다.”
이것은 짐 엘리엇 선교사가 대학생 시절에 일기장에 쓴 글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원함을 받으셨습니다. 그는 29세의 나이로 아우카 부족의 창에 맞아 목숨을 잃었지만, 그 일로 말미암아 아우카 부족이 주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헨리 발리라는 목사는 기도회를 인도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세상은 하나님께서 그의 뜻에 완전히 헌신한 사람을 통해 하실 수 있는 일을 보아야 합니다.”
그 때 그 자리에는 디엘 무디라는 사람이 앉아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바로 그런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디엘 무디를 사용하셔서 2억이 넘는 사람들을 주님께로 이끄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도 물으십니다. 
“네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네가 하려는 일이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얼마나 되겠느냐?” 이러한 질문이 아니라,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으십니다. 

저는 이 일산, 한국 땅에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나타내 보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을 사용하셔서 얼마나 놀라운 일들을 이루실 수 있는지 보기를 원합니다. 우리 교회와 학교를 사용하셔서 주님의 능력 있는 일꾼들이 길러내고 일어서는 것을 보기 원하고, 그 일에 드려지기를 원합니다. 

이 시간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라는 주님의 물음에 믿음으로 응답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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