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2.28. 갈보리침례교회 주일오후예배 설교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사람들(왕하 7:3-5)
이승선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열왕기하 7장입니다. 열왕기하 7장 3-5절 말씀입니다.
3 성문 어귀에 나병 환자 네 사람이 있었는데 그들이 서로 이르되, 우리가 어찌하여 죽을 때까지 여기 앉아 있느냐?
4 우리가 말하기를, 우리가 도시에 들어가리라, 해도 도시 안에 기근이 있으므로 우리가 거기서 죽을 것이요, 여기 가만히 앉아 있어도 죽으리로다. 그런즉 이제 오라. 우리가 시리아 사람들의 군대에 항복하자. 그들이 우리를 살려 두면 우리가 살려니와 그들이 우리를 죽이면 우리가 죽을 따름이라, 하고
5 그들이 시리아 사람들의 진영으로 가려고 황혼에 일어나서 시리아 진영의 맨 끝 부분에 이르렀는데, 보라, 그곳에 한 사람도 없더라.
저는 오늘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기 원합니다. 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 서론
오늘 말씀의 제목은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사람들”입니다.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만드시고, 마지막으로 사람을, 하나님 자신의 형상대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이 땅에 주인공으로 창조하셨고, 가장 놀라운 작품으로 만드셨습니다. 사람이 이 땅에 창조되고 존재하는 목적은 바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도 바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살아계신 하나님과 교제하고 동행하며 사랑하고 믿음으로 순종할 때에, 하나님께서 기쁨을 얻으시며, 사람도 행복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살아 숨 쉬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사람이 되기 위함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사람에게 어떠한 삶이 가장 행복하고 가치 있고 의미가 있느냐고 물었을 때, 그 해답은 바로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사람이 되는 삶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더 먹거나, 더 좋은 차를 타거나, 더 좋은 집에서 살아보거나, 더 좋은 옷을 입거나, 사람들에게 칭찬 한 마디를 더 듣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모든 것은 영원한 것이 아니고, 순간적인 쾌락과 만족에 불과합니다. 오늘 우리가 바라는 것은 영원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꿈과 삶의 목적과 방향은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귀하게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손에 완전히 붙들린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것을 위해 살아가고 있으며, 우리의 자녀들 또한 이것을 위해 이 땅에 태어났고, 우리들에게 맡겨졌습니다.
오늘 우리는 열왕기하 6장과 7장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사람들에 대하여 생각해 볼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사람이 될 것인가를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우리가 오늘 이 땅을 살면서, 하나님께 쓰임을 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버려진 삶이며, 가장 비참한 삶이며, 영원히 후회할 만한 삶이 될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여 주시기를 원하고, 또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 사마리아의 기근
우리 함께 열왕기하 6장 24,25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24 이 일 뒤에 시리아 왕 벤하닷이 자기의 온 군대를 모으고 올라와서 사마리아를 에워싸니
25 사마리아에 큰 기근이 있더라. 보라, 그들이 사마리아를 에워쌌으므로 마침내 나귀 머리 하나가 은 여든 개에 팔리고 비둘기 똥 사분의 일 갑이 은 다섯 개에 팔리더라.
오늘의 말씀은 시리아 왕 벤하닷이 자기의 온 군대를 이끌고 사마리아를 포위한 상황에서 시작하고 있습니다. 또한 25절 말씀에서는 사마리아에 큰 기근이 있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 북왕국 이스라엘은 거의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다다르고 말았습니다. 포위를 당하여 성문을 열 수가 없었기 때문에, 교역을 하여 물자를 공급할 수도 없었습니다. 모든 것을 자급자족하며 시리아 군대가 물러나기를 기다려야 하는 시간 싸움에 들어갔는데, 큰 기근이 임하고 말았습니다. 더 이상 식량이 남아있지 않게 되었습니다. 나귀 머리와 비둘기 똥이라는 것은 아무도 사지 않을 법한 물건들인데, 이러한 것들조차 비싸게 거래가 되는 너무나 힘들과 열악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 함께 26-29절까지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26 이스라엘 왕이 성벽 위로 지나갈 때에 한 여인이 그에게 외쳐 이르되, 오 내 주 왕이여 도우소서, 하매
27 왕이 이르되, 주께서 너를 돕지 아니하시면 내가 어디에서 나는 것으로 너를 도우랴? 창고 마당에서 나는 것으로 하랴? 아니면 포도즙 틀에서 나는 것으로 하랴? 하고
28 또 그녀에게 이르되, 무엇이 너를 괴롭게 하느냐? 하니 그녀가 대답하되, 이 여인이 내게 말하기를, 네 아들을 내라. 우리가 오늘 그를 먹고 내일은 내 아들을 먹으리라, 하매
29 이에 우리가 내 아들을 삶아 먹었나이다. 다음 날 내가 그녀에게 이르되, 네 아들을 내라. 우리가 그를 먹으리라, 하였으나 그녀가 자기 아들을 숨겼나이다, 하니라.
이 말씀은 사마리아의 상황이 얼마나 비참하고 힘들었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 여인이 성벽 위로 지나가는 이스라엘 왕을 붙잡고, 오늘은 내 아들을 삶아 먹고, 내일은 니 아들을 삶아 먹자고 이웃끼리 약속을 했는데, 그것을 어겼다고 도와달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백성들이 배가 고픈 나머지 사람을 잡아먹고, 그것도 자기 자식을 잡아먹기에 이른 것입니다. 어찌하여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이러한 비참한 상황을 허락하셨을까요?
우리 잠시 신명기 28장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신명기 28장 15-19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5 그러나 만일 네가 주 네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여 내가 이 날 네게 명령하는 그분의 모든 명령과 법규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고 너를 따라잡으리니
16 네가 도시에서도 저주를 받고 들에서도 저주를 받으며
17 네 바구니와 네 쌓아 둔 것이 저주를 받고
18 네 몸의 열매와 네 땅의 열매와 네 암소의 번식과 네 양 떼가 저주를 받으며
19 네가 들어와도 저주를 받고 나가도 저주를 받으리라.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와 같은 엄중한 경고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모든 명령과 모든 법규의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하면 언제 어디서나 저주를 받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도시에서도 들에서도, 모든 재산 가운데에도, 자녀들에게도, 가축들에게도 저주가 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신명기 28장 47-50절까지의 말씀도 보시겠습니다.
47 모든 것이 풍족한데도 네가 기뻐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주 네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였으므로
48 주께서 너를 치려고 보내실 네 원수들을 네가 섬기되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모든 것이 궁핍한 가운데 섬기리니 그가 쇠 멍에를 네 목에 씌워 마침내 너를 멸하리라.
49 주께서 멀리 땅 끝에서 한 민족을 데려오사 빨리 나는 독수리같이 너를 치게 하시리니 이 민족은 네가 그 언어를 깨닫지 못하는 민족이요,
50 용모가 흉악한 민족이니라. 그들이 노인들을 중히 여기지 아니하고 어린것들에게 호의를 베풀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분명한 경고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분명히 다윗과 솔로몬의 시대에 모든 것이 풍족하고 기쁘고 즐거운 마음을 누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바알을 숭배하였고, 금송아지를 숭배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러할 때에, 멀리 땅 끝에서 언어가 다른 민족들 데려오셔서 그들을 치게 하시겠다고 경고하셨습니다. 전쟁은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합니다.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더욱 그러했습니다. 이스라엘 왕은 여인에게 주께서 너를 돕지 아니하시면 내가 어디에서 돕겠느냐고 물을 것이 아니라, 모든 금송아지 숭배와 바알 숭배를 버리고,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나아왔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함께 또한 신명기 28장 52,53절 말씀도 보시겠습니다.
52 그가 네 모든 성문에서 너를 에워싸고 마침내 네가 신뢰한 너의 높고 견고한 성벽을 네 온 땅에서 헐며 주 네 하나님께서 네게 주신 네 온 땅의 네 모든 성문에서 너를 에워싸리니
53 네 원수들이 너를 괴롭게 하려고 너를 에워싸며 곤경에 빠뜨릴 때에 네가 주 네 하나님께서 네게 주신 네 몸의 열매 곧 네 아들딸들의 살을 먹으리라.
이스라엘 백성이 전쟁의 심판에 처하게 될 때에, 자기 자식을 먹게 되는 비참한 상황에 대한 경고의 말씀은 계속해서 57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 열왕기하 6장의 말씀에 나타난, 여인이 자기 아들을 잡아먹게 된 상황은 우연히 발생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오래 전에 모세를 통하여 경고하여 놓으신 심판의 말씀이 현실에서 정확히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였다는 표적이며 신호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즉시 모든 우상숭배를 버리고, 마음을 다해 하나님 앞에 돌이켰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 엉뚱한 원망
이제 우리 함께 열왕기하 6장으로 돌아오셔서 31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그때에 그가 이르되, 이 날 사밧의 아들 엘리사의 머리가 그에게 붙어 있으면 하나님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여기서 우리는 참으로 어리석은 이스라엘 왕의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는 자기 백성들이 서로 자식을 잡아먹는 비참한 모습을 보면서, 그 모든 비난과 원망의 화살을 엘리사에게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엘리사의 책임이라고 생각하고, 엘리사를 죽이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말입니다. 어리석은 자의 특징은 끝까지 자기 잘못을 보지 못하고, 깨닫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징계가 분명히 나에게 주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의 모습을 돌이켜보고, 주님 앞에 무릎을 꿇기는커녕,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는 엉뚱한 엘리사를 비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스라엘 왕의 모습은 바로 다름 아닌 저의 모습이고, 또한 우리 모두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육신 가운데 거하게 될 때, 우리는 이렇게 어리석고 엉뚱한 생각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에게 고난이 오고 어려움이 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누구 때문입니까? 그것은 다름 아닌 나 자신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알면서도 거역하고, 육신 가운데 행하며, 여전히 용서하지 아니하고, 순종하지 아니하고, 나의 고집을 내려놓지 아니하며, 탐욕의 우상숭배와 세상의 쾌락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버리지 아니하기 때문에 모든 징계가 임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왕은 엘리사를 죽이겠다고 분노할 것이 아니라, 다른 누구를 원망할 것이 아니라, 마땅히 주님 앞에 눈물로 무릎을 꿇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기근이 임하고, 메마름이 올 때,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 엘리사를 통한 주의 말씀
이제 우리 함께 열왕기하 7장 1,2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 이에 엘리사가 이르되, 너희는 주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밀가루 일 세아가 일 세겔에 팔리고 보리 이 세아가 일 세겔에 팔리리라, 하니
2 그때에 한 귀족 곧 손으로 왕을 부축하는 자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응답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하늘에 창들을 내신들 이런 일이 있으리요? 하매 그가 이르되, 보라, 네가 네 눈으로 그것을 볼 터이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 하니라.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는 엘리사를 통하여 구원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단 하루 만에,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곡식이 매우 싼 값에 팔릴 정도로 차고 넘치는 식량이 공급될 것임을 말씀해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왕이 아직 돌이키지도 않았고, 백성들이 주님 앞에 회개하지도 않았는데, 하나님께서 전쟁에 승리를 주시고, 충분한 음식을 주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우리는 2절에서 왕을 부축하는 한 귀족의 말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는 백성들 위에 군림하는 귀족이었습니다. 백성들을 마땅히 바른 길로 인도해야 하는 책임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믿음의 말도 아니었고, 백성들을 격려하는 말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고 있는 엘리사의 말에 의심에 찬 반대의견을 제기하였을 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대로 넘치는 음식을 그들에게 공급하여 주셨습니다. 이것은 이해할 수 없는, 모든 지식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사랑이며, 긍휼이며, 은혜입니다. 오늘 우리도 이러한 은혜가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잘 돌이켰기 때문에, 잘 순종했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잘했기 때문에, 우리가 풍족히 먹고, 무사하고 건강하게 잘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매일 매순간 넘어지고 어리석게 행하는 자격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로 다 할 수 없는 은혜와 사랑을 넘치게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좋으신 주님을 우리가 더 알기 원하고, 더 참되게 따라갈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 자격 없는 사람들
이제 우리 함께 열왕기하 7장 3-5절까지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3 성문 어귀에 나병 환자 네 사람이 있었는데 그들이 서로 이르되, 우리가 어찌하여 죽을 때까지 여기 앉아 있느냐?
4 우리가 말하기를, 우리가 도시에 들어가리라, 해도 도시 안에 기근이 있으므로 우리가 거기서 죽을 것이요, 여기 가만히 앉아 있어도 죽으리로다. 그런즉 이제 오라. 우리가 시리아 사람들의 군대에 항복하자. 그들이 우리를 살려 두면 우리가 살려니와 그들이 우리를 죽이면 우리가 죽을 따름이라, 하고
5 그들이 시리아 사람들의 진영으로 가려고 황혼에 일어나서 시리아 진영의 맨 끝 부분에 이르렀는데, 보라, 그곳에 한 사람도 없더라.
여기에서 우리는 성문 어귀에 머물고 있던 나병 환자 네 사람을 볼 수가 있습니다. 지금 사마리아의 모든 사람들이 다 비참한 가운데 있다고 할 수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더 비참한 네 명의 나병 환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삶아 먹을 자식도 없었고, 거할 집도 없어서 성문 어귀에, 길거리에 머물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들에게 확실한 것은 곧 죽을 것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도시에 들어가도 구걸해서 먹을 것이 전혀 없었고, 성문 어귀에 가만히 있어도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한 가지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어차피 죽을 것이라면, 시리아 군대에 가서 항복해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항복하면 혹시 음식을 줄지도 모르고, 아니라면 어차피 죽을 것이니까 죽을 따름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한 번 살아보겠다고 민족을 배신하는 결정을 내린 것이었습니다. 그저 자기들의 유익만을 생각하면서 이기적으로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자격이 없는 나병 환자 네 사람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들이 시리아 사람의 진영에 이르렀을 때 아무도 없었던 것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요?
우리 함께 6,7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6 주께서 시리아 사람들의 군대로 하여금 병거 소리와 말 소리 곧 큰 군대의 소리를 듣게 하셨으므로 그들이 서로 말하기를, 보라, 이스라엘 왕이 우리를 치려고 헷 족속의 왕들과 이집트 사람들의 왕들을 고용하여 우리에게 오게 하였다, 하고
7 그러므로 일어나서 황혼에 도망하되 자기들의 장막과 말과 나귀를 버리고 또 진영을 그대로 두고 자기들의 생명을 건지려고 도망하였더라.
나병 환자 네 사람이 낸 소리는 배에서 나는 꼬르륵 소리, 콜록콜록 기침 소리, 맨발로 먼지를 일으키며 터벅터벅 걷다가 뛰다가 하는 소리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시리아 사람들이 들은 소리는 거대한 병거와 말과 큰 군대의 소리였습니다. 이스라엘 왕이 그들을 치려고 헷 족속의 왕들과 이집트의 군사들을 고용하여 엄청난 군대가 집결하고 있는 소리를 들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짐을 챙겨갈 여유도 없이 맨 몸으로, 모든 것을 다 남겨두고 도망하였던 것입니다.
15절 말씀을 잠시 보시겠습니다.
그들이 시리아 사람들의 뒤를 따라 요르단에 이른즉, 보라, 그들이 급한 김에 내버린 의복과 기구가 온 길에 가득하였더라. 사자들이 돌아와서 왕에게 고하매
그들이 얼마나 급하게 도망을 갔는지, 도망가면서 무거운 갑옷과 기구들을 다 벗어버렸습니다. 사마리아는 하루아침에 가만히 앉아서 전쟁에 승리했고, 모든 탈취물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놀라운 일에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사람들은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 보잘 것 없는 사람들, 비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전능자 하나님께서는 그 어떤 부족한 사람을 사용하실지라도, 위대한 역사를 일으키실 수 있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무엇인가 되는 줄로 생각하는 사람은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어떤 일들을 섬기고 나서 자기의 자랑과 영광으로 취하는 사람을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약한 자들을 통하여 자신의 권능을 나타내시고, 어리석은 자들을 통하여 자신의 지혜를 나타내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권세가 있었던 왕이나, 스스로 지혜로웠던 귀족이 아니라, 스스로 아무것도 아닌 자로 여겼던 나병 환자들을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 믿지 않는 자의 최후
이제 우리 함께 열왕기하 7장 16-20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6 백성이 나가서 시리아 사람들의 장막들을 노략하니라. 이에 주의 말씀대로 고운 밀가루 일 세아가 일 세겔에 팔리고 보리 이 세아가 일 세겔에 팔리니라.
17 왕이 손으로 자기를 부축하던 그 귀족을 임명하여 성문의 책무를 맡게 하였는데 백성이 성문에서 그를 밟으매 왕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내려 왔을 때에 그가 말한 대로 그 귀족이 죽었더라.
18 전에 하나님의 사람이 왕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보리 이 세아가 일 세겔에 팔리고 고운 밀가루 일 세아가 일 세겔에 팔리리라, 한즉
19 그때에 그 귀족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응답하여 이르되, 이제, 보라, 주께서 하늘에 창들을 내신들 그런 일이 있으리요? 하매 그가 말하기를, 보라, 네가 네 눈으로 그것을 볼 터이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 하였더라.
20 그 일이 그에게 그대로 임하였으니 백성이 성문에서 그를 밟으매 그가 죽었더라.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정확히 성취된 것과,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한 자의 최후를 볼 수가 있습니다. 그는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진 것을 목격하였지만, 그것을 먹지는 못하였습니다. 많은 탈취물과 곡식이 있음을 백성들이 듣고 성문 밖으로 쏟아져 나갈 때, 성문에서 책무를 맡아서 질서를 유지하던 그 귀족은 백성들이 몰려나가는 그 행진에 밟혀 죽고 말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믿음 없이 주의 말씀을 대적한 자를 어떻게 엄중히 다루시는가를 볼 수가 있습니다.
** 정리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사용하실 수가 있지만, 아무나 사용하시지는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을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낮추신다면, 그것은 우리를 사용하시기를 원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통치자로 세우시기 전에 비참한 노예의 삶으로 낮추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세우시기 전에 먼저 사망의 그늘진 골짜기를 통과하게 하셨습니다. 모세를 광야로 몰아내셨고, 사도바울에게는 육체의 가시를 주셨으며, 베드로에게는 주님을 부인하는 치명적인 실패를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사람만이 하나님께 사용을 받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께 크게 사용을 받을 수 있는 좋은 자리에 있었지만, 전혀 사용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는 스스로 너무 의로워서 자기 죄를 주님 앞에 돌아보지 못한 채, 엉뚱하게 엘리사를 죽이고자 했고, 엘리사에게 모든 책임을 돌릴 뿐이었습니다.
왕을 부축하던 귀족 또한 하나님께 사용을 받을 수 있는 좋은 자리에 있었지만, 전혀 사용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는 자기 지혜와 생각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과 방법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아무것도 아닌 나병 환자 네 사람을 사용하셨고, 그들을 통하여 온 시리아의 군대를 물리치셨으며, 이스라엘에 큰 구출을 가져다 주셨습니다. 그들은 이미 자기들의 죽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이었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왕 앞에 나갔던 에스더처럼, 그들은 이미 자기들을 죽은 자로 여겼으며, 아무것도 아닌 자로 여겼던 것이었습니다. 이와 동일한 원리로,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자기의 야망과 자존심과 권리와 체면과 모든 것을 죽음으로 넘긴 사람, 아무것도 아닌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를 사용하시지 못한다면, 그 이유는 우리에게 지혜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너무 지혜롭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너무 대단하기 때문이며, 스스로 너무나 자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 생각이 있고, 내 의견이 있고, 내 고집이 있고, 내 방법이 있어서,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뜻에 순종하지 아니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수가 없습니다. 전 못합니다, 라고 겸손하게 말하면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아니하고 버티며 거역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킬 수도, 경험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풍족한 음식을 먹으면서 즐거워하는 나병 환자 네 사람을 보고, “저런 못난이들도 좋다고 음식을 먹고 있네.”하면서 무시하고 손가락질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누구를 사용하셔서 이 모든 은혜를 누리게 되었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 그들을 정죄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누군가를 통해 공급된 하나님의 역사를 맛보고 좋아하기는 했지만, 그들 자신이 직접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도구와 통로가 되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셨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지금 내려와 보라.” 사람들이 도발하고 조롱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아무것도 아닌 죄인의 모습처럼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십자가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오늘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면, 스스로 무명한 자가 되셨던 예수님처럼, 세상의 오물같이 되고 모든 것의 찌꺼기가 되었다고 말했던 바울과 사도들처럼,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높여주시고, 칭찬해 주시며, 영광으로 보상해 주시는 그 날을 믿고 소망하면서, 오늘 우리가 아무것도 아닌 자로서, 힘차게 주님을 따라가기를 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