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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 Ez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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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 Ezra
로빈시리즈
2021.11.30 20:26

[#01] 그분의 백성이 누구냐(스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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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로빈
2017.05.21.일 갈보리침례교회 주일오후예배말씀

그분의 백성이 누구냐(스 1:3)


이승선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에스라 1장 말씀입니다. 에스라 1장 3절 말씀입니다.
그분의 모든 백성 중에서 너희 가운데 거하는 자가 누구냐? 그의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니 그는 유다에 있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라. (그분은 하나님이시요,) 그분의 집은 예루살렘에 있느니라.
저는 오늘 “그분의 백성이 누구냐”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기 원합니다. 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 서론
오늘 말씀의 제목은 “그분의 백성이 누구냐”입니다. 오늘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페르시아 고레스 왕의 질문과 부르심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분의 모든 백성 중에서 너희 가운데 거하는 자가 누구냐? 그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라.” 이것은 바빌론의 포로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해방과 자유를 선포하는 것이었으며, 성전과 예배의 회복에 대한 너무나 가슴 벅찬 부르심이었습니다.

과거에 이스라엘의 북 왕국 사마리아는 아시리아에 의해 멸망을 당했고, 이스라엘의 남 왕국 유다는 바빌론에 의해 멸망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들이 포로가 되어 바빌론 제국의 이곳저곳으로 강제이주를 당하고 끌려간 지도 벌써 70년이 흘렀습니다. 바빌론으로 처음 잡혀갈 때 아직 어린 소년이었던 다니엘도 이제는 나이가 많은 할아버지가 되었을 정도로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동안 이스라엘의 상태는 너무나 절망적이었고, 아무런 소망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이스라엘은 더 이상 자기들의 땅도 없었고, 왕도 없었고, 성전도 없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그저 이방 민족들과 섞여 살다가 역사 속으로 사라질 수밖에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시며, 또한 다윗과 맺은 언약도 결코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의 말씀을 반드시 이루시는 신실한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우리 하나님은 긍휼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고, 연기 나는 심지를 끄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사람의 가능성이 사라질 때 일하기 시작하시며, 완전한 회복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늘부터 우리가 살펴볼 에스라 말씀은, 너무나 못나고 자격이 없는 이스라엘 백성을 그들의 모습과 상관없이, 그들의 어떠함을 완전히 초월하여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포로됨의 속박에서 구출하셨고, 하나님을 예배하며 섬길 수 있는 자유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우리를 회복시키시고, 자유하게 하시며,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이러한 살아계신 하나님을 우리가 더 알기 원합니다. 이 시간 주님께서 친히 말씀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 페르시아 왕 고레스
먼저 우리 함께 페르시아 왕 고레스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함께 에스라 1장 1,2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 이제 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제일년에 주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주의 말씀을 이루시려고 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영을 움직이시매 그가 자기의 온 왕국에 두루 선포하고 또 그것을 글로도 기록하여 이르되,
2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이같이 말하노라. 주 하늘의 하나님께서 땅의 모든 왕국을 내게 주시고 또 내게 명하사 유다에 있는 예루살렘에 자신을 위해 집을 건축하게 하셨나니

에스라 말씀은 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제일년에 있었던 칙령으로부터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주께서 대언자 예레미야를 통해 말씀하신 주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성취의 역사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약속과 자신의 말씀을 이루시려고, 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영을 움직이셨습니다.

잠시 우리 함께 예레미야서 29장 10절과 11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0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빌론에서 칠십 년이 찬 뒤에 내가 너희를 돌아보고 너희를 향한 나의 선한 말을 이행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니
11 너희를 향해 내가 생각하는 생각을 내가 아노라. 그것은 평안을 주려는 생각이요, 재앙을 주려는 생각이 아니니 곧 기대하던 결말을 너희에게 주려는 것이라. 주가 말하노라.

예레미야가 이 말씀을 기록하던 때는 아직 이스라엘이 바빌론에게 멸망을 당하기도 전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때 이미 대언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이스라엘이 바빌론에게 포로가 될 것과, 70년 뒤에 다시 돌아와 회복하게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비록 이스라엘이 바알과 금송아지와 그모스와 몰렉과 수많은 우상들을 숭배함으로 죄를 지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완전히 버리지 아니하시고, 70년 뒤에 다시 회복시키실 것임을 미리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죄 많고 자격 없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생각은 재앙을 주려는 생각이 아니요, 평안을 주려는 생각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들을 향해서도 평안의 생각을 가지고 계십니다. 잠시 우리를 징계하시고 다루실지라도 결국 주님께서 본래 계획하시고 기대하셨던 가장 좋은 결말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자격 여부와 상관이 없는, 모든 지식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러한 좋으신 하나님을 우리가 더 알기를 원합니다.

이제 우리 함께 이어지는 12-14절 말씀도 보시겠습니다. 예레미야서 29장 12-14절입니다.
12 그때에는 너희가 나를 부르고 가서 내게 기도하리니 내가 너희 말에 귀를 기울이리라.
13 또 너희가 너희 마음을 다하여 나를 찾으면 나를 찾고 나를 만나리라.
14 내가 너희를 만나리라. 주가 말하노라. 또 내가 너희의 포로 된 것을 되돌리고 모든 민족들로부터, 내가 너희를 쫓아내어 머물게 한 모든 곳으로부터 너희를 모으리라. 주가 말하노라. 또 내가 너희를 다시 데려오되 내가 너희로 하여금 포로가 되어 끌려가서 떠나게 했던 곳으로 데려오리라.

12절 말씀처럼 바빌론에 있었던 다니엘은 비로소 예레미야의 대언의 말씀, 즉 70년이라는 그 햇수를 깨닫고 하나님께 더욱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물론 다니엘은 전부터도 늘 기도하였겠지만, 그는 이 말씀을 깨달은 이후에 사자 굴에 던져지기까지 더욱 열렬히 멈추지 않고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하여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13절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너희 마음을 다하여 나를 찾으면, 나를 찾고 나를 만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과연 이스라엘 백성 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하나님을 구하고 찾았는지 알 수 없지만, 대언자 예레미야의 말씀을 깨달았던 구약의 성도들, 그리고 다니엘은 이 말씀을 붙들면서,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구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며 기도하였습니다.
14절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만나주시며, 포로 된 것을 되돌리시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데려오시며 모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70년이 지났을 때, 하나님 자신이 정하신 때가 이르렀을 때, 신실하게 이 말씀을 이루어주셨습니다.

이제 우리 함께 한 권 앞으로 가셔서, 이사야서 44장 28절 말씀도 보시겠습니다.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그는 내 목자라. 그가 나의 기뻐하는 모든 것을 행하리라, 하고 예루살렘에게는 이르기를, 너는 세워지리라, 하며 성전에게는 이르기를, 네 기초가 놓이리라, 하는 자니라.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만이 아니라 대언자 이사야를 통해서도 예언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여기에서는 고레스라는 이름까지도 언급되고 있는데, 이사야는 과거 히스기야 왕이 있을 때 활동했던 대언자였으므로, 아직 고레스 왕도, 그의 아버지도 태어나기 전이었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께서는 고레스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그는 내 목자라, 라고 말씀하시고 또한 예루살렘에게는 세워지리라, 성전에게는 기초가 놓이리라, 하는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이 붙들고 소망하며 기도할 수 있는 예언의 말씀들을 주셨고, 또한 이 말씀들을 신실하게 이행하셨습니다.

함께 읽지는 않겠지만, 이사야서 45장 1절 말씀에서는 고레스 왕에 대해서 자신의 기름 부음 받은 자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러한 고레스 왕은 선한 목자이시며, 기름 부음 받은 자, 메시아, 그리스도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예고편처럼 보여주는 인물입니다. 고레스 왕이 이스라엘의 포로 된 것을 해방하고 자유를 주며, 성전과 예배를 회복하게 하였던 것처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십자가 보혈과 부활하심을 통하여, 죄의 종이 된 우리들을 해방하시고 완전한 자유를 주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다시 오셔서 우리에게 완전한 자유를 주실 것입니다.

이제 우리 함께 다시 에스라 1장으로 돌아와 보시겠습니다. 에스라 1장 1절 말씀을 다시 눈으로 보시면 고레스 왕이 이스라엘 백성을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낸다는 이 칙령을 말로도 선포하고 글로도 기록하였다고 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 말씀처럼 실제로 고레스 왕의 칙령이 기록된 점토 조각이 발견되었습니다. 지금도 런던의 대영박물관에는 고레스 실린더라고 부르는 길이 약 22센티, 지름 약 10센티 정도의 원기둥 모양의 돌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곳에 기록된 글은 “세계 최초의 인권 선언서”라고 불리는데, 바로 고레스 왕이 이스라엘 백성들뿐만 아니라, 바빌론에 의하여 강제로 이주된 모든 민족들에게 고향으로 돌아가서, 자기들의 문화유산을 재건할 수 있는 자유를 준다는 내용이 적혀 있는 것입니다.

에스라 1장 2절 말씀에서는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하늘의 하나님께 대한 신앙고백을 하고 있는데, 이것은 정말 고레스 왕이 온전하게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가졌다기보다는 그의 다신론 사상 속에서 모든 민족들의 신을 다 인정한다는 의미입니다. 대영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고레스 실린더에는 그가 최고의 신 마르둑을 경배하고 있음을 기록하고 있고, 다만 압제적이었던 바빌론과 다르게 페르시아는 관대하다, 라는 정치적 입장을 표명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또한 지금 찾지는 않겠지만 이사야서 45장 4절에서는 고레스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나는 네게 이름을 주었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고레스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고, 여전히 마르둑이라는 이방 신과 함께, 다른 모든 신들을 다 인정하고 섬기는 왕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고레스의 마음 속 진실과 상관없이 이스라엘을 향한 자신의 뜻을 이루시는데 그를 사용하셨습니다.

이것은 마치 신약에서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가 조세 등록을 통해 더 많은 세금을 거두려고 했던 것과 비슷합니다. 카이사르는 단지 더 많은 세금을 걷기 위해서, 온 세상 사람들이 자기 고향 땅으로 돌아가서 조세 등록을 하게 만들었지만, 바로 이 일로 인해서 요셉과 만삭의 상태였던 마리아도 고향 땅인 베들레헴으로 가게 되었고, 예언의 말씀대로 메시아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께서는 바로 다윗의 도시인 베들레헴의 한 마구간에서 태어나시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성취하시고, 자신의 역사를 이루시는데, 하나님과 상관없는 사람들을 통해서도 일하시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기에서 요셉을 죽이고자 했던 형들을 사용하셔서 요셉을 이집트로 보내셨고, 하나님과 상관이 없던 사울 왕을 사용하셔서 다윗을 훈련하신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나귀의 입을 통해서 발라암에게 말씀하셨고, 까마귀들을 통해서 엘리야를 먹이기도 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역사는 무궁무진하며, 그 어떤 사람도, 동물도 다 사용하시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하나님께서는 파라오도 사용하셨고, 고레스도 사용하셨으며,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도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원하는 것은 이렇게 알지 못하는 가운데 단지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참으로 하나님께 사용받기를 원하는데, 바로 우리의 원함이 주님의 원함과 일치되고, 나의 뜻이 주님의 뜻이 되어서, 우리가 주님께 온전히 순종하는 방식으로, 주님과 교제하며 동행하는 방식으로, 그렇게 사용받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더 알기 원하고, 주님과 함께 걸으며, 더 가까이 동행하기를 원합니다.


** 공개적 부르심과 지원
우리는 지금까지 페르시아 왕 고레스에 대해서 먼저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우리 함께 고레스 왕의 칙령의 내용과 지원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에스라 1장 3,4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3 그분의 모든 백성 중에서 너희 가운데 거하는 자가 누구냐? 그의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니 그는 유다에 있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라. (그분은 하나님이시요,) 그분의 집은 예루살렘에 있느니라.
4 남은 자가 누구든지 그가 머물던 모든 곳에서 그의 처소 사람들이 은과 금과 물건과 짐승으로 그를 도와주고 그 외에도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자원 헌물을 드릴지니라, 하였더라.

3절에서 고레스 왕은 그분의 백성이 누구냐고 묻고 있습니다. 고레스는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계시기를 원한다고 축복하면서, 유다에 있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라고, 하나님의 백성을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4절 말씀처럼 그가 머물던 모든 곳에서 예루살렘을 재건하러 올라가는 바로 그 사람을 위해서 은과 금과 물건과 짐승으로 도움을 주고 지원을 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 함께 에스라 1장 7,8절 말씀도 보시겠습니다.
7 또한 고레스 왕이 주의 집의 기구들을 내놓았는데 그것들은 전에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옮겨다가 자기 신들의 집에 두었던 것이더라.
8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재무관 미드르닷의 손으로 바로 그것들을 내놓게 하고 그것들의 수효를 세어 유다의 통치자 세스바살에게 주었는데

7절 말씀처럼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은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빌론의 느부갓네살 왕에게 빼앗겼던 주의 집의 기구들을 돌려주었습니다. 구체적으로 고레스 왕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어준 것은 9절부터 11절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잠시 눈으로 훑어보시면 9절에서 금 쟁반 30개, 은 쟁반 1,000개, 칼 29개, 10절에서 금대야 30개, 은대야 410개, 다른 그릇이 1,000개, 그리고 11절에서 금과 은그릇이 모두 5,400개였습니다.

8절 말씀처럼 그것은 페르시아의 재무관 미드르닷을 통해 유다의 통치자 세스바살에게 주어졌습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유다의 통치자 세스바살이라는 이름은 다른 곳에서 많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다른 말씀들과 비교해 볼 때, 이스라엘의 1차 포로 귀환을 이끌었던 스룹바벨의 또 다른 이름인 것으로 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총 3차에 걸쳐 귀환을 하게 되었는데, 제1차 귀환은 지금 우리가 살펴보는 에스라 1장과 2장에 기록된 스룹바벨의 귀환입니다. 그리고 에스라 말씀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가 있는 서기관 에스라는 에스라 7장에서 등장하고 있는데, 에스라가 이끄는 귀환이 바로 제2차 귀환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제3차 귀환은 이후에 느헤미야가 이끌게 됩니다.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은 이스라엘 백성들이라면 누구든지 유다의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자유를 주었고, 과거 성전에 있던 모든 기구들을 돌려주었으며,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자원하는 헌물로 그들을 돕고 지원하도록 격려해 주었습니다.


** 합류하지 못한 사람들
그렇다면 이제부터, 누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는가, 얼마나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돌아왔는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함께 에스라 1장 5,6절 말씀을 먼저 보시겠습니다.
5 그때에 유다와 베냐민의 아버지들의 우두머리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또 하나님께서 영을 일으켜 주신 모든 사람들이 올라가 예루살렘에 있는 주의 집을 건축하려고 일어나니
6 그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자원하여 드린 모든 것 외에도 은그릇과 금과 물건과 짐승과 귀한 것들로 그들의 손을 강하게 하였더라.

우리는 여기에서 고레스 왕의 부름에 응답한 사람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분의 모든 백성 중에서 너희 가운데 거하는 자가 누구냐?”, “그분의 백성이 누구냐?” 그들은 바로 5절에 기록된 것처럼, 유다와 베냐민의 지파의 지도자들이었고,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었으며, 또한 하나님께서 영을 일으켜 주신 모든 사람들이었습니다.
대표적으로는 유다와 베냐민 지파가 모였고, 또한 레위 지파가 모였습니다. 다른 나머지 지파들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지만, 하나님께서 영을 일으켜 주신 모든 사람들이라는 표현 가운데 조금씩, 조금씩 함께 하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고레스 왕의 부름에 응답하였고, 예루살렘에 있는 주의 집을 건축하려고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자원하여 드린 헌물로 그들을 격려해 주었습니다.

이번 1차 귀환 때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발대와도 같았습니다. 그들은 이미 70년 동안 나름대로 꾸려온 삶의 터전을 다시 떠나버리고, 새로운 개척의 길을 나선 사람들이었습니다.
나이가 많았던 이들은 어릴 적에 보았던 솔로몬 성전의 그 영광을 기억하고 있었을 것이고, 또 어떤 이들은 바빌론 포로기 중에 태어나고 자라났기 때문에, 평생토록 성전이 어떤 모습인지, 하나님께 헌물을 드리는 모습은 어떤 것인지 한 번도 본적이 없고, 듣기만 했던 세대도 있었을 것입니다.

비록 고레스 왕의 칙령으로 예루살렘을 재건할 수 있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앞으로 한 평생, 그리고 어쩌면 그 다음 세대, 그 다음 다음 세대까지 이어받아서 재건을 해야만 하는, 길고 긴 여정이 될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의 도시와 성전의 재건이라는 위대한 부르심 앞에 아멘으로 응답하였고 길을 나섰던 것입니다. “그분의 백성이 누구냐?”, “바로 접니다! 제가 가겠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하나님 앞에 응답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여기에서 잠시 이번 1차 귀환 행렬에 합류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번에 고레스 왕의 부름을 통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는 어쩌면 남아있는 사람들을 정죄하고 비난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인데 당연히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야지! 지금 이런 귀환 칙령이 내려졌는데도, 여전히 바빌론 땅에 그대로 머물러 있겠다는 말인가? 정말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말할 수도 없을 만큼 타락했구만!” 이렇게 판단하고 못마땅하게 여겼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어떠한 하나님의 일, 교회의 일, 섬김의 일에 함께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 이렇게 못마땅한 마음을 가질 때가 종종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스라엘의 귀환은 총 3차에 걸쳐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잘 준비된 서기관이었던 에스라도 1차 귀환 때에는 합류하지 않았고, 2차 귀환 때에 백성들을 이끌고 오게 되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과 기도로 동행하였던 느헤미야 역시 가장 늦은 3차 귀환 때에야 비로소 합류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음만큼은 그 누구보다 앞장섰던 다니엘 역시 너무나 연로한 나머지 함께하지 못했고, 다만 멀리서 열렬히 기도하면서, 여전히 환상과 계시의 말씀을 기록하면서, 그 자신에게 주어진 길로 힘을 다하여 걷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조금 이후에 등장하지만 모르드개와 에스더 역시 수산 궁에 머물면서 끝내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지는 못하였습니다.

또한 우리는 6절 말씀에서 선발대로 출발한 백성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자원하여 드린 헌물들이 있었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은 이방 사람들이라기보다는 이번에 예루살렘으로 함께 귀환하지 못하는 다른 이스라엘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이번에 비록 함께하지 못하지만, 먼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에게 많은 자원하는 헌물로 지원하여 주었고, 그들의 손을 강하게 해주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과 인도하심이 참 다양하다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예레미야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고, 대대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귀환을 하게 되는, 그 여정과 인도하심 속에서도, 그토록 큰 흐름 속에서도 여전히 자기에게 주어진 자리에 머물면서, 그 자리에서 주님을 섬기고, 준비하며, 주님을 따르는 하나님의 사람들도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익숙한 서기관이었던 에스라처럼 아직 더 성경말씀을 연구하고 준비되어야 하는 사람도 있었고, 느헤미야와 같이 이후에 더 대대적인 물자를 가지고 갈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사람도 있었으며, 다니엘처럼 끝내 예루살렘 땅을 밟아보지 못했지만, 저 멀리서 기도로 지원하며, 환상 계시의 말씀을 기록해야 하는 사람도 있었고, 모르드개와 에스더처럼 죽으면 죽으리라 목숨을 내걸고 유다 백성들의 생명을 건져내야 하는 사람들도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군가가 당장 나와 함께 하지 못하고, 당장 나와 같은 모양으로 가지 않는다고 해서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남은 백성들 중에는 너무나 안타깝게도 충분히 예루살렘으로 같이 갈 수 있고, 마땅히 가야 하는데, 정말 바빌론 땅이 너무 좋아져서, 여기에 그냥 살고 싶어서 눌러 앉아버린, 믿음에서 물러난 백성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각자가 믿음으로 응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네 길로 가라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너는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우리 각자가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따르며,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응답하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가 눈치를 살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부르시는가를 살피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때 고레스 왕을 통해 사람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분의 백성이 누구냐? 그분의 모든 백성 중에서 너희 가운데 거하는 자가 누구냐? 그는 예루살렘으로 갈지니라.” 고레스 왕은 누구누구를 지목해서 부르지 않았고, 보편적으로 그분의 백성이 누구냐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부르심에 각자의 믿음으로 응답했던 것입니다.


** 응답한 사람들
이제 우리 함께 고레스 왕을 통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했던 백성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함께 에스라 2장 1,2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 전에 사로잡혀 간 자들 곧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이 사로잡아 바빌론으로 끌고 간 자들 중에서 포로 생활을 벗어나 올라가서 예루살렘과 유다로 돌아와 각각 자기 도시에 이른 유다 지방의 자손들이 이제 이러하니라.
2 이들이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느헤미야와 스라야와 르엘라야와 모르드개와 빌산과 미스발과 비그왜와 르훔과 바아나와 함께 나왔더라. 이스라엘 백성 사람들의 수가 이러하니

에스라 2장에서는 제1차 포로 귀환 당시 함께 했던 백성들의 명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2절에서는 대표적인 인물들, 지도자들의 이름을 기록해 주고 있는데, 첫 번째로 등장하고 있는 이름이 바로 스룹바벨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솔로몬 성전 이후에 재건하게 되는 제2성전을 스룹바벨 성전이라고 부르는데, 그 이름의 주인공이 되는 사람이 바로 여기에 등장하는 스룹바벨입니다. 이후에는 그것을 헤롯 대왕이 보강하고 증축하였기 때문에 헤롯 성전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그것은 헤롯이 새롭게 지은 것이 아니고 스룹바벨의 성전을 더 멋지게 치장한 것이었습니다.
2절에서 느헤미야의 이름이 등장하고 있는데, 이 느헤미야는 느헤미야서의 그 느헤미야가 아닙니다. 그리고 모르드개의 이름도 등장하고 있는데, 이 사람은 에스더의 삼촌 그 모르드개가 아닙니다. 다만 이름이 똑같은 사람들이 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3절부터 눈으로 쭉 훑어보시면, 제1차 귀환 당시에 함께했던 가족들과 그 수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눈으로 슥 훑어보시면 되겠습니다.
36절에서는 제사장들의 집안을 볼 수가 있고, 40절에서는 레위 사람들의 가족을 볼 수가 있습니다. 또한 41절에서는 다윗 시대에 성전의 찬양대였던 아삽의 자손들도 볼 수가 있습니다. 55절부터는 솔로몬의 신하들의 자손을 볼 수가 있습니다. 또한 61절에서는 또 다른 제사장들의 자손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62절에서는 매우 안타까운 일을 기록하고 있는데, 어떤 이들이 자신들을 제사장의 자손이라고 주장하였지만, 족보로 증명을 할 수가 없어서 제사장의 직무를 행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이제 우리 함께 64절, 65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64 전체 회중이 모두 사만 이천삼백육십 명이었으며
65 그 외에 그들의 남종과 여종들 중에서 거기에 칠천삼백삼십칠 명이 있었고 그들 가운데 노래하는 남자와 노래하는 여자 이백 명이 있었더라.

고레스 왕의 부름을 통해 예루살렘에 귀환한 전체 회중의 수는 약 4만 명 정도 되었습니다. 이 수는 상당히 적은 수였지만, 각자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을 하여 모인 특수정예와 같은, 엑기스 같은, 알맹이 같은 백성들이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사용하셔서 자신의 말씀을 이루시며, 예루살렘 도시와 성전이 다시 세워지게 하시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 정리
오늘 우리는 “그분의 백성이 누구냐”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을 통하여 자신의 백성을 불러 모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도시와 성전을 세우는 위대한 부르심으로 백성들을 부르시면서, 그분의 백성이 누구냐고 물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대언자 이사야를 부르실 때에도 이와 비슷했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까?”(사 6:8). 하나님께서는 단지 이렇게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내가 누구를 보낼 것인가? 누가 갈 것인가?” 그러자 이사야가 응답하였습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부르셨고, 이사야를 보내셨습니다. “넌 자격이 안 돼. 너를 부른게 아닌데.”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에 반응하고 응답한 자, 자원한 자인 이사야를 부르시고 보내셨던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분의 백성이 누구냐? 나의 백성이 누구냐? 그는 예루살렘으로 갈지니라.” 이러한 질문에, 이러한 부르심에 응답한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모여들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성전의 재건자로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어떠한 사역과 일들에 대한 부르심은 각자 다를 수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1차 귀환으로, 또 어떤 사람들은 아직 아니고, 2차와 3차 귀환으로, 또 어떤 사람들은 끝까지 바빌론에 머무는 것으로,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수산 궁에 머무는 것으로 다르게 부르심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각자가 다른 곳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자신만의 특별한 사명을 감당할지라도,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어지는 똑같은 부르심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다름 아닌 하나님 자신께로의 부르심이며, 하나님과의 교제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으로의 부르심인 것입니다.

또한 오늘 우리에게 주신 부르심은 바로 십자가의 부르심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각자 맡은 사명과 사역과 섬김이 다 달랐지만, 그 부르심은 동일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에, 자유가 있고, 해방이 있으며, 사랑과 생명과 권능의 역사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그분의 백성이 누구냐?” 이러한 주님의 부르심에 “내가 여기있나이다”라고 응답하며, 주님과의 교제로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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