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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 Ez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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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 Ezra
로빈시리즈
2021.12.02 20:55

[#03] 좌절 금지(스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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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1.일 갈보리침례교회 주일오후예배말씀

좌절 금지(스 4:5)


이승선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에스라 4장 말씀입니다. 에스라 4장 5절 말씀입니다.
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전 생애 동안과 페르시아 왕 다리오가 통치할 때까지 조언자들을 고용하여 그들을 대적하게 하고 그들의 목적을 좌절시키려 하였으며
저는 오늘 “좌절 금지”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기 원합니다. 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 서론
오늘 말씀의 제목은 “좌절 금지”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실망하고, 낙담하고, 좌절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때로는 모든 것을 포기해버리고, 어디론가 훌쩍 도망가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많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 때문에, 어떠한 상황이나 환경 때문에, 또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나 자신 때문에 무너지고 좌절하고, 자괴감이 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우리를 좌절시키고, 낙담시키고, 무너뜨리는 상황을 허락하시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 잠시 고린도후서 1장 8-10절까지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8 형제들아, 아시아에서 우리에게 닥친 우리의 고난에 대하여 너희가 모르기를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라. 우리가 힘에 겹도록 한량없이 눌려 심지어 생명까지도 단념하고
9 우리 속에 죽음의 선고를 받았으니 이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신뢰하지 아니하고 죽은 자들을 일으키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게 하려 함이라.
10 그분께서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건지고 계시며 또 여전히 건지시리니 우리는 그분을 신뢰하노라.

아멘! 사도 바울은 생명까지도 단념할 정도로 힘에 겹도록 한량없이 눌렸고, 좌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극심한 고난으로 인하여 마음속에 죽음의 선고를 받았고, 안팎으로 그 어떠한 가능성이나 소망도 없음을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고난과 좌절이 있었던 목적은, 그대로 주저앉고 좌절하라는 것이 아니라, 죽은 자들을 일으키시는 하나님만을 믿고 신뢰하면서 다시 일어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낙담과 좌절 가운데 빠지게 될 때,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하나님만을 붙들고 다시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오늘 우리는 에스라 말씀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좌절과 회복을 살펴볼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통해서 주님께서 우리를 새롭게 하여주시기를 원합니다.


** 사마리아 사람들
이제 우리 함께 에스라 말씀으로 돌아오셔서, 에스라 4장 1,2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 이제 포로로 사로잡혀 갔던 자들의 자손이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였다는 것을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들이 듣고
2 그때에 스룹바벨과 아버지들의 우두머리들에게 나아와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너희와 함께 건축하게 하라. 우리도 너희처럼 너희 하나님을 구하나니 우리를 여기로 데려온 앗수르 왕 에살핫돈의 시대로부터 우리가 그분께 희생물을 드리느니라, 하였으나

지금 읽은 에스라 4장 말씀 이전에 있는, 에스라 3장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성전의 기초가 놓이면서, 감동의 예배가 있었던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감격해서 울었고, 또한 기뻐서 소리쳤습니다. 백성들이 감동의 예배를 드리면서, 외치는 그 소리가 멀리까지 울려 퍼졌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읽은 에스라 4장 1절 말씀처럼, 주변에 있던 많은 민족들이 예루살렘에 성전 재건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1절 말씀에서는 그들을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절 말씀에서는 그다지 대적들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그들이 스룹바벨과 지도자들에게 찾아와서 한 말은, “너희들, 그 성전 건축하지 마라.”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우리가 너희와 함께 건축하게 하라.”고 말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도 너희처럼 너희 하나님을 구한다. 우리도 앗수르 왕, 즉 아시리아 왕 에살핫돈의 시대로부터 하나님께 희생물을 드리고 있다.”라고 말하면서, 우리도 같이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건축하고, 돕게 해 달라고 요청하였던 것입니다.

먼저 우리 함께 이 사람들이 도대체 누구인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함께 열왕기하 17장 24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아시리아 왕이 바빌론과 구다와 아바와 하맛과 스발와임으로부터 사람들을 데려다가 이스라엘 자손 대신 사마리아의 도시들에 두매 그들이 사마리아를 소유하고 그것의 도시들에 거하니라
이 사람들은 바로 앗수르 왕, 즉 아시리아 왕 에살핫돈의 시대에 바빌론과 구다와 아바와 하맛과 스발와임으로부터 강제 이주를 당하여 사마리아에 살게 된 혼혈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방인들과 이스라엘 사람들의 혈통이 섞여버린 새로운 민족이 되었는데, 바로 사마리아 사람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이어지고 있는 말씀도 눈으로 함께 훑어보시겠습니다.
열왕기하 17장 25절 말씀처럼, 그들이 처음 사마리아 땅에 거할 때, 주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 사자들을 보내셔서 그들 중 몇 사람을 죽게 하셨습니다.
그러자 26절 말씀처럼, 사람들이 아시리아 왕에게 보고하기를, 그 땅의 새로운 거주민들에게 그 땅의 신에 대한 관습을 가르칠 필요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아시리아 왕은 27절 말씀처럼, 이스라엘의 제사장들 중 한 사람을 보내서 그 땅의 신에 대한 관습을 가르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리고 28절 말씀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에 그들이 사마리아에서 사로잡아 간 제사장들 중에서 한 사람이 와서 벧엘에 거하며 그들에게 어떻게 주를 두려워해야 하는지를 가르쳤더라.
북 왕국 이스라엘은 주를 두려워하지 않아서 아시리아에게 멸망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북 왕국 이스라엘의 제사장이 와서 어떻게 주를 두려워해야 하는지를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자기들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그 주님을 어떻게 두려워하는지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제대로 가르칠 수 있었는지 없었는지, 그 결과를 다음 구절들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29절 말씀을 눈으로 보시면, 각 민족이 자기들의 신들을 만들었습니다.
30절 말씀처럼, 바빌론 사람들은 숙곳브놋을 만들고, 구드 사람들은 네르갈을, 하맛 사람들은 아시마를 만들었습니다.
31절 말씀처럼 아바 사람들은 닙하스와 다르닥을, 스발와임 사람들은 자기 아이들을 불에 태워 제물로 바치는 아들람멜렉과 아남멕렉을 섬겼습니다.
32절 말씀처럼 그들은 주님도 함께 두려워했고, 주님을 위한 제사장도 세워서 희생물도 드렸습니다.

이와 같이 사마리아 땅은 무법천지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분명히 여호와 하나님께도 희생물을 드렸고, 또 여전히 자기들이 원래 섬기던 신들도 그대로 섬겼습니다. 그들이 주를 두려워하는 것을 제대로 배웠다면, 십계명의 제1계명인 “너는 내 앞에 다른 신들을 두지 말라.”라는 말씀을 배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제2계명인 “너는 어떤 새긴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고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라는 말씀도 배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이 원래 믿고 있던 신들에 더하여 하나님을 추가하였을 뿐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의 의식과 종교적 겉모양만을 배웠던 것입니다.

이제 다시 에스라 4장 말씀으로 돌아오시겠습니다. 여기에서 70년 이상 사마리아에 정착하고 살면서, 온갖 우상숭배에 더하여 하나님을 섞어서 섬겨왔던, 바로 이 사마리아 사람들이, 우리도 함께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게 해 달라고 왔던 것입니다. 성경은 그들을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들이라고 기록하였습니다.


** 거절과 방해
이제 우리 함께 에스라 4장 3,4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3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이스라엘의 아버지들의 우두머리들 중의 남은 자들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 하나님을 위해 집을 건축하는 일에 너희는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느니라. 고레스 왕 곧 페르시아 왕이 우리에게 명령한 대로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위해 우리가 함께 스스로 건축하리라, 하였더니
4 그때에 그 땅의 백성이 유다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고 건축하는 일에서 그들을 괴롭게 하며

성전을 건축하는 데에는 일손이 많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성전의 기초가 놓이고, 감격의 예배가 드려진 바로 이후에, 주변에 있던 민족들이 도와주겠다고 말했다는 것은 어찌 보면 놀라운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보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비록 그들이 온전히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할지라도, 합리적으로, 실리적으로 따져본다면, 분명 사마리아 사람들의 지원은 큰 도움이요, 유익으로 계산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다의 지도자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예수아와 이스라엘의 아버지들은 단호하게 사마리아 사람들의 도움을 거절하였습니다. “우리 하나님을 위해 집을 건축하는 일에 너희는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느니라...우리가 함께 스스로 건축하리라.”

너무 냉정해 보이고, 각박해 보이고, 꽉 막혀 보입니다. 주님을 섬긴다는 사람들이, 성전을 재건한다는 사람들이, 방금 전에는 눈물과 감격으로 예배를 드려놓고, 지금은 돕겠다는 사람들에게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으니 저리 가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무 사랑이 없고 차가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스룹바벨과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잘 분별한 것이고, 잘 거절한 것입니다.

때로 우리는 주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어떠한 도움의 손길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모든 선한 의도와 도움의 손길이 다 주님의 인도하심은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유익이나 도움을 구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주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사람들임을 기억하기 원합니다. 또 우리는 어떻게든 지원을 받아서 일을 잘되게 하려는 사람들이 아니라, 오직 주님께 순종하려는 사람들임을 기억하기 원합니다.

만약 사마리아 사람들이 성전 재건에 참여하게 되었다면, 당장에는 일손도 많고, 일도 잘 되겠지만, 속 안에서부터 더 많은 문제가 생겨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들 안에서부터 우상 숭배와 이교도적인 관습들이 섞여 들어오면서, 더 심각한 문제를 일으켰을 것입니다.

이렇게 스룹바벨과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적절하게 잘 처신하였고, 대적들과의 연합을 잘 거절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무엇이었을까요? 잘 행한 결과는 오히려 큰 어려움으로 다가오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잘 행하였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결과가 오는 것이 아님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요셉도 잘 행하고 나서 감옥에 갇혔고, 다윗도 잘 행하고 나서 쫓기는 신세가 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4절 말씀에서는 거절당한 사마리아 사람들의 반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도움을 주려는 요청이 거절당하자 강력한 방해꾼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만약 순수하게 성전 건축이 잘 되기만을 바라였다면, 비록 그 일이 거절당했다 할지라도, 다른 방면에서 어찌하든지 돕고자 하였을 것입니다. 과거에 다윗 왕도 성전 건축을 하고자 하였지만, 하나님께서 그것을 금지하셨을 때, 오히려 솔로몬이 성전을 잘 건축할 수 있도록 많은 재료들을 모아놓았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사마리아 사람들은 오히려 강력한 방해자들이 되었고, 그들의 정체는 1절 말씀에 미리 나왔던 것처럼, 대적들이었던 것입니다.


** 비방과 모함
이제 우리 함께 에스라 4장 5-7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5 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전 생애 동안과 페르시아 왕 다리오가 통치할 때까지 조언자들을 고용하여 그들을 대적하게 하고 그들의 목적을 좌절시키려 하였으며
6 아하수에로의 통치 때에 곧 그가 통치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이 유다와 예루살렘 거주민들을 고소하는 글을 그에게 보내었더라.
7 또 아닥사스다 시대에 비슬람과 미드르닷과 다브엘과 그들의 동료들 중의 남은 자들이 페르시아 왕 아닥사스다에게 글을 올렸는데 이 편지의 글은 시리아 말로 기록되었고 또 시리아 말로 번역되었더라.

대적들은 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전 생애 동안 그들을 방해하였고, 그들을 좌절시키려고 하였습니다. 고레스 왕은 약 9년간 통치하였고, 그 다음 왕은 캄비세스로 약 8년간 통치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왕은 스머디스로 약 7개월간 통치하였습니다. 그리고 네 번째 왕이 바로 스머디스를 죽이고, 왕위를 차지한, 5절에 등장하는 다리우스 대제라고 불리는, 왕들의 왕 다리오 왕입니다. 다니엘서에 나오는 메대 사람 다리오가 아니고, 또 다른 다리오 왕입니다.

우리 잠시 에스라 4장 24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그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집에 관한 일이 중단되고 이처럼 그 일이 페르시아 왕 다리오의 통치 제이년까지 중단되니라.
이 말씀처럼, 대적들은 다리오 왕의 통치 제2년에 이르기까지 공사를 완전히 중단시키는데 성공하였습니다. 그래서 성전 재건 공사가 중단된 기간은 약 17-20년 가까이 되는 것입니다. 성전의 기초만 놓고, 거의 20년 간, 더 이상 공사를 진행하지 못하였으니,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이 좌절될 만도 했을 것입니다.

대적들은 심지어 왕들에게 편지를 보내서, 유다와 예루살렘 거주민들을 거짓으로 고소하였습니다. 고소의 내용은 바로 그들이 반역을 준비하고 있으므로, 당장 예루살렘 도시의 재건을 중지시켜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페르시아의 왕들은 그 편지의 내용대로 다리오 왕의 2년까지 공사를 중단시켰습니다.

에스라 4장 6절에서 우리는 아하수에로라는 이름을 볼 수가 있고, 7절부터는 아닥사스다라는 이름을 볼 수가 있는데, 이 이름들은 왕 개인의 이름이 아니라, 페르시아 왕을 칭하는 호칭이었습니다. 이집트의 왕을 파라오라고 불렀던 것처럼, 페르시아 왕들은 히브리 발음으로는 아하수에로, 그리스 말로는 크세르크스, 혹은 알타크세르크스, 즉 아닥사스다라고 불렸습니다.

이전에 다니엘서를 살펴보면서 이 부분을 잠시 언급했던 적이 있습니다. 에스라서 4장에 나오는 이 이름들은 과연 어떤 왕을 가리키는지 논란이 되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에스더기에 등장하는 왕의 호칭이 아하수에로이고, 느헤미야기에 등장하는 왕의 호칭은 아닥사스다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뒤에 에스라 7장부터는 아닥사스다라는 호칭의 왕이 또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이름들이 다양하고 또 겹치기 때문에 연대기 순서적으로 성경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어 왔습니다. 지난번에 다니엘서를 살펴볼 때에는, 여기에 나온 아하수에로와 아닥사스다가 다리오 왕 이후의 왕들이고, 시간적 순서에 상관없이, 이렇게 대적들이 방해를 하였다는 주제에 맞춰서 기록된 부분이라고 설명을 드렸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말씀을 준비하면서 다시 많은 부분이 정리가 되었습니다. 그 내용을 오늘은 살펴보지 않고, 다음 시간에 제대로 프린트 자료와 스크린을 이용하여 전체적인 연대기를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은 간단하게 정리해보면, 여기 6절에 나오는 아하수에로는 고레스 왕 다음으로 통치하였던 캄비세스를 가리키고, 7절에 나오는 아닥사스다는 그 뒤에 잠시 통치권을 가졌던 스머디스로 볼 수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그런 것처럼, 시간적 순서 그대로 기록된 것으로 이해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함께 에스라 4장 12,13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2 왕께 이것을 알리옵나이다. 곧 왕으로부터 우리에게로 올라온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반역을 일삼는 나쁜 도시를 건축하여 이미 그것의 성벽을 세우고 기초들을 연결하였사오니
13 이제 왕께서는 이것을 아시옵소서. 곧 이 도시가 건축되고 성벽이 다시 세워지면 그들이 세금과 조공과 관세를 바치지 아니하리니 이로써 왕께서는 왕들의 세입에서 손해를 보리이다.

이것은 대적들이 아닥사스다 왕에게 보냈던 편지의 내용입니다. 그것은 바로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반역을 일삼는 나쁜 도시를 건축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공사가 방해를 받고 중단을 받았지만, 유대인들은 열심히 공사를 진행하여 성벽을 세우고 기초들을 연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대적들은 이 도시가 다 건축되면, 더 이상 세금과 조공과 관세를 바치지 않을 것이므로, 왕께서 손해를 볼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15절 말씀을 눈으로 보시면 역사 기록을 직접 찾아보시라고 권하고 있는데, 그러면 예루살렘이 얼마나 위험한 도시인지 알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9절에서는 아닥사스다 왕이 정말 찾아보니 그러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함께 21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이제 너희는 명령을 내려 이 사람들이 일을 중단하게 하고 내가 다른 명령을 내릴 때까지 이 도시를 건축하지 못하게 하라.
그 동안 대적들의 방해가 비공식적인 것이었다면, 이제 이 명령은 공식적 왕의 칙령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지금까지 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칙령을 근거로 공사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아닥사스다의 새로운 칙령에 의하여 공사가 공식적으로 금지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23절 말씀처럼, 대적들은 왕의 편지를 가지고 와서, 그 힘과 권세를 이용하여 공사를 중단시켰습니다. 정말 좌절스러운 상황이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떤 악한 일을 하려는 것이 아닌데, 하나님께서는 어찌 이런 일을 허락하실까요?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일인데, 이 일이 왜 이렇게도 힘든 것일까요? 가나안 땅에 들어갔던 여호수아 앞에 철 병거를 가진 민족들, 거인처럼 거대한 아낙 자손들, 하늘 높이 솟은 요새들이 있었던 것처럼, 성전 재건의 사역 앞에도 너무나 극심한 방해가 있었습니다. 거대한 산이 길을 가로막고 있는 것처럼, 앞이 너무나 막막하여 좌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어려움이 있는 이유는 그것이 주님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일이기 때문에, 주님의 능력으로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힘으로 할 수가 없는 주님의 일이기 때문에, 주님만 바라봐야 하고, 주님만 신뢰해야 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시간이 얼마 지나, 이 칙령을 내렸던 스머디스 왕은 죽임을 당하였고, 새로운 왕 다리오 대제가 즉위하였습니다. 그리고 또 시간이 흘러 다리오의 통치 제2년이 되었습니다.


** 다시 시작
이제 우리 함께 에스라 5장 1,2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 그때에 대언자들 곧 대언자 학개와 잇도의 아들 스가랴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유다와 예루살렘에 있던 유대인들에게 곧 그들에게 대언하였더니
2 이에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가 일어나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기 시작하매 하나님의 대언자들이 그들과 함께하여 그들을 도왔더라.

많은 사람들이 좌절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대언자들을 일으키셔서, 그들에게 말씀을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그 대언자들은 바로 학개와 스가랴였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진리를 선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선포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 일어나 성전을 건축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통해 다시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우리 함께 잠시 학개 1장 1-4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 다리오 왕의 제이년 유월 곧 그 달 첫째 날에 주의 말씀이 대언자 학개를 통하여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요세덱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 만군의 주가 이같이 말하여 이르노라. 이 백성이 이르기를, 그때 곧 주의 집을 건축할 때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는도다.
3 그때에 주의 말씀이 대언자 학개를 통하여 임하니라. 이르시되,
4 오 너희여, 이 집이 피폐하거늘 지금이 너희가 널빤지로 꾸민 너희 집에 거할 때냐?

다리오 왕의 제2년 6월 첫째 날에 주의 말씀이 대언자 학개를 통하여 선포되었습니다. 백성들은 좌절하고 낙담하여 주의 집을 건축할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직 때가 아니다, 라고 말하면서, 정작 자기들도 널빤지로 꾸민 집에 거하고 있었습니다. 참 눈물겨운 상황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성전도 아직 피폐한 상태이고, 이스라엘 백성들도 벽돌로 지은 제대로 된 집에 거하지 못하고, 판자촌처럼, 널빤지로 꾸진 집에서 겨우겨우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함께 학개 2장 4절 말씀도 보시겠습니다. 다 함께 읽어보시겠습니다. 시작~
주가 말하노라. 오 스룹바벨아, 그러할지라도 이제 마음을 강하게 할지어다. 오 요세덱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마음을 강하게 할지어다. 주가 말하노라. 그 땅의 온 백성아, 너희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일할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하느니라.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아멘! 비록 지금의 상황이 눈물겹고 피폐하고 좌절스러울지라도, 그러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마음을 강하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하느니라.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격려하시고, 새롭게 하시면서, 마음을 강하게 하셨습니다.

또한 몇 장 더 뒤로 넘기셔서 스가랴 4장 6,7절 말씀도 보시겠습니다.
6 그때에 그가 내게 응답하며 말하여 이르되, 주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이르시되, 힘으로 되지 아니하고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며 오직 내 영으로 되느니라.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7 오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스룹바벨 앞에서 네가 평야가 되리라. 그가 그것의 머릿돌을 내놓을 때에 큰 외침으로 부르짖기를, 은혜, 은혜가 그 돌에 있을지어다, 하리라, 하셨느니라.

아멘! 하나님께서는 스룹바벨에게 성전 재건의 이 사역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머릿돌이라는 것은 건축이 완성되었을 때 마지막으로 놓는 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결국 성전이 완성될 것이고, 스룹바벨이 은혜를 외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일은 힘으로 되지 아니하고,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며, 오직 주님의 영으로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스룹바벨 앞에서 네가 평야가 되리라.” 오늘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는 큰 산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닙니다. 성령님의 역사 앞에서, 주님의 풍성한 은혜 앞에서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십자가의 삶으로 주님과 완전히 연합할 때, 큰 산도, 큰 거인도, 그 어떠한 큰 문제도 주님 앞에서, 스룹바벨 앞에서, 그리고 우리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극심한 좌절의 상황으로 이끄시는 이유는 오직 주님의 영으로, 오직 은혜로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말씀에 용기를 얻은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좌절 속에서 다시 일어났고, 새롭게 성전을 건축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영을 의지하여, 은혜를 힘입어 다시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 다리오의 칙령
이스라엘의 대적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갑자기 다시 무단으로 성전 재건을 시작한 것에 대해서 다리오 왕에게 고소하는 편지를 보내었습니다. 그들이 고레스 왕의 칙령에 따라 성전을 재건한다고 하지만, 이것은 스머디스의 칙령에 의해 엄연한 불법이므로 반드시 금지시키셔야 한다고 편지를 보냈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 함께 에스라 6장으로 오셔서, 에스라 6장 1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이에 다리오 왕이 칙령을 내려 두루마리를 둔 집 곧 바빌론에서 보물들을 쌓아 둔 곳을 찾아보게 하였더니
대적들의 편지를 받았던 다리오 왕은 칙령을 내려 과거 왕들의 기록을 찾아보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2절 말씀처럼 두루마리 하나를 찾았고, 바로 3절 말씀처럼 고레스 왕이 내렸던 칙령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리오 왕은 이렇게 새로운 칙령을 내렸습니다.

우리 함께 에스라 6장 8-10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8 또 내가 칙령을 내려서 하나님의 이 집을 건축하는 일을 위해 너희가 이 유대인들의 장로들에게 무엇을 행할 것인지 알게 하노니 왕의 재산 곧 강 건너에서 들어오는 조공 중에서 그 경비를 이 사람들에게 빨리 주어 그들이 방해를 받지 않게 하라.
9 또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 즉 하늘의 하나님께 드릴 번제 헌물에 쓸 어린 수소와 숫양과 어린양과 또 밀과 소금과 포도즙과 기름을 예루살렘에 있는 제사장들이 지정하는 대로 날마다 어김없이 그들에게 주어
10 그들이 하늘의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가 나는 희생물을 드리게 하고 또 왕과 그의 아들들의 생명을 위해 기도하게 하라.

다리오 왕의 칙령은 파격적인 것이었습니다. 먼저 이스라엘의 대적들이 더 이상 방해를 하지 말 것을 명령하였습니다. 또한 강 건너편 대적들에게서 걷어 들이는 조공 중에서, 성전 건축에 필요한 경비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예루살렘에 있는 제사장들이 지정하는 대로 날마다 어김없이 필요로 하는 것을 공급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우리 함께 에스라 6장 14절과 15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4 유대인들의 장로들이 건축하고 대언자 학개와 잇도의 아들 스가랴의 대언을 통해 형통하였더라. 그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명령과 페르시아 왕 고레스와 다리오와 아닥사스다의 명령대로 그것을 건축하여 완성하되
15 다리오 왕의 통치 제육년에 있었던 아달 월 삼일에 이 집을 완성하니라.

아멘! 이스라엘은 단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다시 성전을 건축하였을 뿐이었습니다. 상황이 바뀐 것은 없었지만, 다만 순종하여 일어나서 건축하였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다시 방해가 오는 것이 아니었고, 뜻밖에 왕을 통한 전폭적인 지원이었습니다. 다리오 왕의 칙령에 의하여 모든 방해가 중단되었고, 폭발적인 지원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 이스라엘이 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단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였을 뿐이었습니다. 오직 주님의 영께서, 오직 은혜로 이 모든 일을 이루신 것이었습니다.

다리오 왕의 통치 제6년에, 월력으로 마지막 12월인 아달월에 성전 건축이 완성되었습니다. 그리고 19절 말씀처럼, 이스라엘은 그 다음 달, 곧 첫째 달 십사일에 율법에 따라 유월절을 지킬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 함께 마지막으로 22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이레 동안 기쁘게 무교절을 지켰으니 이는 주께서 그들을 기쁘게 하시고 또 아시리아 왕의 마음을 그들에게로 돌리사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집에 관한 일을 할 때에 그들의 손을 강하게 하셨기 때문이더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새로운 성전과 함께 유월절을 지켰고, 또한 무교절을 지켰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좌절을 기쁨으로 바꿔주셨고, 그들의 손을 강하게 하셨으며, 모든 일이 완성되게 하셨습니다.


** 정리
오늘 우리는 “좌절 금지”라는 주제로 에스라 4장, 5장, 6장의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성전 재건은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에 따라 시작된 일이었고, 분명히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일에는 방해가 있었고, 좌절도 있었습니다. 이처럼 오늘 우리가 걷는 믿음의 길 가운데에도 고난이 있고, 좌절이 있고, 낙담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은 정말 우리를 좌절시키기 위해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스룹바벨과 여호수아가 이 모든 일이 오직 주님의 영으로 된다는 것을 알기를 원하셨습니다. 오직 은혜로 된다는 것을 알기를 원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도 성령님으로 충만하기를 원하시고, 오직 은혜 안에서 걷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만 붙들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앞에 큰 산이 가로막을 때, 우리를 낙담시키고 좌절시킬 때, 오직 주의 영으로, 은혜로 우리를 이끄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바라보기 원합니다. “좌절 금지”라는 오늘 말씀의 제목을 기억하면서, “오 큰 산에 네가 무엇이냐? 주님 앞에서, 내 앞에서 평야가 되리라.”라고 선포하면서, 주님만 붙들기를 원합니다.

주님께서 이 시간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해주시고, 오직 주님의 영으로, 은혜로 가득 채워주시기를 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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