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09. 갈보리침례교회 수요기도회 설교
빈 그릇으로 나아오라(왕하 4:3,4)
이승선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열왕기하 4장입니다. 열왕기하 4장 3,4절 말씀입니다.
3 그때에 그가 이르되, 가서 너를 위해 네 모든 이웃에게서 그릇을 빌려 오라. 빈 그릇을 빌리되 몇 개만 빌리지 말고
4 너는 들어가 너와 네 아들들 뒤로 문을 닫고 그 모든 그릇에 기름을 부어서 가득 찬 것을 옆으로 놓으라, 하니라.
저는 오늘 “빈 그릇으로 나아오라”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기 원합니다. 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 서론
오늘 말씀의 제목은 ”빈 그릇으로 나아오라”입니다. 성경은 사람을 질그릇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질그릇이란, 깨지기 쉬운 존재라는 것을 의미하고, 또한 무엇인가를 담는 목적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처럼 질그릇과 같은 사람은, 몸도 마음도 약하여 상하기 쉽고, 깨지기도 쉽습니다. 또한 질그릇과 같은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 외에 그 무엇으로도 가득 채울 수 없고, 만족할 수도 없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오직 하나님을 모셔 담을 때에만, 만족하고 행복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공허함으로 가득한, 빈 그릇인 우리들을 부르시고, 주님의 사랑과 은혜와 평강으로 충만하게 채워주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우리들의 마음속에 주님 외에 다른 것들이 가득 들어있다면, 다 비워버리기 원합니다. 또 우리의 마음이 텅텅 비어 허전하고 외로운 가운데 있다면, 오직 주님으로 충만하게 채워지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창조주이시며, 구원자이시며, 선한 목자이신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이 시간 우리 각자에게 말씀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 과부 여인의 상황
우리 함께 열왕기하 4장 1절 말씀부터 살펴보시겠습니다. 열왕기하 4장 1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이제 대언자들의 아들들의 아내들 중의 어떤 여인이 엘리사에게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의 종 내 남편이 이미 죽었는데 당신의 종이 주를 두려워한 줄은 당신이 아시나이다. 빚을 준 사람이 이르러 내 두 아들을 취하여 노예로 삼고자 하나이다, 하매
오늘의 말씀은 엘리사에게 찾아온 한 과부 여인으로부터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 여인은 대언자들의 아들들이라고 불리는 한 사람의 아내였습니다. 그는 주를 두려워하는 가운데 믿음으로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들을 남기고 먼저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믿음의 남편, 믿음의 아버지가 세상을 먼저 떠나게 된 것도 슬프고 안타까운 일인데, 더 안타까운 것은 남겨진 가족들에게 갚을 수 없는 빚이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빚을 준 사람이 찾아와서, 남아 있는 두 아들을 노예로 삼고자하는 너무나 비참하고 절망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먼저 우리는 믿음의 사람에게도 안 좋은 일, 비참한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그리고 역사 가운데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에 순종하며, 믿음으로 살아갔던 많은 사람들에게 고난이 있었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요셉은 죄를 거절하고 믿음으로 승리한 결과,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신실하게 하나님을 따른 결과 사울 왕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우상 숭배를 거절한 결과 용광로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한 결과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에콰도르의 아우카 부족에게 복음을 전하러 갔던 선교사 짐 엘리엇은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을 남긴 채, 원주민의 창에 맞아 죽고 말았습니다. 당시 그의 나이는 스물아홉 살이었습니다.
대언자의 아들도 일찍 죽을 수 있고, 치명적인 질병에 걸릴 수 있으며, 많은 빚을 질 수도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도 위험한 사고를 당할 수도 있으며, 사업이 망할 수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믿음에 순종한 결과로 억울한 비난을 당할 수도 있고, 여러 가지 손해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요나에게 일어났던 풍랑처럼 불순종으로 인해 고난이 올 수도 있지만, 때로는 스데반 집사님에게 있었던 순종의 결과처럼 돌이 날아올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 잠시 베드로전서 4장 12,13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단련하려고 오는 불 같은 시련에 관하여는 마치 이상한 일이 너희에게 일어난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13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되었으므로 기뻐하라. 이것은 그분의 영광이 드러날 때에 너희가 넘치는 기쁨으로 또한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는 많은 경우, 거의 대부분의 경우, 우리의 잘못으로 인해서 징계를 받고 고난을 당합니다. 내가 이기적으로 행하고, 교만하게 말하고, 육신 안에서 고집을 피우고, 함부로 살아간 결과로 고난을 당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잘못이 없는 것 같은데, 억울한 고난을 당하는 것 같은 경우도 가끔씩 있습니다. 성경은 그러할 때, 우리를 사랑하는 자들아, 라고 부르시면서, 우리를 단련하려고 오는 불같은 시련에 대해서, 마치 이상한 일이 일어나는 것처럼 여기지 말고, 당황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에게 영광과 기쁨이 보상으로 주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난이 우리의 잘못으로 인해 왔든지, 아니면 믿음의 순종으로 인한 결과로 왔든지,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주님만 바라보도록 이끌어 줍니다. 우리는 절망의 순간에 이르지 않으면, 주님 없이도 잘 살아갑니다. 우리의 그릇에 수많은 허망한 것들을 가득 채우고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같은 시련이 올 때, 우리는 우리 안에 담겨진 모든 더러운 것들, 허망한 것들, 천한 것들을 깨끗이 비워버리게 됩니다. 우리의 눈이 주님만 바라보게 되며, 참되고 영원한 것들만을 소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이 올 때, 우리는 낮아지고, 나 자산이 참으로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게 됩니다. 오직 주님만이 모든 것이 되심을 인정하고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에 등장하는 과부 여인에게도 주님 외에는 붙들 것이 더 이상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여인은 엘리사 앞에 나아와 부르짖으며, 울며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했던 것이었습니다.
** 이미 가진 것에서 시작
이제 우리 함께 열왕기하 4장의 말씀으로 돌아오셔서, 열왕기하 4장 2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엘리사가 그녀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위해 무엇을 하랴?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고하라, 하니 그녀가 이르되, 당신의 여종의 집에는 기름 한 항아리 외에 아무것도 없나이다, 하매
여기서 엘리사는 살림을 어떻게 했으면, 아들이 둘씩이나 노예로 팔려갈 지경이 되었느냐고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남의 돈을 가져다 썼으면 마땅히 대가를 치르고 갚아야한다고 정의롭게 판단을 내리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엘리사는 그녀를 위해 무엇인가를 해주기 원했습니다. 엘리사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따지지도 않았으며, 다만 무엇이라도 도와주기를 원했습니다. 이것이 대언자의 마음이었고, 하나님의 사람의 마음이었으며, 바로 하나님의 마음인 것입니다. 우리의 연약함의 감정을 완전히 아시는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들의 기도를 듣기 원하시고, 우리와 동행하기 원하시며, 우리를 도와주기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엘리사는 여인에게 집에 무엇이 있는지 고하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역사가 이미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로부터,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모세의 손에는 그저 마른 나무 막대기인 지팡이가 들려져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것을 사용하셔서 많은 기적들을 일으키셨고, 홍해 바다도 갈라지게 하셨습니다. 사르밧 과부에게는 오직 빵 한 조각을 만들 수 있을 만큼의 가루 한 움큼이 남아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것을 사용하셔서 엘리야와 사르밧 과부와 그녀의 아들이 기근의 때를 지나게 하셨습니다. 오천 명이 넘는 무리들 속에 있던 작은 한 소년에게는 오병이어, 즉 빵 다섯 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것을 사용하셔서, 오천 명이 넘는 사람들을 다 먹게 하셨고, 열두 바구니나 되는 빵을 거두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가 무엇인가 새로운 것으로부터 시작될 것이라고 막연히 기대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어떤 특별한 계기로, 특별한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서, 특별한 사건을 통해서, 어떤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고, 변화가 일어나기를 기대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러한 특별한 일을 주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더 많은 경우에 하나님의 역사는 이미 나에게 주신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엘리사는 여인으로 하여금 바로 그것을 발견하고 주목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여인에게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지만, 모든 것이 끝나고, 완전히 절망에 이른 것 같았지만, 아직 한 가지가 남아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기름 한 항아리였습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바로 그 기름 한 항아리로부터 시작된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금화가 쏟아지게 하실 수도 있었고, 까마귀를 통해서 과부 여인에게 매일 돈과 음식을 배달하도록 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과부 여인에게 필요를 공급하실 수 있는 무한가지의 방법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사용하신 방법은, 이미 그녀가 가지고 있었던 기름 한 항아리를 통하여 역사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에게 마지막 남은 기름 한 항아리는 무엇입니까? 우리의 손에 있는 지팡이, 가루 한 움큼, 오병이어는 무엇입니까? 그것이 아무리 작을지라도, 아무리 보잘 것 없이 보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통하여 역사하실 것입니다.
또한 성경에서 기름은 성령님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을지라도, 우리 안에는 하나님의 기름부음이신 성령님께서 거하고 계십니다. 우리를 떠나지도 아니하시며, 버리지도 아니하신다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살아계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절망의 밑바닥까지 이른다 할지라도, 우리에게는 기름 한 항아리가 남아있을 것입니다. 바로 우리 안에 계시는, 기쁨과 평안의 근원이시며, 모든 것의 충만이 되시는 주님께서 우리 안에 살아계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이러한 주님을 바라보면서, 힘차게 일어날 수 있기를 원합니다.
** 말도 안 되는 방법
이제 우리 함께 처음에 읽었던 열왕기하 4장 3,4절 말씀을 다시 한 번 보시겠습니다.
3 그때에 그가 이르되, 가서 너를 위해 네 모든 이웃에게서 그릇을 빌려 오라. 빈 그릇을 빌리되 몇 개만 빌리지 말고
4 너는 들어가 너와 네 아들들 뒤로 문을 닫고 그 모든 그릇에 기름을 부어서 가득 찬 것을 옆으로 놓으라, 하니라.
여기서 엘리사는 상식적으로,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모든 이웃에게서 빈 그릇을 최대한 많이 빌려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문을 닫고 그 모든 빈 그릇을 기름으로 채우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 나오는 기름 한 항아리가 어느 정도의 크기였는지 알 수 없지만, 그것은 과부 여인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길 정도로 적은 양이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모든 이웃으로부터 빈 그릇을 최대한 많이 빌리고, 그 모든 그릇을 기름으로 채우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도 안 되는 일을 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차라리 돈을 직접 주던지, 못 도와주겠다고 하던지, 시원시원하게 일을 처리해 주면 좋을 텐데, 답답하고 이상한 일을 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어쩌면 과부 여인은 엘리사의 얼굴을 다시 한 번 쳐다봤을 것입니다. “네? 뭘 하라고요? 지금 나는 심각하고 진지하게 도움을 요청했는데, 지금 날 놀리는 건가? 누굴 바보로 알고 장난하나? 그런 게 되면 진작했지.”
하나님의 역사는 오직 믿음의 순종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예수님께서는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포도즙을 주어야 하는데, 그냥 물을 떠다 줄 것 같았으면 진작 줬을 것입니다. 그러나 종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그대로 순종했고,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베드로는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배의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내가 무슨 밤새도록 왼쪽으로만 그물을 던졌다고 생각하시냐고 되묻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오른편으로 그물을 던졌습니다. 그러자 그물이 찢어질 정도의 물고기가 잡혔고, 다른 어부들의 도움으로 고기들을 끌어올리자 배가 가라앉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놀라운 일들을 넘치도록 부어주실 준비가 되어 있으십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그것을 받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기 때문에, 순종하지 못하고, 순종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역사를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건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되고, 비현실적이고, 비상식적이고, 말도 안 되는 방법이라고 계산하고 따지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알 수도 없고, 순종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왜 내가 먼저 용서해야 하고, 왜 내가 먼저 사랑해야 하고, 왜 내가 먼저 다가가서 교제를 해야 하는지, 계산하고 따지면서, 순종하지 않기 때문에 회복의 역사를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내가 보고 듣고 판단하고 생각한 것이 옳다고 여기면서, 주님의 인도하심에 따라서 가지도 않고, 멈추지도 않고, 고집을 피우기 때문에, 내 안에 사시는 주 예수님의 권능도, 모든 지식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도 경험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엘리사는 그릇을 빌리되 몇 개만 빌리지 말라고 말했는데, 우리는 몇 번만 시도해보다가 안된다고 포기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내가 먼저 사랑을 보여줬는데 안 되고, 내가 먼저 섬기려고 했는데 안 된다고, 몇 번 시도해보고 멈추는 것입니다. 과부 여인이 이미 가지고 있던 기름 한 항아리로도 그릇 몇 개정도는 채울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단지 우리가 이미 가진 만큼의 기름을 계산하고, 단지 몇 번만 빈 그릇에 채워보고는, 안된다고 멈춰버리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나를 뛰어넘고 초월해서 역사하기를 원하십니다. 자신의 권능과 놀라운 역사를 보여주기 원하십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의 말씀이 있다면, 내 생각, 내 판단을 내려놓고, 마음을 바꿔서 순종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 개인적인 시간
우리는 또한 4절에서 문을 닫으라고 하는 말씀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가장 먼저 나와 하나님 사이에서 진행되는 개인적인 일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가 기도할 때에, 거리 모퉁이에서 기도하지 말고,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보시는 아버지께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하면 은밀한 중에 보시는 아버지께서 드러나게 갚아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문을 닫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공개적으로 드러나고 이루어질지라도, 그 일이 일어나는 과정 중에는 하나님과 나만의 개인적인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사람들은 맛있는 포도즙을 마셨지만, 오직 종들만이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를 알았습니다. 오천 명이 음식을 배불리 먹고 남겼지만, 오직 한 소년과 제자들만이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를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날 때, 그 은혜의 풍성함은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겠지만, 그것이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는 오직 하나님과 그분께 순종한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비밀이며, 믿음의 신비인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이러한 조용한 시간이 많아지기 원하고, 주님과 나만이 공유하는 믿음의 신비가 풍성하기를 원합니다.
** 순종과 기적
이제 우리 함께 열왕기하 4장 5-7절까지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5 이에 그녀가 그를 떠나서 자기와 또 자기에게 그릇들을 가져온 자기 아들들 뒤로 문을 닫고 기름을 부었더니
6 그릇들이 차므로 그녀가 자기 아들에게 이르되, 또 그릇을 내게로 가져오라, 하매 그가 그녀에게 이르되, 그릇이 더 없나이다, 하니 기름이 그쳤더라.
7 그때에 그녀가 가서 하나님의 사람에게 고하니 그가 이르되, 가서 기름을 팔아 빚을 갚고 남은 것으로 너와 네 아이들이 생활하라, 하였더라.
과부 여인은 하나님께서 엘리사를 통해 주신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믿음이 없었다면 순종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믿음과 순종의 결과, 그녀와 아들들은 하나님의 기적을 직접 목격하였고, 하나님의 역사를 직접 경험하였습니다. 항아리를 들어 한 그릇, 한 그릇 기름을 부어나가면서, 여인과 아들들은 과연 어떤 마음을 가졌으며, 또 과연 어떤 대화를 나누었을까요?
“어머나, 이것 봐라, 기름이 계속 나온다. 지금 그릇을 몇 개나 채웠지?”
“대충 30개 정도 채운 것 같은데요? 기름이 아직도 나와요? 형 이것 봐봐.”
항아리를 들고 있는 엄마의 손은 살짝 떨리고 있었을 것이고, 놀라워하는 아들들의 목소리 또한 떨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약간의 불안함과 긴장감도 있었겠지만, 주님께서 행하실 역사에 대한 기대감도 함께 감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신기했을 것이고, 놀라웠을 것이고, 감사했을 것이고, 즐거웠을 것이고, 감격했을 것이고, 주님을 찬양했을 것입니다. 그 가운데 주님의 임재가 충만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어떤 대단한 사역을 한 것이 아니었고, 놀라운 섬김을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그들의 삶에 절실한 필요가 있었을 뿐이고, 하나님께서 주신 방법대로 순종했을 뿐이었습니다. 그들은 어떤 대단한 자격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었고, 다만 빈 그릇을 한 가득 모아놓은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빈 그릇을 기름으로 가득 채워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선하심과 은혜와 사랑과 긍휼이 풍성하심을 그들에게 분명히 보여주셨습니다. 엘리사는 그 기름으로 빚을 갚고 남은 것으로 생활하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만큼 풍성했습니다. 빚을 갚을 만큼만이 아니라, 앞으로 생활도 할 수 있을 만큼 풍성하게 채워주셨습니다.
기름은 빈 그릇이 준비되어 있는 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믿었던 만큼, 예비한 만큼, 기름을 받을 수 있었고, 그만큼 하나님의 권능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준비한 그릇 이상으로는 역사하시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가 주님을 믿고 순종하는 만큼, 우리에게 자신의 사랑과 은혜와 권능과 역사를 보여주실 것입니다.
** 정리
오늘 우리는 “빈 그릇으로 나아오라”라는 제목으로 주님의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주님이 없는 우리들의 마음은 빈 그릇과도 같습니다. 물질적인 성공, 영적인 야망과 성취, 세상의 즐거움, 사람들의 칭찬과 인정, 스스로 가지는 만족감, 그 무엇으로 채울지라도, 주님이 없는 우리의 마음은, 허전하고 공허하고 외롭고 쓸쓸한 빈 그릇과도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가 빈 그릇 그대로 주님 앞에 나아오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창조주이시며, 구원자이시며, 선한 목자이신, 살아계시며, 선하시며, 사랑과 은혜와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빈 그릇을 가득 채워주실 준비가 되어 있으십니다. 이러한 좋으신 주님 앞에 우리가 빈 그릇으로 나아오기를 원합니다.
우리에게 고난과 시련이 올 때, 그것은 주님만 바라보고 붙들게 하시는 주님의 부르심이라는 것을 기억하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어떤 특별한 일들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에게 주신, 이미 우리가 가진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원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역사는 믿음의 순종을 통해서, 그리고 문을 닫는 주님과의 개인적인 시간을 통해서 나타난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원합니다. 우리가 빈 그릇을 빌리되 몇 개만 빌리지 말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빌려온 여인과 아들들처럼, 우리에게 있는 부족함의 모습 그대로, 모든 것을 차고 넘치게 채워주실 주님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나아오기를 원합니다.
오늘 우리들의 마음의 그릇에 오직 주님 한 분만이 충만하게 채워지기를 원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주님 앞에 더 가까이 이끌어 주시기를 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