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5.20.금 갈보리크리스천아카데미 채플 설교
스스로 보기(민 13:33)
이승선
오늘도 귀한 날을 주신 주님께 감사합니다. 우리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셔서 다 함께 민수기 13장 33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다 함께 읽으시겠습니다. 시작~
거기서 우리가 거인들에게서 나온 아낙의 아들들 곧 거인들을 보았는데 우리 스스로 보기에도 우리가 메뚜기 같았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하니라.
저는 오늘 “스스로 보기”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기 원합니다. 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 서론
오늘 말씀의 제목은 “스스로 보기”입니다. 세계 4대 성인 중 하나라고 불리는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물론 그 말을 남긴 그 자신이 정작 자신을 정확히 알았는가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일 것입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 우리 자신을 스스로 잘 알고 있으며, 정확히 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일을 잘 한다고 스스로 생각하지만, 객관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볼 때는 전혀 못한다고 평가할 때도 있습니다. 반대로 우리는 어떤 일을 잘 못한다고 스스로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매우 잘한다고 평가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에서 우리는 자신들을 스스로 보면서 메뚜기처럼 여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들이 스스로를 그렇게 보았던 이유는 그들이 아낙 자손들, 즉 거인들을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또 한마디 말을 덧붙이면서, 우리만 그렇게 생각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보기에도 그렇게 우리를 메뚜기처럼 보았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사람하고 메뚜기하고 싸우면 누가 이길까요? 당연히 사람이 이깁니다.
지금 가나안 땅 앞에 서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에서 오랜 노예 생활을 마치고, 하나님과 모세의 인도를 받아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들은 이집트에 임했던 10가지 재앙을 보았으며, 홍해 바다가 갈라지는 것을 보았고, 이집트의 온 군대가 바다 속으로 빠져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날마다 구름 기둥과 불기둥을 보았고, 아침마다 만나를 주웠으며, 저녁에는 메추라기를 먹었습니다. 그들은 반석에서 나오는 생수의 강을 마셨고, 하나님과 교제하고 나온 모세의 얼굴에서 빛이 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제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바로 그 약속의 땅 앞에 서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반드시 승리할 것이며, 그 땅을 차지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말씀을 가지고 약속의 땅 앞에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들이 이 앞에서 승리를 본 것이 아니라, 패배를 보았다는 것입니다. 자기들이 이 땅에 들어가서 누릴 모든 복과 좋은 것들을 본 것이 아니라, 어떻게 비참하게 죽게 될 것인가를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분명히 보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무엇을 어떻게 본 것일까요? 오늘 우리가 함께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스스로를 어떤 관점에서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를 함께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이 시간 우리 각자에게 말씀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 보는 것과 믿음
우리 함께 고린도후서 5장 7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걷고 보는 것으로 걷지 아니하노라.)
여기에서 우리는 믿음이라는 말과 보는 것이라는 말이 서로 반대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믿음으로 걷고 보는 것으로 걷지 아니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걷는다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하면 바로 믿음으로 사는 것이지, 보는 것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우리 함께 히브리서 12장 2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창시자요 또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자. 그분께서는 자기 앞에 놓인 기쁨으로 인해 십자가를 견디사 그 수치를 멸시하시더니 이제 하나님의 왕좌 오른편에 앉으셨느니라.
우리 주 예수님은 믿음의 창시자요 또 완성자이십니다. 성경은 우리가 이러한 예수님, 즉 믿음의 창시자요 또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본다는 것은 무슨 말일까요? 성경에서 주님을 바라본다는 것은 다른 말로 믿는다는 말입니다. 오직 주 예수님만을 믿고 신뢰하자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우리의 믿음의 시작이시며 완성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믿음은 보는 것일까요, 보지 않는 것일까요? 분명히 앞에서 살펴본 고린도후서 4장 7절의 말씀에서는 우리가 믿음으로 걷고 보는 것으로 걷지 아니한다고 말씀하시면서, 믿음과 보는 것을 반대로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히브리서 12장 2절에서는, 또 그 외에 다른 많은 성경구절들에서는 우리가 믿음으로 주님만을 보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은 한 면에서는 보는 것이며, 또 다른 한 면에서는 보지 않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믿음은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며, 다른 모든 것에 대해서는 눈을 감는 것이고, 바라보지 않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보았다면, 그들은 용감하고 담대하게 아낙 자손들을 쳐서 이길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먼저 거인인 아낙 자손들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 자신들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낙담했고, 두려워했으며, 싸워보지도 못하고, 패배자의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학생 여러분, 오늘 우리가 바라보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바라볼 때 과연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나
우리 함께 잘 아시는 빌립보서 4장 13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나를 강하게 하시는 그리스도를 통해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사도 바울은 여기에서 매우 용감하고 담대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그의 이런 당당함과 자신감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요? 그가 부잣집 아들이었기 때문일까요? 그가 로마 시민이었기 때문일까요? 그가 많은 공부를 해서 똑똑했기 때문일까요? 전부다 아닙니다. 그가 이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자기 자신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만 바라보았기 때문에 이렇게 용감하고 담대하게 고백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의 용기의 근거는 바로 앞부분에 나온 말씀처럼 “나를 강하게 하시는 그리스도를 통해” 나오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학생 여러분, 자기 자신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무엇이 보이십니까? 혹시 메뚜기가 보이지는 않으십니까?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은 아낙 자손처럼 거인과 같고,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이미 패배가 확정지어진 메뚜기처럼, 벌레처럼 보이십니까? 우리가 우리 자신을 바라본다면, 다른 사람들을 바라본다면, 이 세상의 어떤 일들을 바라본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시간 우리가 눈을 들어, 오직 주 하나님을 바라보기 원합니다.
** 여호수아와 갈렙
이제 우리 함께 민수기 14장 1-4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 이에 온 회중이 목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그 밤에 울었더라.
2 온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와 아론에게 불평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집트 땅에서 죽었더라면 좋았으리라! 우리가 이 광야에서 죽었더라면 좋았으리라!
3 어찌하여 주께서는 우리를 이 땅으로 데려와 칼에 쓰러지게 하는가? 우리의 아내와 자녀들이 탈취물이 되리니 우리가 이집트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하고
4 서로 이르되, 우리가 대장 한 명을 세우고 이집트로 돌아가자, 하매
자기들을 바라보았던 이스라엘 백성은 목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울었습니다. 그들은 모세와 아론에게 불평하며, 또 주 하나님께 불평하였습니다. 그들은 싸워보지도 않고, 우리의 아내와 자녀들이 탈취물이 될 것이고 다 죽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이집트로 돌아가자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힘들고 어려웠던 노예 생활에서 구원하여, 약속의 땅 앞까지 다 왔는데 이집트로 돌아가자고, 세상으로 돌아가자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이집트 땅에서 죽었더라면 좋았으리라, 광야에서 죽었더라면 좋았으리라고 말할 수 있다면, 아낙 자손과 용감히 싸워보고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이렇게 하나님께 반역함으로 이집트로 돌아가고자 하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40년 동안 돌면서 다 죽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 함께 민수기 14장 6-9절 말씀도 보시겠습니다.
6 그 땅을 탐지한 자들 중에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자기 옷을 찢고
7 이스라엘 자손의 온 무리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매우 좋은 땅이라.
8 주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이 땅으로 데리고 들어가시고 그것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9 오직 너희는 주를 대적하여 반역하지 말며 또 그 땅의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양식이니라. 그들의 방어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주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였으나
여기에서 우리는 똑같이 거인들 앞에 섰지만, 승리를 믿고 담대하게 일어났던 두 사람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들은 바로 여호수아와 갈렙이었습니다. 그들은 9절에서 아낙 자손을 가리켜서 그들은 우리의 양식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밥이다, 우리 음식이다, 식은 죽 먹기다, 이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거인보다 더 컸기 때문일까요? 그들이 싸움을 아주 잘했기 때문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의 믿음은 9절에서 계속 나오고 있는 것처럼 “주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시느니라.”라고 하는 사실에 있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오직 너희는 주를 대적하여 반역하지 말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땅의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하였습니다. 사랑하는 학생 여러분, 우리가 우리의 눈으로 우리 자신만 바라보고, 다른 사람들만 바라보고, 어려운 상황만 바라본다면, 그것은 주를 대적하여 반역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에게 어떠한 일들을 맡기실 때, 우리가 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 우리 자신이 메뚜기라고 말하면서, 우리가 패배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버티고 서 있다면, 그것은 겸손한 것이 아니라, 교만한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에 반역하고 있는 것입니다.
** 제대로 보자
오늘 말씀의 제목은 “스스로 보기”입니다. 사랑하는 학생 여러분,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낙 자손을 거인으로 보았고, 그들 스스로를 메뚜기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아낙 자손을 양식으로 보았고, 그들 스스로를 승리자로 보았습니다. 그들이 본 것은 똑같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믿음이 없는 가운데 육신의 눈으로 보았고, 여호수아와 갈렙은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낙 자손을 두려워하면서, 정작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오직 주를 두려워하면서, 아낙 자손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학생 여러분, 오늘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실수할까봐, 실패할까봐, 넘어질까봐 두려워하십니까? 오늘 우리는 메뚜기입니까, 아니면 승리자입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입니까, 아니면 나를 강하게 하시는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자입니까? 사랑하는 학생 여러분, 이 시간 주님께서 우리의 눈을 뜨게 하여주시기를 원합니다. 방황하면서, 두리번거리면서 다른 것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이 감겨지고, 우리의 눈이 오직 살아계신 전능자 하나님, 내 안에 계신 권능의 주님을 바라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