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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 Ez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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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 Ez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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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구정민 목사님

* 2012년 10월 14일 주일오전설교

 

 

오직 내 영으로 되느니라(에스라 1:1-3)

 

 

“이제 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제일년에 주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주의 말씀을 이루시려고 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영을 움직이시매 그가 자기의 온 왕국에 두루 선포도 하고 또 글로도 기록하여 이르되,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이같이 말하노라. 주 곧 하늘의 하나님께서 땅의 모든 왕국을 내게 주시고 또 내게 명하사 유다에 있는 예루살렘에 자신을 위해 집을 건축하게 하셨나니

너희 모든 사람 가운데 누가 그분의 백성이냐? 그의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니 그는 유다에 있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라. (그분은 하나님이시요,) 그분의 집은 예루살렘에 있느니라”(에스라 1:1-3).

 

오늘 본문의 말씀의 배경은 이스라엘 백성이 바빌론 제국에 의해서 멸망은 당한지 70년이 지났을 때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70년 동안 바빌론 제국의 포로로 끌려가 바빌론 제국 다음으로 나타난 페르시아 제국에 이르기까지 속박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삶은 피폐했으며, 나라 잃은 백성으로 이방인들의 멸시와 천대 속에서 고통과 수모를 겪는 삶을 살아왔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말씀 에스라서 1장 1절과 2절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제 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제 일 년에 주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주의 말씀을 이루시려고 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영을 움직이시매 그가 자기의 온 왕국에 두루 선포도 하고 또 글로도 기록하여 이르되,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이같이 말하노라. 주 곧 하늘의 하나님께서 땅의 모든 왕국을 내게 주시고 또 내게 명하사 유다에 있는 예루살렘에 자신을 위해 집을 건축하게 하셨나니”

 

주님께서 자신의 때가 이르렀을 때, 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영을 움직이셨습니다. 주님께서 페르시아왕의 영을 움직이셔서 무엇을 하셨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전을 짓도록 명령하게 하셨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어디입니까? 모든 이스라엘 백성 즉 유대인들의 고향입니다. 바로 그곳에 돌아가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들은 무려 70년 동안 포로로 생활하면서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가리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바빌론 제국과 페르시아 제국의 포로로 있으면서 이방인들의 땅에 거하며 예루살렘을 그리워했을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보았을 때, 그들이 그곳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페르시아의 포로였고 종들이었던 유대인들을 누가 그냥 내보내려 하겠습니까?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하게 된 것입니까? 본문의 말씀 에스라서 1장 1절을 보시면, “이제 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제일년에 주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주의 말씀을 이루시려고 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영을 움직이시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로 주님께서 페르시아 왕인 고레스의 영을 움직이셨기 때문입니다. 고레스의 마음 속에 이스라엘 백성을 생각하게 하셨고, 예루살렘을 생각하게 하셨고, 또한 성전을 짓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힘을 써서 된 일도 아니고, 그들의 능력이 탁월해서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페르시야 제국에서 가장 천하고, 가장 가난하고 가장 힘없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오직 주님의 영께서 하신 일인 것입니다.

 

잠언 21장 1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왕의 마음이 물 있는 강들과 같이 주의 손 안에 있나니 그분께서 친히 원하시는 곳으로 그것을 돌리시느니라.”

 

주님의 영께서 고레스 왕의 마음을 움직이시고, 자신의 정하신 뜻을 이루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간절히 바라고 원하는 일들이 이루어지는 것은 우리 힘이나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직 주의 영으로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9장 16절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그런즉 이와 같이 그것은 원하는 자에게서 나지도 아니하고 달리는 자에게서 나지도 아니하며 오직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에게서 나느니라.”하셨습니다.

 

우리가 간절히 원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성취되게 하기 위해서 뛰어다닐지라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오직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에게서 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주의 영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능력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간절히 원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며, 달린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오직 긍휼을 베푸시는 주님의 영으로 되는 것임을 알고 주님의 영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제 본문의 말씀 에스라 1장으로 돌아가서 우리가 주목할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목적이 무엇인가입니다.

에스라 1장 2절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페르시아 와 고레스가 이같이 말하노라. 주 곧 하늘의 하나님께서 땅의 모든 왕국을 내게 주시고 또 내게 명하사 유다에 있는 예루살렘에 자신을 위해 집을 건축하게 하셨나니”

 

이스라엘 백성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데는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루살렘에 주의 집을 건축하는 것입니다.

당시 예루살렘에는 성전이 없었습니다. 바빌론 제국이 이스라엘 땅을 정복했을 때, 그들은 예루살렘에 있었던 성전을 파괴했고,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주의 집, 곧 성전을 다시 건축하게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중요한 의미를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의 삶의 목적은 바로 성전이었으며, 그 성전 안에 거하시는 주님이시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이 특별한 것은 그 안에 성전이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특별한 백성이 되게 하는 것은 그들에게 성전이 있었고, 그 성전 안에 살아계신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로부터 나왔을 때 광야에서 세워진 것이 성막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왔을 때에도 성막이 그들과 함께 하였고, 이후에 예루살렘에 성전이 세워짐으로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전체의 수도이며 영적인 중심지로 자리매김을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예루살렘에 세워진 성전 안에서 살아계신 주님을 만났고, 그분의 은혜와 축복을 누렸었습니다. 성전은 이스라엘 백성의 중심이며, 삶의 목적이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지금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무너진 성전을 건축하고, 그들이 주님과의 교제를 회복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이 말씀은 저와 여러분에게도 중요한 의미를 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주님이십니다. 계4장 11절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 주여, 주는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기에 합당하시오니 주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또 그것들이 주를 기쁘게 하려고 존재하며 창조되었나이다, 하더라.”

 

모든 피조물의 창조와 존재 목적은 주님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의 목적은 주님이십니다.

사람이 인생에서 자신의 구속자이신 주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고, 살아계신 주님과 동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무너진 성전을 건축하게 하시는 것처럼,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삶에 주님과의 교제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70년 간 바빌론 제국과 페르시아 제국에서 유리하고 방황하며,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된 것은 그들이 주님을 떠났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주님과 교제가 없이 살아갈 때, 우리는 방황할 수 밖에 없고, 마음에 평안과 안식이 없으며, 삶의 여러 가지 일들과 문제들로 인해서 고통당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디서 참 평안을 얻을 수 있으며, 안식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어디서 참 만족을 얻고 참된 위로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바로 주님이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7절에서 주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평안을 남기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세상이 주는 것과 달리 내가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우리는 오직 주님 안에서 평안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먼저 주님과의 교제를 회복하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인 것이며, 가장 먼저가 되어야 할 일인 것입니다.

 

우리가 또한 본문의 말씀에서 주목할 수 있는 것은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고 부르신 분은 바로 주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이 이스라엘 백성과 교제하는 것을 더 원하시는 것이며, 그들을 영적으로 회복시키는 것을 더 원하고 계신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주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이 주님과 교제하려는 마음보다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과 교제하는 것을 더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교제를 통하여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기를 원하시고, 우리의 필요들을 채우시기를 더 원하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모든 자들아, 너희에는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먼저 부르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주님께 나아가기를 원하고, 주님과의 교제를 회복하기를 원합니다.

 

이제 본문의 말씀으로 돌아가서 에스라서 1장 5절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때에 유다와 베냐민의 아버지들의 우두머리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또 하나님께서 영을 일으켜 주신 모든 사람들이 올라가 예루살렘에 있는 주의 집을 건축하려고 일어나니”

 

주님께서 고레스 왕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셨을 때,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주님의 집을 건축하려고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주님의 집을 건축하려고 할 때, 많은 문제들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에스라서 4장 1절을 보시겠습니다.

 

“이제 포로로 사로잡혀 갔던 자들의 자손이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였다는 것을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들이 듣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대적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 근처에 살고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4절에서 6절까지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그때에 그 땅의 백성이 유다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고 건축하는 일에서 그들을 괴롭게 하며 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전 생애 동안과 페르시아 왕 다리오가 통치할 때까지 조언자들을 고용하여 그들을 대적하게 하고 그들의 목적을 좌절시키려 하였으며 아하수에로의 통치 때에 곧 그가 통치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이 유다와 예루살렘 거주민들을 고소하는 글을 그에게 보내었더라.”

 

이스라엘 백성이 성전을 건축하는 것을 방해하는 자들이 나타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유다 백성을 공격하고 끊임없이 괴롭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5절의 말씀을 보면, 그들이 조언자들을 고용하여 유대인들이 성전을 건축하는 목적을 좌절시키려고 하는 것을 볼 수 있고, 그 방법으로 6절과 같이 아하수에로 왕에게 유다와 예루살렘 거주민들을 고소하는 글을 쓰는 것임을 볼 수 있습니다. 아하수에로 왕은 고레스 왕이 죽고 난 다음의 등극한 왕이었습니다.

 

12절과 13절을 보시겠습니다.

 

“왕께 이것을 알리나이다. 곧 왕으로부터 우리에게로 올라온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반역을 일삼는 나쁜 도시를 건축하여 이미 그것의 성벽을 세우고 기초들을 연결하였사오니

이제 왕께서는 이것을 아시옵소서. 곧 이 도시가 건축되고 성벽이 다시 세워지면 그들이 세금과 조공과 관세를 바치지 아니하리니 이로써 왕께서는 왕들의 세입에서 손해를 보리이다.“

 

그리고 16절을 보시겠습니다.

 

“우리가 왕께 알리오니 이 도시가 다시 건축되고 그것의 성벽이 세워지면 이것으로 말미암아 왕께서는 강 이편에서 아무 몫도 소유하지 못하시리이다, 하였더라.”

 

그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고소하는 내용은 그들이 당시 페르시아 왕인 아하수에로 왕에게 반역했고, 성전이 건축되면 세금을 바치지 않을 것이며, 완전히 빼앗기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들은 당시 전 세계를 지배하였던 아하수에로 왕의 마음을 설득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21절을 보시겠습니다.

 

“이제 너희는 명령을 전달하여 이 사람들이 공사를 중단하게 하고 내가 다른 명령을 내릴 때까지 이 도시를 건축하지 못하게 하라.”

 

그리고 23절과 24절을 보시겠습니다.

 

“이제 아닥사스다 왕의 편지 사본을 르훔과 서기관 심새와 그들의 동료들 앞에서 낭독하매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급히 가서 유대인들에게 이르러 힘과 권세를 이용하여 그들로 하여금 공사를 중단하게 하니 그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집에 관한 공사가 중단되고 이처럼 그 일이 페르시아 왕 다리오의 통치 제이년까지 중단되니라.”고 기록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의 대적들로 말미암아 공사가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그들의 말을 들은 아하수에로 왕은 선왕이었던 고레스 왕의 칙령을 무시하고, 23절에서 기록된 대로 “...힘과 권세를 이용하여...” 이스라엘 백성의 일을 중단시켰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과 그들의 지도자였던 스룹바벨의 마음을 심히 어렵게 하고 낙심하였습니다.

 

우리 또한 이러한 상황을 당할 수 있습니다. 주님과 교제를 회복한 이후에 우리 삶에 많은 문제들과 공격들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과 공격들은 우리의 마음을 낙심시키고 좌절하게 하며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들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에 우리가 바라보고 의지해야 할 분은 누구입니까? 바로 주님이십니다.

 

에스라 5장 1절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때에 대언자들 곧 대언자 학개와 잇도의 아들 스가랴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유다와 예루살렘에 있던 유대인들에게 곧 그들에게 대언하였더니”

 

주님께서는 이 모든 상황들을 아시고, 스가랴를 통하여 실의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과 스룹바벨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그 말씀이 스가랴서 4장 6절입니다.

 

“그때에 그가 내게 응답하며 말하여 이르되, 주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이르시되, 힘으로 되지 아니하고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며 오직 내 영으로 되느니라.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주님께서는 힘으로 되지 아니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당시 아하수에로는 자신의 힘으로 스룹바벨과 이스라엘 백성을 가로막았습니다.

스룹바벨은 아하수에로 왕이 자신의 힘으로 그를 막는 것을 보면서, 스스로 생각하기를 내가 힘이 있었다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텐데 하였을 것입니다. 내가 힘이 있었다면, 저들을 물리치고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었을 텐데 라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또한, 주님은 “...능력으로 되지 아니..”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아하수에로 왕은 자신의 권세로 스룹바벨을 막아버렸습니다.

스룹바벨은 생각하기를 내가 저들만큼 지위가 높았더라면, 저들보다 더 강력한 권세를 가졌더라면, 저들이 감히 자신을 막지 못했을 텐데 라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우리 또한 어떤 문제에 봉착하고,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내가 힘이 있었다면, 내가 권세가 있었다면, 내가 능력이 있었다면, 내가 재물이 많았다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텐데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저들보다 더 지혜로웠다면, 내가 저들보다 더 재능이 많았다면, 내가 저들보다 더 말을 잘 할 수 있었다면, 내가 저들보다 더 학식이 뛰어났다면 저들이 나를 얕보지 않고 나를 방해하지 않고, 나를 막을 수 없었을 텐데 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때에 그가 내게 응답하며 말하여 이르되, 주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이르시되, 힘으로 되지 아니하고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며 오직 내 영으로 되느니라.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스가랴 4장 6절).

 

주님께서는 “...오직 내 영으로 되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가진 것이 없고, 힘이 없으며, 건강도 좋지 못하고, 능력도 없고, 말도 잘 하지 못하고, 학식도 없고, 재능도 없지만, 모든 일은 주님의 영으로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페르시야의 포로로 살았을 때, 그들은 가장 가난하고, 가장 비천하며, 가장 힘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누가 고레스 왕의 영을 움직이셨습니까? 누가 이스라엘 백성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하셨습니까? 바로 주님이신 것입니다. 주의 영께서 하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아하수에로 왕의 힘과 권세로 그들의 앞길이 가로막혀 있을지라도 주님은 또다시 그들을 도우실 수 있는 분이시며, 그들의 길을 여실 수 있는 분이신 것입니다.

 

지금 스룹바벨 앞에 놓여진 현실은 거대한 산과 같았습니다. 도저히 움직일 수 없는 산인 것입니다. 어떻게 아하수에로 왕을 움직일 수 있으며, 수많은 대적들을 물리칠 수 있겠습니까?

그것과 함께 성전이 완공될 때까지 들어갈 재물들이 하나도 없고 이스라엘 백성은 절망 속에서 힘을 완전히 잃어버린 현실이라는 산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오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스가랴 4장 7절).

 

아무리 큰 산이라 할지라도 주님 앞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스룹바벨 앞에서 네가 평야가 되리라..”

 

주님께서는 그 거대한 산도 무너뜨리시고 평야로 만들 수 있는 분이시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앞에 산처럼 놓여 있는 문제가 있다 할지라도 주의 영께서 능히 그것을 평야가 되게 하시고, 주님의 뜻을 이루실 수 있는 것입니다.

 

8절과 9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주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스룹바벨의 손이 이 집의 기초를 놓았은즉 그의 손이 또한 그것을 끝마칠 것이요, 만군의 주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줄을 네가 알리라.”

 

주님께서 스룹바벨로 하여금 시작한 그 일을 끝마치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주님의 말씀이 스룹바벨에게 얼마나 큰 용기와 힘이 되었겠는지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에스라서 6장 1절을 보시겠습니다.

 

“이에 다리오 왕이 칙령을 내려 두루마리를 둔 집 곧 바빌론에서 보물들을 쌓아 둔 곳을 찾아보게 하였더니”

 

주님께서는 아하수에로 다음으로 등극한 다리오 왕을 움직이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로 하여금 고레스 왕이 내린 칙령을 발견하게 하시고, 다음과 같이 말하게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 집에 관한 일을 그대로 두고 유대인들의 총독과 유대인들의 장로들이 하나님의 이 집을 그것의 처소에 건축하게 하라.

내가 또 칙령을 내려서 하나님의 이 집을 건축하는 일을 위해 너희가 이 유대인들의 장로들에게 무엇을 행할 것인지 알게 하노니 왕의 재산 곧 강 건너에서 들어오는 조공 중에서 그 경비를 이 사람들에게 빨리 주어 그들이 방해를 받지 않게 하라”(에스라서 6장 7,8절).

 

여기서 다리오는 이스라엘 백성이 성전을 건축하는 일을 다시 시작하게 하고, 모든 필요한 경비를 줄 뿐 아니라 방해받지 않도록 명령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12절을 보시겠습니다.

 

“거기에 자신의 이름을 두신 하나님께서 스스로 손을 대어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집을 바꾸거나 멸하려는 모든 왕들과 백성들을 멸하시기를 원하노라. 나 다리오가 칙령을 내렸노니 신속히 그 일을 행할지어다, 하였더라.”

 

다리오는 성전 건축이 신속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도움을 다 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일을 누가 하신 것입니까? 주의 영께서 하신 일인 것입니다. 이제 13절에서 15절까지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그때에 강 이편의 총독 닷드내와 스달보스내와 그들의 동료들이 다리오 왕이 보내온 것에 따라 신속히 행하더라. 유대인들의 장로들이 건축하고 대언자 학개와 잇도의 아들 스가랴의 대언을 통해 형통하였더라.

그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명령과 페르시아 왕 고레스와 다리오와 아닥사스다의 명령대로 그것을 건축하여 완성하되 다리오 왕의 통치 제육년에 있었던 아달 월 삼일에 이 집을 완성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이 역사하시자 일들이 신속히 이루어져 성전이 완성되게 되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모든 일들은 오직 주의 영으로 되는 것입니다.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일들은 우리의 힘이나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의 영으로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3장 5절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우리는 어떤 일이 우리 자신에게서 난 것으로 생각할 만큼 능력이 있지 아니하며 오직 우리의 능력은 하나님에게서 나느니라.”

 

그러므로 오직 우리 안에 살아계시는 주의 영을 의지하기를 원합니다. 우리 자신을 바라보지 말고, 현실의 거대한 산을 바라보지 말고, 우리의 모든 일들은 오직 주의 영으로 된다는 것을 알며, 주님만을 의지하기를 원합니다.

그럴 때, 힘으로 능력으로 안되던 그 일을 주의 영께서 이루시고 우리가 바라고 원하던 것보다 더 놀랍게 주님께서 이루시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스가랴서 4장 6절의 말씀을 읽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그때에 그가 내게 응답하며 말하여 이르되, 주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이르시되, 힘으로 되지 아니하고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며 오직 내 영으로 되느니라.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갈보기침례교회 http://calvary-baptist-church.net/1500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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