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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 Ez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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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 Ezra
로빈시리즈
2022.01.11 18:16

[#06] 큰 범법 적은 형벌(스 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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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로빈

2017.07.16.일 갈보리침례교회 주일오후예배말씀

큰 범법 적은 형벌(스 9:13)

이승선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에스라 9장 말씀입니다. 에스라 9장 13절 말씀입니다.
우리의 악한 행실과 큰 범법으로 인하여 모든 일이 우리에게 임하였사오나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불법들에 상응하는 형벌보다 적은 형벌을 우리에게 주시고 우리에게 이와 같은 구출을 베푸셨사오니
저는 오늘 “큰 범법 적은 형벌”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기 원합니다. 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고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 서론
오늘 말씀의 제목은 “큰 범법 적은 형벌”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발견할 수가 있는데, 하나님은 가장 먼저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신 분이십니다. 또한 그와 동시에 사랑과 은혜와 긍휼이 풍성하신 분이십니다. 지금 우리가 읽은 에스라 9장 13절에서도 에스라가 고백하기를 우리의 악한 행실과 큰 범법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불법에 상응하는 형벌보다 적은 형벌을 주시고, 오히려 우리에게 구출을 베푸셨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형벌을 내리셨다는 것은 그분께서 마땅히 죄를 심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심을 보여주는 것이고, 큰 범법에 상응하는 것보다 적은 형벌을 주시고, 오히려 구출을 베푸셨다는 것은, 그분께서 긍휼이 풍성하신 분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말씀대로 하면, 우리는 이미 죽었어야 마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우리는 버젓이, 감히, 무사하게, 이렇게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선하고 의로웠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에게 죄와 불법이 가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놀랍고 신기한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이 더욱 풍성하였기 때문에, 오늘도, 지금도 우리가 숨을 쉬며 살아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좋으신 하나님을 우리가 더 알기를 원하고, 더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에스라 9장과 10장의 말씀은 성경에서 가장 슬프고 마음 아픈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들의 삶과 인생,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는 과거와 현재의 죄악을 도려내고 끊어내며, 새로운 미래를 시작해야 하는 그 결단과 선택의 순간에 이르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을 끊어내는 것은 정말 죽는 것만큼, 어찌 보면 죽는 것보다 더 힘들었을 것이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침내 결단하였고, 새롭게 되기를 원하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주님 앞에 더 가까이 나오는 복된 시간이 있기를 원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이 시간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 생생하게 말씀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 이스라엘의 죄악
이제 우리 함께 에스라 9장 1,2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 이제 이 일들이 이루어진 뒤에 통치자들이 내게 나아와 이르되,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그 땅들의 백성들의 가증한 일들 곧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과 암몬 족속과 모압 족속과 이집트 사람들과 아모리 족속의 가증한 일들에 따라 행하여 그들로부터 자신을 분리하지 아니하였으니
2 그들이 자기와 자기 아들들을 위해 그들의 딸들을 취함으로 거룩한 씨가 스스로를 그 땅들의 백성들과 섞이게 하였나이다. 참으로 이 범법에서 통치자들과 치리자들의 손이 으뜸이 되었나이다, 하므로
1절 말씀은 “이제 이 일들이 이루어진 뒤에”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 일들이란, 에스라 8장 뒷부분에 등장하는 내용처럼, 에스라가 모든 여정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도착하여서, 모든 재물들을 필요한 곳에 분배하고, 하나님께 번제 헌물을 드렸던 바로 그 일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제 성전이 완성되었고, 성벽이 세워져 나가고 있었으며,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도 준비되었습니다. 이제부터 예루살렘을 완전히 재건하여 하나님만을 섬기고 따르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에스라의 마음은 벅차올랐을 것이고, 기쁨과 희망으로 가득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에스라 9장 1절 말씀에서, 이제 이 일들이 이루어진 뒤에, 이스라엘의 통치자들이 에스라에게 와서 전해주는 소식은 매우 충격적이고 절망적인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가나안 땅의 여러 족속들을 따라 우상숭배의 가증한 일들을 행하였고, 그들 자신을 분리하지 아니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2절 말씀처럼, 그들을 사랑해서, 결혼을 하고 가정과 집안을 섞이게 하였는데, 참으로 이 범법에서 통치자들과 치리자들의 손이 으뜸이 되어 앞장을 섰다는 것이었습니다. 

과거에 솔로몬 왕이 이러한 길을 걸었기 때문에, 그의 아들 르호보암의 때에, 이스라엘이 남 왕국 유다와 북 왕국 사마리아로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또 계속해서 이스라엘 온 민족이 금송아지와 바알과 아스다롯과 같은 온갖 우상들을 숭배하였으므로, 북 왕국과 남 왕국의 온 이스라엘이 멸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이 회복되려고 하는 이 시점까지도 여전히 그러한 불법과 죄악들이 지속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상태는 안에서부터 썩어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단지 외적으로 성전을 다시 세우고, 성벽을 재건하는 것만으로는 이스라엘을 새롭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백성의 통치자들과 치리자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까지도 이방 민족들과 벌써 많이 섞이고 있었으므로, 이방의 문화와 가문이 섞여 들어오고 있었으므로, 이스라엘의 정체성과 민족성 자체가 사라져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잠시 신명기 7장 1-4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 주 네 하나님께서 네가 가서 소유할 땅으로 너를 데려가시고 네 앞에서 여러 민족 곧 헷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 등 너보다 크고 강한 일곱 민족을 내쫓으실 때에
2 즉 주 네 하나님께서 그들을 네 앞에 넘겨주실 때에 너는 그들을 치고 그들을 진멸할지니라. 또한 너는 그들과 어떤 언약도 맺지 말며 그들에게 긍휼을 보이지도 말고
3 또 그들과 결혼하지 말지니 네 딸을 그의 아들에게 주지 말며 네 아들을 위하여 그의 딸을 취하지 말지니라.
4 그들이 네 아들을 돌이켜서 나를 따르지 못하게 하므로 그들이 다른 신들을 섬기리니 그러면 주의 분노가 너희를 향해 타올라 갑자기 너를 멸하리라.
아직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하나님께서는 미리 모세를 통해 이런 말씀을 주셨습니다. 3절 말씀처럼 그들과 결혼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이유는 4절처럼, 이스라엘이 결국 다른 신들을 섬기는 우상숭배로 빠져들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말씀 그대로 에스라 시대에 이스라엘의 상태는 이미 오랜 시간 동안 이방 민족과 결혼하고 섞이면서, 많은 우상들을 섬기는 상황이었습니다. 

예외적으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향해 분명한 믿음의 고백을 하였던 여리고성의 라합이라든지, 모압 여인 룻을 주의 백성으로 받아주셨고, 심지어 다윗 왕의 계보, 즉 메시야의 계보에까지 이름을 올리게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이방 여인들이었지만, 하나님을 향한 분명한 믿음의 고백을 가졌고, 우상 신들을 완전히 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상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백성 가운데 통치자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오히려 으뜸이 되어 이방인들과 결혼하고 섞이게 되었는데, 문제는 그 가정들이 우상숭배를 버리고, 하나님만을 섬기게 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두가 이방 가족들과 함께 우상숭배에 가담하여 가증한 짓을 행하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온 가족이 사이좋게 하나님도 섬기고, 우상들도 섬겼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 함께 에스라 2장 62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이들이 계보대로 계수된 자들 가운데서 자기들의 등록부를 구하였으나 그들이 발견되지 아니하였으므로 그들을 더러운 자로 여겨 제사장 직무를 행하지 못하게 하고
여기에서 우리는 제1차 포로귀환 때에 예루살렘에 왔던 사람들을 볼 수가 있는데, 몇몇 사람들이 제사장의 직무를 행하려고 나왔지만, 그들의 계보를 증명할 수가 없어서, 제사장의 직무를 행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아론의 후손들 가운데, 제사장 가문의 많은 사람들이 이방인들과 섞이게 되었기 때문에, 계보를 떳떳하게, 정확하게 기록하지 못했고, 결국 그 후손들은 등록부를 구하지 못하여, 많은 사람들이 제사장의 직무를 더 이상 수행할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제사장 가문과 집안이 사라졌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이스라엘의 영적 분위기는 오늘날에도 비슷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도 사랑하기는 하지만 세상의 많은 것들도 함께 사랑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상을 버리고,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지만, 우리는 어느 정도만 분리한 채 여전히 세상의 많은 즐거움과 연합하며 섞여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상태는 바로 저의 상태이며, 오늘 우리들의 상태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이 세상과 타협하고 섞이면서 두리뭉실하게, 애매모호하게, 미지근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의 범법이 참으로 크지만, 하나님께서는 마땅히 우리가 당해야 하는 것보다 적은 형벌을 당하게 하셨고, 우리가 우리 자신의 불법으로 인하여 고통을 당할 때, 오히려 구출을 베푸시고 도와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오늘 여기까지 올 수가 있었고, 지금도 버젓이 숨을 쉬며 살아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오늘 우리가 더 알기를 원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우리도 더 참되게 사랑하기를 원하고, 기쁘시게 하기를 원하며, 더 가까이 따르고 동행하기를 원합니다. 


** 에스라의 기도
이제 우리 함께 에스라 9장 3,4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3 내가 이 일을 듣고는 내 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놀란 채 앉았더니
4 그때에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말씀들로 말미암아 떤 모든 자가 사로잡혀 갔던 자들의 범법으로 인해 내게로 모였더라. 내가 저녁 희생물을 드릴 때까지 놀란 채 앉아 있었노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이방 민족들과 분리하지 아니하며, 통치자들과 치리자들이 으뜸이 되어 섞여버렸다는 이 소식을 들었을 때, 에스라는 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었습니다. 에스라는 너무나 충격을 받았고,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율법에 따라 아침과 저녁에 희생물을 드렸는데, 에스라는 아침 희생물을 드린 뒤 얼마 후 이 소식을 들었을 것이고, 저녁 희생물을 드릴 때까지 놀란 채 앉아있었습니다. 너무나 기가차고, 어이가 없고, 화도 나고, 슬프고, 충격적이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죄에 대한 에스라의 이러한 마음과 반응은 참으로 우리의 모범이 됩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를 발견하고 깨닫게 되었을 때, 이렇게 에스라와 같이 민감하고, 엄중하게 반응할 수 있기를 참으로 원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4절 말씀에서 새로운 희망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에스라가 혼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들로 말미암아 떨었던 모든 자, 주의 말씀을 두려워하고, 주를 두려워하는 형제자매들이 에스라에게 함께 모였던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함께 짊어지고, 함께 해결하고, 함께 새로운 길을 걷기 위하여 모여들었다는 것입니다. 
“야야, 분위기 안 좋다. 가자. 다음에 오자.”
이렇게 눈치를 보면서, 슬금슬금 피한 것이 아니라, 주를 두려워하던 백성들은 오히려 모두 모여들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가정 안에서, 삶 가운데서 여러 가지 문제들을 접하게 됩니다. 사실 이 세상에서 문제가 없는 사람이 없고, 문제가 없는 곳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때 “여기엔 사랑이 없네, 진리가 없네, 문제가 많네.”하면서 떠나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함께 짐을 지고, 주님 앞에 가지고 나가려고 모여드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에스라에게는 이러한 형제자매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더 감사한 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귀한 교회와 형제자매들을 주신 주님께 참으로 감사합니다.

이제 우리 함께 에스라 9장 5,6절을 보시겠습니다. 
5 저녁 희생물을 드릴 때에 내가 근심 중에 일어나서 내 옷과 겉옷을 찢은 채 무릎을 꿇고 주저앉아 주 내 하나님을 향해 두 손을 펼치고
6 말하기를, 오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 곧 내 하나님을 향해 내 얼굴을 들기에 부끄럽고 낯이 뜨거우니 우리의 불법이 많아서 우리 머리 위로 넘치고 또 우리의 범법이 자라서 하늘들에까지 이르렀나이다.
에스라는 저녁 희생물을 드릴 때가 되어 근심 중에 일어났습니다. 찢겨진 옷을 그대로 입은 채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높이 들었습니다. 백성의 소식을 들었던 에스라의 첫 번째 반응은 당장 백성들을 소집해서 심판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에스라의 첫 번째 반응은 먼저 무릎을 꿇는 것이었습니다. 
에스라는 하나님을 향해 얼굴을 들기가 부끄럽고 낯이 뜨겁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불법이 많아서 우리 머리 위로 넘치고, 또 우리의 범법이 자라서 하늘들에까지 이르렀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에스라는 이 부분에서 잘못한 것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에스라는 “우리의 불법, 우리의 범법”이라고 말하였습니다. 마치 다니엘이 그러했던 것처럼, 에스라도 여기에서 백성의 잘못을 자기의 잘못으로 포함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우리의 잘못을, 예수님 자신의 잘못으로 담당하신 것처럼, 에스라도 여기에서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마음, 제사장의 마음, 주님의 마음으로, 백성들과 하나가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마음도 그러하기를 원합니다. 

계속해서 에스라 9장 7-9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7 우리 조상들의 시대로부터 이 날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큰 범법 가운데 거하였사오매 우리의 불법들로 인하여 주께서 우리와 우리 왕들과 우리 제사장들을 그 땅들의 왕들의 손에 넘겨주사 칼에 죽고 포로로 사로잡히고 노략을 당하게 하시며 얼굴을 당황하게 하심이 이 날과 같으니이다.
8 이제 주 우리 하나님께서 잠시 동안 은혜를 베푸사 남은 자를 우리에게 남겨 두어 피하게 하시고 또 자신의 거룩한 곳에서 우리에게 못을 주셨사오니 이것은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의 눈을 밝히시고 우리를 우리의 속박 가운데서 조금 소생시키려 하심이니이다.
9 우리가 노예가 되었을지라도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우리의 속박 가운데 버리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페르시아 왕들의 눈앞에서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사 우리를 소생시키시며 우리 하나님의 집을 세우게 하시고 또 그것의 황폐함을 보수하게 하시며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우리에게 성벽을 주셨나이다.
7절 말씀에서 계속해서 에스라는 “우리”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큰 범법 가운데 거하였고, 우리의 불법들로 인하여 우리가 심판을 당하였다고 고백하였습니다. 

8절에서 에스라는 우리에게 못을 주셨다고 말하였는데, 이 말의 의미는 “내가 그를 단단한 곳에 박힌 못같이 고정하리니”라는 이사야 22장 23절의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예루살렘 땅에 단단하게 고정하여 정착하게 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이 기도 가운데에는 이스라엘 조상들의 시대로부터, 즉 과거로부터의 죄악들과 잘못들이 고백되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는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와 긍휼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함께 에스라 9장 14,15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4 우리가 다시 주의 명령들을 어기고 이 가증한 일들을 행하는 백성들과 인척관계를 맺으리이까? 주께서 우리에게 분노하사 마침내 우리를 소멸시키시고 남을 자나 피할 자가 없게 하지 아니하시리이까?
15 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는 의로우시오니 우리가 피하여 여전히 남게 된 것이 이 날과 같나이다. 보소서, 우리가 이 일로 인하여 주 앞에 설 수 없으므로 우리의 범법 가운데서 주 앞에 있나이다, 하니라.
에스라의 기도는 원망이나, 불평이나, 책임 회피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에스라의 기도는 죄를 인정함과 애통함과 백성들을 끌어안음과 그 동안의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로 인한 감사의 고백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우리가 그 동안 이렇게 잘못했는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긍휼히 여기셨고, 또 하나님께서 이렇게 긍휼을 베풀어 주셨는데, 우리가 지금까지도 이렇게 잘못하고 있으므로, 하나님 앞에 설 수가 없다고 통회하며 자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함께 에스라 10장 1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이제 에스라가 하나님의 집 앞에서 울며 엎드려 기도하고 자백할 때에 이스라엘 중에서 남자와 여자와 아이들의 심히 큰 회중이 그에게 모였으니 이는 백성이 심히 크게 울었기 때문이더라.
에스라의 애통함과 눈물의 기도는 함께 모인 형제자매들에게 동일하게 전달되었습니다. 함께 기도하던 형제자매들이 함께 울었고, 함께 자백하였고, 함께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더 많은 남자와 여자와 아이들의 심히 큰 회중이 모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는 하나님 앞에 완전히 무너진 사람, 완전히 엎드려진 사람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날 옳고 그름을 알고 따지는 사람, 문제를 재기하고 지적하는 사람, 호통을 치고 책임자를 추적하는 사람은 많지만, 정작 그 모든 문제들과 부족한 사람들을 다 끌어안아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애통하는 사람은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옛날 갈릴리 땅에도 죄인들을 비난하고 손가락질하는 바리새인들이 참 많이 있었지만, 그들은 아무도 구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품어 안으셨고, 우리의 모든 죄를 자신의 죄로 담당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회복을 원하고, 부흥을 원한다면, 에스라처럼 되기를 원하고, 예수님처럼 되기를 원합니다. 


** 결단 : 용기와 소망
이제 우리 함께 에스라 10장 2-4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2 엘람의 아들들 중의 하나인 여히엘의 아들 스가냐가 에스라에게 응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을 대적하고 범법하여 그 땅의 백성으로부터 이방 아내를 취하였으나 이제 이 일에 관해 이스라엘에 아직 소망이 있나이다.
3 그런즉 이제 우리가 우리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내 주의 권고와 우리 하나님의 명령에 떠는 자들의 권고에 따라 모든 아내들과 그들에게서 태어난 자들을 버릴 터이니 그 일을 율법에 따라 행하소서.
4 이 일은 당신에게 속한 일이니 일어나소서. 우리도 당신과 함께하리니 크게 용기를 내시고 그 일을 행하소서, 하매
에스라가 한 것은 기도로 주님께 나아간 것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시간부터, 변화가 시작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역사였고, 성령님의 역사였습니다. 백성 중의 한 사람인 스가냐가 와서 우리가 비록 잘못했지만, 그래도 아직 소망이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다 사라진 것 같고, 주의 진노를 일으켜서 심판이 임할 수밖에 없을지라도, 그래도 아직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3절 말씀처럼, 하나님의 명령을 두려워하여 떨며 순종하기를 원하는 백성들이,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고 이방 아내들과 자녀들을 떠나버릴 것을 결단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스가냐는 에스라를 격려하면서 율법에 따라 행하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4절 말씀처럼, 일어나시라고, 우리가 당신과 함께할 것이니 크게 용기를 내시고 일어나서 그 일을 행하라고, 힘과 용기를 주었던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상황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내가 만약 이 당시에 이방 아내와 결혼한 이스라엘 사람이었다면, 그래서 내 아내와 자녀들을 모두 버리고 분리시켜야 했다면, 나는 과연 할 수 있었을까? 나의 사랑과 온 마음을 주고, 과거의 추억이며, 미래의 꿈이며, 오늘의 행복인 그 가족들을 다 떠나보내고 분리할 수 있었을 것인가? 이때에 참으로 이스라엘의 상황은 그러해야 함이 마땅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정말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할 만큼, 죽음을 통과하는 것 같은 결단이며 순종이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주님의 뜻에 순종하며, 주님 외에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것은 오직 십자가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계속해서 에스라 10장 5절과 6절 말씀을 눈으로 보시면, 에스라는 자기 옆에 모였던 수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온 이스라엘로 하여금 맹세하게 하였습니다. 지금 한 말을 반드시 지키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온 이스라엘 민족을 새롭게 할 것을 하나님 앞에서 맹세시켰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잠시 오늘날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을 한 믿는 자가 여기에 등장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반드시 이혼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를 살짝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함께 고린도전서 7장 13-15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3 또한 여자에게 믿지 않는 남편이 있는데 그가 그녀와 함께 살기를 기뻐하거든 그녀는 그를 버리지 말라.
14 믿지 않는 남편은 아내로 말미암아 거룩히 구별되고 믿지 않는 아내는 남편으로 말미암아 거룩히 구별되었나니 그렇지 않으면 너희 자녀들도 부정하였을 터이나 이제 그들이 거룩하니라.
15 그러나 믿지 않는 자가 떠나거든 떠나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그런 경우에 속박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에 이르도록 우리를 부르셨느니라.
신약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에스라 때의 상황과는 조금 다릅니다. 에스라와 함께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선택받은 민족으로서의 그 정체성을 반드시 지키기 위해서, 이방 가족들을 떠나보냈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들은 속박을 받지 않고 자유롭습니다. 

13절 말씀처럼, 믿지 않는 남편이나 아내가 믿는 자와 함께 살기를 기뻐하거든 버리지 말 것이며, 15절 말씀처럼 떠나거든 떠나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믿는 남편과 믿는 아내가 믿음의 가정을 이루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 안에 많은 청년들이 있고, 또 초중고등 학생들이 자라나고 있습니다. 이제 5년, 10년만 지나면 우리 교회의 기둥들이 되어 있을 것인데, 우리 청년들이 참으로 귀한 믿음의 가정들을 잘 이루어서,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주님의 사역을 신실하게 감당하며, 끝까지 믿음의 길을 잘 걸어가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이제 우리 다시 에스라 10장으로 돌아오셔서, 에스라 10장 6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이에 에스라가 하나님의 집 앞에서 일어나 엘리아십의 아들 요하난의 방으로 들어가니라. 그가 거기로 가서 사로잡혀 갔던 자들의 범법으로 인해 애곡하였으므로 빵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더라.
에스라의 애곡과 기도는 1회성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에스라는 이스라엘이 온전히 회복되기를 계속해서 애통하며 기도하였고, 또한 금식하며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일은 기도로, 무릎으로 이루어집니다. 저도 더 많이 무릎 꿇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고, 우리 모두가 나의 문제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서도, 금식하며 애통하며 기도할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이제 우리 함께 에스라 10장 7절부터 눈으로 훑어보시겠습니다. 7절 말씀에서는 포로귀환을 하였던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소집령이 선포되었습니다. 8절 말씀처럼 누구든지 소집에 응하지 아니하여 사흘 안에 오려 하지 아니하면, 그의 전 재산을 몰수시키고, 또한 이스라엘 회중 밖으로 분리 추방을 시키겠다고 선포하였습니다. 그래서 9절 말씀처럼 유다와 베냐민의 모든 사람이 예루살렘에 모였고, 그 때는 구월이었습니다. 에스라가 도착한 것이 5월이었고, 이제 9월이 되었습니다. 이때의 날씨는 천둥번개가 치고, 큰 비가 내리는 두렵고 떨리는 날씨였습니다. 

이제 우리 함께 에스라 10장 11,12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1 그러므로 이제 주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께 자백하고 그분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하여 이 땅 백성과 이방 아내들로부터 너희 자신을 분리할지니라, 하매
12 이에 온 회중이 큰 소리로 응답하여 이르되, 당신이 말씀하신 대로 우리가 반드시 행하리이다.
제사장 에스라를 통하여 공식적인 선포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자백하고, 그분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하여, 이 땅의 백성과 이방 아내들로부터 분리할지니라. 그러나 온 회중이 큰 소리로 응답하여 반드시 그 말씀대로 행하겠노라고 응답하였습니다. 

이제 우리 함께 17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그들이 첫째 달 초하루에 이르러 이방 아내를 취한 모든 자에 대한 조사를 마치니라.
시간이 흘러 다음 해가 되었고, 새해 1월 1일이 되었습니다. 그때에 이르러 약 3개월간 진행된 조사가 마무리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그 다음부터 제사장들의 아들들 가운데서 이방 아내와 결혼했던 사람들의 명단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구절인 44절 말씀도 보시겠습니다. 
이들이 다 이방 아내를 취하였으며 그들 중에서 몇 사람은 아내들을 취하고 그들을 통해 아이들을 가졌더라.
이렇게 에스라 말씀은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 정리
오늘 우리는 “큰 범법 적은 형벌”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에스라의 모든 말씀이 마무리 된 것을 보았습니다. 에스라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이 누구냐? 예루살렘에 성전을 재건하라.”라는 고레스 왕의 부르심으로 시작되었고, 잠시 중단되었다가, 다리오 왕, 즉 아닥사스다 왕의 칙령에 의해 다시 시작되어 곧 완공되었습니다. 에스라는 하나님의 손을 의지하여 예루살렘에 왔고, 율법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가르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새롭게 시작하였습니다. 

에스라는 구약의 말씀에 익숙한 서기관이라 하였는데, 그가 알고 있었던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하나님을 거역하고 반역했던 백성이었으며, 그가 알고 있었던 하나님은 큰 범법에도 불구하고 그에 상응하는 것보다 적은 형벌을 주시는 하나님이었습니다. 

에스라 말씀은 쓰다가 만 것처럼, 마무리가 안 된 것처럼, 열릴 결말처럼 끝나고 있습니다. 백성들이 이방 가족들을 버리겠다고 대답은 했지만, 이방 아내들과 결혼했던 제사장들의 명단까지 나열을 했지만, 그 다음에 정말 백성들이 이방 가족들을 버렸는지, 어쨌는지 결말이 없이 끝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끝났을까요? 그것은 어쩌면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의 삶 속에서 결말을 원하시기 때문일 것입니다. 마치 주님께서 오늘 우리들에게 과연 너는 너가 사랑하고 연합했던, 마음속의 이방 남편, 이방 아내를 떠나 버릴 수 있겠는가? 라고 물으시는 것 같습니다. 오늘 우리가 주님 앞에 응답하기를 원하고, 결단하기를 원합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시편 103편 10,11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0 그분께서 우리의 죄들에 따라 우리를 다루지 아니하시고 우리의 불법들에 따라 우리에게 갚지 아니하셨으니
11 하늘이 땅에서 높음같이 그분을 두려워하는 자들을 향한 그분의 긍휼이 크시도다.
이 말씀처럼 우리의 죄들은 너무나 거대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들과 불법들에 따라 우리에게 갚지 아니하셨고, 은혜와 긍휼로 덮어주셨습니다. 이러한 긍휼의 하나님, 선하신 하나님을 우리가 더 알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을 잘 알았던 에스라가 주님을 두려워하고, 애통하며, 무릎을 꿇고 거룩함으로 나아갔던 것처럼, 우리도 주님의 은혜와 긍휼을 더 알 때마다, 주의 말씀에 떨며, 죄에 대하여 애통하며, 주님만을 사랑하며 붙드는 참된 믿음의 길로 더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나의 큰 범법에 적은 형벌로 다루시고, 우리를 자신 앞으로 더 가까이 이끄시는 신기하고 놀라우신 주님을 우리도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여 더 사랑하며, 붙들며, 따르며, 순종하며, 기쁘시게 하기를 원합니다. 함께 주님을 따를 수 있는 귀한 형제자매들을 주신 주님께 참으로 감사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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