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1.06. 갈보리침례교회 수요기도회 설교
풍성히 먹이시는 하나님(왕하 4:44)
이승선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열왕기하 4장입니다. 열왕기하 4장 44절 말씀입니다.
이에 그가 그들 앞에 그것을 차렸더니 주의 말씀대로 그들이 먹고 그것을 남겼더라.
저는 오늘 “풍성히 먹이시는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기 원합니다. 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 서론
오늘 말씀의 제목은 ”풍성히 먹이시는 하나님”입니다. 누군가 우리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여러 가지로 대답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분은 창조주이시고, 전능자이시고, 구원자이십니다. 또한 우리 주님은 아버지이시고, 친구이시며, 선한 목자이시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며, 참 포도나무이십니다. 주님은 처음과 마지막이시며, 빛이시며, 또한 우리의 힘과 지혜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이 되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선하시며, 우리를 돌보시는 분이시며, 우리의 모든 필요를 공급하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먹이시는 분이시며, 풍성히 먹이시는 분입니다. 오늘 우리는 특별히 바로 이러한 하나님, 곧 우리를 풍성히 먹이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먹이시는 일에 아주 큰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인생에서, 아니 모든 생명체에게 있어서, 가장 기초적이고,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한다면, 그것은 바로 먹는 것입니다. 먹고 사는 문제가 사람에게 가장 기본적이며,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모든 부모님의 공통된 관심이 있다면, 그것은 자녀들이 음식을 골고루 잘 먹는가, 밥은 먹고 다니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먹는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십니다. 하나님께서 처음에 사람을 창조하시면서 주신 복은 에덴동산에 있는 모든 열매를 일하지 않고 마음대로 먹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명령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이후에 사람이 범죄 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주신 벌은, 이제부터 사람이 이마에 땀을 흘려 일해서 빵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신약에서도 사람이 일하지 않으려거든 먹지도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노아의 홍수로 말미암아 이 땅에 큰 변화가 일어나면서,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그의 가족들에게 이제부터는 채소만이 아니라, 고기도 먹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출애굽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사십 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셨습니다. 또한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헌물로 바쳐지는 짐승들 가운데, 어떤 부분을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먹어도 되는 정결한 짐승과 먹지 말아야 하는 부정한 짐승을 상세히 설명해 놓으셨습니다.
유명한 시편 23편에서는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 다윗이, 주께서 내 원수들의 얼굴 앞에서 상을 차리시고 만찬을 먹게 하셨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또한 불의 대언자 엘리야에게는 까마귀를 통해 고기를 공급하셨고, 또 사르밧 과부의 가루 한 움큼을 통해, 기근의 때에 먹을 것을 공급하여 주셨습니다. 엘리야가 아합의 아내 이세벨로 인하여 낙담하고, 로뎀나무 아래에서 잠들었을 때에는 머리맡에 숯에 구운 빵과 물 한 병을 준비하시고, 그를 어루만지시며 일어나 먹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주시면서, 일용할 양식을 주시도록 기도하라고 말씀하셨고, 공중의 새들을 가리키시며, 하늘의 아버지께서 우리 모두를 먹이신다는 사실을 믿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굶주린 백성들을 보실 때에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풀어 그들이 배불리 먹게 하셨고, 부활하신 이후에는 밤새도록 바다에서 아무것도 잡지 못한 제자들을 위해 숯불을 피우시고, 친히 고기를 구워주셨습니다. “얘들아, 너희에게 먹을 것이 있느냐?”라고 물으시며, 그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친히 준비해 주셨던 것입니다.
우리 잠시 사도행전 14장 17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한 일을 행하시고 우리에게 하늘로부터 비를 주시며 결실의 계절을 주사 음식과 기쁨으로 우리 마음을 채워 주심으로써 증거 없이 자신을 내버려두지 아니하셨느니라, 하고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맛있는 음식을 먹는 기쁨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반가운 사람들과 만나서 교제할 때,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습니다. 우리 학생들이 수련회에 가서 제일 좋아하는 부분은, 바로 엄마의 방해 없이, 늦은 밤에 컵라면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고, 또 토요일 저녁 식사로 숯불에 고기를 구워먹는다는 것입니다. 먹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즐거움은 바로 선하신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우리 사람을 사랑하셔서 다양한 먹거리를 만들어 주셨고, 우리에게 혀로 맛을 알게 하셨으며, 다양한 음식으로 즐거워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먹이시는 분이시며, 참으로 풍성히 먹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선하신 하나님께서 오늘도 우리를 먹이셨고, 기쁨으로 우리의 마음을 채워주심으로써, 우리를 사랑하시고, 돌보고 계심을 증거하여 보여주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열왕기하 4장 38절부터 44절까지의 말씀도 역시 먹는 것과 관련된 두 가지 사건, 바로 두 가지 기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의 말씀을 통해서, 실제적으로 우리를 먹이시고 입히시며 돌보시는 하나님을 기억하기 원합니다. 또한 우리의 육체적인 음식만이 아니라, 하늘의 양식으로 우리를 먹이시고, 힘을 공급하여 주시며, 풍성히 먹이시는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이 시간 주님께서 친히 우리 각자에게 말씀해 주시기 원합니다.
** 기근
우리 다시 열왕기하 4장으로 돌아오셔서 38-41절까지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38 엘리사가 다시 길갈에 이르니라. 그 땅에 기근이 들었는데 대언자들의 아들들이 그의 앞에 앉으매 그가 자기 종에게 이르되, 큰 솥을 걸고 대언자들의 아들들을 위해 죽을 끓이라, 하니라.
39 한 사람이 채소를 캐러 들에 나갔다가 야생 덩굴을 발견하고 그것에서 야생 박들을 따서 무릎 자락에 채워 가지고 돌아와 죽 끓이는 솥에 그것들을 썰어 넣었더라. 그들은 그것들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였더라.
40 이렇게 그들이 사람들이 먹도록 부어 주었더니 그들이 죽을 먹다가 소리를 지르며 이르되, 오 하나님의 사람이여, 솥에 죽음이 있나이다, 하고 그것을 능히 먹지 못하였으나
41 그가 이르되, 그러면 가루를 가져오라, 하여 그것을 솥에 던지고 이르되, 퍼다가 사람들에게 주어 그들이 먹게 하라, 하매 솥에서 해를 일으키는 것이 없어지니라.
엘리사는 처음에 엘리야와 함께 믿음의 길을 시작하였던 길갈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길갈에는 많은 대언자들의 아들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엘리사 앞에 모여 앉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주의 뜻을 알기 위해 모여 앉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때에 그 땅에는 기근이 들었고, 먹을 것을 찾기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엘리사는 자신의 종에게 큰 솥을 걸고 대언자들의 아들들을 위해서 죽을 끓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음식이 부족할 때, 아마도 죽을 끓이는 것이 음식의 양을 가장 많이 늘릴 수 있는 방법일 것입니다.
여기에서 대언자들의 아들들에게 기근이 있었던 것처럼, 믿음의 사람들의 삶 속에서도 메마름과 궁핍과 기근이 있을 수 있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생활이 힘들어 질 수도 있고, 건강상의 어려움이 생기거나, 가족들의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교회 안에서 지체들과의 갈등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어려움 가운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주님의 풍성한 은혜이며, 하늘의 공급하심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먼저 우리로 하여금 모든 이해와 상황을 뛰어넘는 평강을 누리게 하시며, 오직 주님만으로 만족하도록 우리를 이끄실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일하시고 행하셔서, 실제 우리의 삶 가운데서 우리를 돌보시는 선하신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실 것입니다.
** 한 사람의 실수
39절 말씀에서는 한 사람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는 죽을 끓이는 일을 돕고자 하는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먹을 만하게 보이는 야생 박들을 따가지고 왔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는 못했지만, 그가 보기에는 충분히 먹을 만해 보였고, 죽에 같이 썰어 넣어서 끓이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결과는 솥에 죽음을 가져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이 먹을 수 없는 어떠한 독성분이 있었던 것입니다. 음식은 영양분을 공급하고, 건강하게 하며, 생명을 주는 것이어야 하는데, 반대로 죽음을 가져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여기에 나온 이 한 사람과 같이 실수하고 넘어질 때가 있습니다. 분명히 좋은 마음으로 교제하고 섬겼는데, 의도하지 않게, 상처를 주게 되는 것입니다. 의도하지 않게 영적 어두움과 사망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방식으로 일하지 않고, 단지 나의 좋은 마음과 순수한 의도로, 육신의 관점과 생각으로 걷게 될 때, 우리는 이와 같은 죽음의 솥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6절 말씀에서는 “육신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사망이요 영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요한일서 3장 14절 말씀에서는 “우리가 형제들을 사랑하므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간 줄을 우리가 알거니와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 안에 거하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역사는 주님의 뜻을 정확히 분별하는 가운데, 주님의 뜻에 분명히 순종하는 가운데, 형제들을 사랑하는 가운데, 일어나는 것입니다. 단순히 좋은 마음, 옳고 정당한 입장, 훌륭하고 정확한 판단으로는 생명의 역사를 일으킬 수 없습니다. 육신의 모든 활동은 솥에 죽음을 가져오고, 사망의 역사를 일으키게 되는 것입니다.
** 문제의 해결
우리는 열왕기하 4장 41절 말씀에서 엘리사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였는지 볼 수가 있습니다. 엘리사는 가루를 퍼다가 솥에 던지고는 사람들에게 주어 먹게 하였습니다. 그러자 솥에서 해를 일으키는 것이 없어졌습니다.
여기서 가루라는 것은 곡식을 곱게 빻아서 만든 것을 말합니다. 밀가루가 될 수도 있고, 어떤 다른 곡식의 가루가 될 수도 있습니다. 율법에서는 이러한 가루를 하나님 앞에 음식 헌물로 드리게 하였고, 또는 이러한 가루로 만든 누룩 없는 과자를 헌물로 드리게 하였습니다.
여기서 가루는 곱게 빻아진 것을 말합니다. 더 이상 자기의 형체가 없고, 덩어리지거나, 날카롭거나, 거친 부분도 없이, 완전히 곱게 빻아진 가루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가루로 만들어진 음식 헌물을 원하셨습니다. 엘리사는 바로 이 가루를 통하여, 죽음의 솥을 생명의 솥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와 같이 생명의 역사는 육신의 의견과 육신의 좋은 의도가 다 빻아지고 사라지게 될 때, 오직 주 예수님만이 우리 안에서 일하시게 될 때,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존심이 빻아져서 가루가 되어야 합니다. 나 자신이 사람들 앞에 나타나지려고 하고, 인정받아지려고 하고, 하나님께 드려질 영광을 가로채려고 하는 우리의 교만이 온전히 가루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권리와 고집과 의견이 다 십자가로 넘겨져야 합니다. 우리의 기분과 고집과 야망과 애착과 정욕의 모든 부분이 십자가의 죽음으로 넘겨지고,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고운 가루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직 십자가의 역사만이 죽음의 솥을 생명의 양식으로 바꿀 수가 있습니다. 거칠고 강인한 야생의 박으로는 생명을 줄 수가 없었습니다. 이와 같이 십자가에 넘겨지지 아니한 육신의 강함은 결코 생명을 줄 수 없습니다. 오직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로서, 오직 내가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삶을 살게 될 때, 우리의 온 존재가 부드럽고 고운 가루와 같이 될 때에, 생명의 역사를 일으키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엘리사는 도대체 야생 박을 따온 사람이 누구냐고 책임을 묻거나 범인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범인을 밝히고 책임을 묻는 것으로는, 죽음의 솥을 생명으로 바꿀 수 없습니다. 엘리사는 야생 박이 들어간 그 죽을 다 쏟아버리고 다시 새롭게 죽을 끓이지도 않았습니다. 엘리사는 다만 그 죽음의 솥에 가루를 더했을 뿐입니다.
이와 같이 어떤 복잡한 상황, 어려운 상태 가운데 있을지라도, 십자가의 역사, 주님의 생명의 역사가 임하기만 한다면, 그 즉시로 모든 것이 온전케 되고, 생명의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문제의 해결은 누구 때문인지를 찾고 잘잘못을 가리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야생 박을 걸러내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죽의 성분을 분석하고 평가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가루를 더하는 것에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이러한 가루와 같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십자가를 통과한 사람, 자기의 형체와 자기의 성질을 죽음으로 넘긴 사람, 오직 주 예수님의 향기가 나며, 주님의 생명을 살아내는 믿음의 형제자매들이 필요합니다. 엘리사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가루를 통하여, 죽음의 솥을 생명으로 바꾼 것같이, 하나님께서도 바로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우리들을 사용하셔서, 생명의 역사를 주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며, 살아계신 하나님과 동행하기 원합니다.
** 우리를 먹이시는 하나님
이제 우리 함께 열왕기하 4장 42-44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42 한 사람이 바알살리사에서 와서 첫 열매의 빵 곧 보리빵 스무 개와 또 껍질에 싸인 알찬 곡식을 하나님의 사람에게 가져오므로 그가 이르되, 사람들에게 주어 그들이 먹게 하라, 하니
43 그의 하인이 이르되, 무슨 말씀이시니이까? 내가 이것을 백 명 앞에 차려야 하리이까? 하매 그가 또 이르되, 사람들에게 주어 그들이 먹게 하라.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그들이 먹고 그것을 남기리라, 하시느니라, 하매
44 이에 그가 그들 앞에 그것을 차렸더니 주의 말씀대로 그들이 먹고 그것을 남겼더라.
기근이 계속되는 가운데 또 다른 한 사람이 보리빵 스무 개와 껍질에 싸인 알찬 곡식을 엘리사에게 가져왔습니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다 같이 먹자고 가져온 것이 아니라, 오직 엘리사와 그의 종인 게하시를 위해서, 개인적으로 가져온 것이었습니다. 그 정도 양이라면, 두 사람이 한 끼에 빵 한 개씩 약 3일 정도를 먹을 수 있는 양이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그것을 사람들에게 주어서 먹게 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의 하인이, 무슨 말씀이냐고, 이것을 백 명 앞에 차려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백 명이 빵 스무 개를 나누어 먹으려면, 빵 하나당 다섯 조각으로 나누어야 하고, 고작 한 사람당, 한입 거리밖에 못 먹게 될 것인데, 이러한 빈약한 음식을 사람들 앞에 차린다는 것은 매우 우습게 보일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사람들이 그것을 배불리 먹을 뿐만 아니라, 남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실제로 그렇게 역사하셔서, 엘리사와 함께한 모든 사람들이 풍성히 먹고 남기게 하셨습니다.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는데, 그 목적은 사람들을 먹이시는 것이었으며,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먹이시고 돌보시는 분이심을 보여주시는 것이었습니다.
** 간증
우리를 먹이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잠시 저의 간증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주님께서 우리 교회에 많은 군인 형제님들을 보내주셨는데요, 저는 군대에 가지 않고, 공익근무요원으로 병역기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공익근무요원이라도 처음 4주 동안은, 신병 훈련소에 들어가서 훈련을 받고 나오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저는 12월에 들어가서 1월에 나오게 되면서, 연말연시를 신병 훈련소에서 보내게 되었습니다.
4주간 있으면서 그곳에 있는 많은 동기들과 친해지게 되었는데, 2주쯤 지났을 때는, 이제 곧 나가게 되면 무엇을 먹고 싶은지를 서로 이야기했습니다. 어떤 동기는 떡볶이랑 튀김을 먹고 싶다고 말했고, 어떤 사람은 피자, 또 어떤 사람은 짜장면과 탕수육을 배터지게 먹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모두들 입맛을 다시면서 즐거운 상상을 하는 동안 저도 치킨이 너무나 먹고 싶었습니다.
다음날 점심시간에 식당 앞에 줄을 서서 군가를 부르면서 배식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치킨 냄새가 나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나 신기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가 치킨이 먹고 싶을 것을 미리 아시고, 신병훈련소 식단 담당자가, 몇 주 전에 계획을 짤 때부터 이 메뉴를 준비하게 하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어차피 배식을 받게 되면, 두 세 조각 밖에 못 먹을 것이 분명했습니다.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어쨌든 기대하는 마음으로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한 교관이 오더니 저를 포함해서 주변에 함께 서 있던 10명 정도의 사람을 불러냈습니다. 그리고는 점심 식사 이후에 훈련하게 될 장비를 나르고 준비하는 일을 시켰습니다. 그 일을 다 마치고 돌아오니 식당에 불이 꺼져있었고, 아무도 없었습니다. 저는 너무나 실망스러웠습니다.
우리에게 일을 시켰던 교관은 잠시 식당에 앉아있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더니 치킨 한 바구니를 들고 왔습니다. 그러면서 다른 음식은 다 치워서 없고, 이것 밖에 없으니, 책임지고 다 먹으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오직 치킨만으로 배를 가득 채울 수가 있었습니다. 10명이 배터지게 먹었지만 다 못 먹고 남길 정도로 많은 양이었습니다.
마음에 큰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치킨도 감사했지만, 하나님께서 아무것도 아닌 나를 이렇게 사랑하시고, 세심하게 돌보시고, 먹이신다는 것이 너무나 생생하게 느껴지면서, 주님의 사랑에 더욱 감사했습니다. 메뉴가 짜여 지고, 음식이 준비되고, 오후 훈련을 위한 준비 인원으로 제가 빠지게 되고 하는 모든 상황들을 되짚어 볼 때, 저를 먹이시되, 풍성히 먹이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섭리와 손길이 느껴졌습니다. 이렇게 세심하게 저를 돌보시고, 사랑하시는 주님을 저도 사랑하며, 주님과 동행하기 원합니다.
** 정말 주시려는 것
이제 우리 함께 누가복음 12장 22-24절까지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22 또 그분께서 자기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생명을 위해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해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23 생명이 음식보다 소중하며 몸이 옷보다 소중하니라.
24 까마귀들을 생각해 보라. 그것들은 씨 뿌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창고나 곳간도 갖고 있지 아니하되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먹이시나니 하물며 너희는 그 날짐승들보다 얼마나 더 나으냐?
우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먹고살 고민을 하면서 살아가지만, 까마귀들을 먹이시는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를 먹이시고 돌보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실제적으로 우리를 먹이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돌보시며, 우리의 필요를 풍성하게 공급하시는 분이십니다. 이러한 좋으신 하나님을 우리가 더욱 알고, 누리며, 따라가기 원합니다.
이제 우리 함께 누가복음 12장 30-32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30 이 모든 것은 세상 민족들이 구하나니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것들이 너희에게 필요한 줄 아시느니라.
31 오히려 너희는 하나님의 왕국을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2 적은 양 무리여,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왕국을 너희에게 주시는 것을 참으로 기뻐하시느니라.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아시고, 풍성하게 공급하시며, 우리를 먹이시는 하나님께서, 정말 우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왕국입니다. 잠시 잠깐의 배부름이나, 일시적인 만족이 아니라, 영원한 영광과 풍성함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먹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살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먹고 살기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일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먹이시는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을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먹이시며, 실제적인 필요들을 공급하시지만, 단지 이 땅에서 풍요롭게 살게 하시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왕국이며, 또한 영원한 영광이라는 사실을 오늘 우리가 기억하기 원합니다.
2016년 새로운 한 해 동안에도, 우리를 실제적으로, 또 영적으로 풍성히 먹이시며, 돌보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우리가 더 많이 경험하기 원하고, 감격하기 원하고,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또한 야생의 덩굴과 박이 아니라, 주님 앞에 온전히 곱게 빻아진 가루로서, 생명을 공급하는 귀한 주님의 사람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